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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31일, 메르하바. 나의 친절한 터키. 본문

아무도 모른다/2012.01 ~ 2012.12

2012년 12월 31일, 메르하바. 나의 친절한 터키.

dancingufo 2012. 12. 31. 04:02

 

 

 

인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타튀르크 공항으로 가면서, 한국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을, 한없이 친절하던 터키쉬들에 대해 생각했다.

 

리틀 아야 소피아를 찾기 위해 지도를 펼쳐 놓고 앉아있으려니, 도움을 몇 번이나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곁을 서성이던 청년이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여기저기서 인사를 해오는 터키쉬들의 친절에 그 날따라 조금 지쳐 있던 나는,

 

"나는 길을 잃은 게 아니야."

 

라고 단호하게 말을 했음에도,

 

"Yes. not yet."

 

이라고 청년은 항변했다. 그 말에 결국 웃음을 터트리자,

 

"여기는 큰 도시야. 너는 길을 헤맬 거고. 나는 다른 뜻은 없어. 걱정하지마. 그냥 도와주고 싶은 것뿐이야."

 

라고 애원하듯 길을 알려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헤매지 않고 리틀 아야소피아를 찾아갈 수 있었다.

 

 

 

 

또다른 친절한 터키쉬는 술탄아흐멧 역 앞에 있던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괴프테를 먹고 싶다는 친구를 따라 레스토랑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나는 별로 식욕이 없어 샐러드 하나만 시켜놓고 앉아 있었다. 그런 우리를 보고 혹시 괴프테를 둘이 나눠 먹으려나 싶었는지 알아서 그 가게의 지배인쯤으로 보이던 아저씨는 1인분을 두 접시에 나눠 내왔다. 하지만 내가 그 접시 두 개를 모두 친구 앞으로 놓아두자, 다시 우리에게 다가온 아저씨가 물었다.

 

"넌 고기를 안 먹어?"

"응."

"왜 넌 베지테리언이야?"

"응. 난 채식을 해."

 

그 말을 듣고 휙 사라지는가 싶더니 다시 나타났을 땐 내 앞에 콩으로 만든 수프 하나를 내놓았다.

 

"이건 콩으로 만든 거야. 고기는 전혀 안 들어갔고. 그러니까 네가 먹어도 돼."

 

사실 그 수프는 며칠 전에 먹어보았던 것이었고, 그러니 내가 먹을 생각만 있었다면 주문을 했을 텐데. 고기를 안 먹는 내가, 먹을 메뉴가 없어서 샐러드만 먹나보다 생각한 아저씨는 친히 친절을 베푼 것이었다. 그 친절이 어쩐지 감동적이어서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프를 깨끗하게 다 먹었다.

 

 

 

 

그리고 이스탄불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보냈던 그 날은, 텔레프리크에서 야경을 보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돌아가는 버스를 쉬이 찾지 못해서 여기저기 서성거리고 있자니, 정류장에 버스 한 대를 대어놓고 계시던 기사 아저씨가 친절히 다가와 에미노뉴로 돌아가는 버스 번호를 죄다 알려주었다. 그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건만, 그 어두운 곳에 우리를 놓아두고 가기가 영 무엇했는지 아저씨는 우리 곁에 서서 같이 버스를 기다려주셨다. 그러다 자기 버스를 탈 승객들이 하나둘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타야 할 버스는 오지 않자, 아저씨는 결국 우리를 자기 버스에 태워서 에미노뉴로 가는 버스가 좀 더 많이 다니는, 좀 더 밝고 좀 더 사람도 많은 곳 앞에서 내려주셨다. 내리고 나서 안 것이지만, 그곳은 원래 버스 정류장도 아니었다.

 

 

 

생각하자면 끝이 없다. 내가 만난 터키 남자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친절하고 그 친절은 모두 다 안전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만나기 힘들 이런 친절이 너무나 그리울 거라고 생각했고,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역시나 나는, 그들이 무척 그립다.

 

손짓 두 번만으로 나에게 지하철 탈 곳을 알려주시던 할아버지. 친구가 호스텔에 두고 온 고가의 지갑을 알아서 한국으로 부쳐주겠다고 먼저 전화를 걸어온 호스텔 주인. 유난히 손잡이가 높은 곳에 있어서 버스 안에서 내가 친구의 팔만 붙잡고 서 있노라면서 알아서 가장 서 있기 편한 곳으로 안내해주던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말을 걸기 위해, 직접 영어를 할 줄 아는 친구를 찾아와서는,

 

"너희 혹시 베식타스 서포터야?"

 

라고 물어본 후, 우리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제발 yes라고 말해달라고,

 

"yes! yes! yes!"

 

라고 외치던 베식타스의 서포터들. 그리고 한없이 기분 좋았던 그들의 호의와, 순식간에 쏟아지는 그 호의에 정신이 없어 때로는 단호하게 no! 라고 말하거나 I don't want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착하고 예의바른 모습만 보여주었던 그 시간이, 그 장소가,

 

나는 너무나 그리워서,

 

한동안은 계속해서 터키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많은 여행자들이 어째서 그토록 터키를 사랑하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런데도 나는 터키의 1000분의 3정도 밖에 보지 못했으니까, 꼭 다시 터키로 돌아가 그들을 좀 더 알고 싶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나 다정한 호기심으로 한 이국을 그리워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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