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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기 1] 나는, 살아남고 싶었다 본문

Before sunrise/메르하바, 나의 친절한 터키

[터키 여행기 1] 나는, 살아남고 싶었다

dancingufo 2013. 1. 7. 09:58

 

http://news.kyobobook.co.kr/comma/openColumnView.ink?sntn_id=6277

 

 

 

서른 넷이 되기 전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지난 봄의 일이다. 잘할 수는 있지만 좋아하기는 힘든 일을 해내느라, 사흘을 연달아 새벽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던 도중이었다. 문득, 고작해야 이런 삶을 살 거라면 내가 예수보다 오래 살아야 할 이유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의, 그토록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더 짧은 삶을 살다 갔는데, 내가 굳이 그들보다 긴 생을 살아야 이유는 없을 것 같았던 것이다.
 
죽음을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더는,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사는 일이 죽는 일보다 낫다는 걸 느껴야 했다. 다니던 직장을 갑작스레 쉬기로 하고, 터키행 비행기표를 끊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터키에 간다고 해서 갑자기 인생이 즐거워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인생의 방향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방 한 켠에 붙여 둔 세계지도를 바라보고 있다가, 터키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겨울이니까. 터키의 도시들은 조금 더 따뜻할 것 같았으니까.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조금 더 따뜻할 거라 생각하고 선택한 터키. 하지만 우리가 갔을 때 이스탄불엔 폭설이 내렸다.
 
사실 이스탄불이 내 마음에 자리잡은 지는 꽤 오래 되었다. 갓 스무 살을 넘길 무렵, 로마사에 심취했던 나는 한때 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천 년이나 더 역사를 이어나갔던 비잔티움을, 그리고 이제는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여행자의 꿈으로 살아 숨쉬는 이 도시를, 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에 품어왔다. 때때로 터키를 다녀온 사람들을 마주칠 때면 괜스레 아쉬운 마음이 들어,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이름들을 차례대로 불러보고는 했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도시들이 있지만, 콘스탄티노플이나 비잔티움, 또는 이스탄불이라는 이름만큼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도시는 없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의 쉼표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에 대한 오래된 동경을 대충 버무린 채 터키로 떠났다. 떠나기 전날까지도 계속해서 밀려드는 업무에 치여, 비행기 안에서도 피곤함을 감추지 못한 채였다. 하지만 이스탄불에 도착하기만 하면 모든 피로가 단숨에 사라지리라 생각했다. 그런 설렘을 안고 꼭 열두 시간을 날아 아타튀르크 국제 공항에 도착했을 때, 하지만 내가 마주친 도시는 어딘가 모르게 을씨년스러움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아직 채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의 도시는, 조용했고 또 조금 추웠다. 무거운 짐을 끌고 트램에 올라타면 사람들은 힐끔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나도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치면 사람들은 언제 나에게 관심을 두었냐는 듯 차갑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런 터키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낯선 동양 여자를 빤히 쳐다보다가도 눈이 마주쳤다 싶으면올라~’하고 웃어주던 스페인 사람들이 생각났다. 물론 이 머나먼 타국에서, 다정한 미소를 기대하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괜스레 머쓱한 마음이 되어버린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어두운 하늘 아래 서 있는 블루 모스크. 처음 마주친 이스탄불은 마냥 을씨년스럽게만 느껴졌다. 
 
이스탄불을 보게 되면, 첫 눈에 이 도시에 반해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마드리드에 처음 발을 내딛자마자, 단숨에 내가 그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스탄불과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출근길의 트램 안에서, 스무 코스가 넘는 거리를 꼼짝없이 갇힌 채 서 있다가, 무거운 짐을 이고 끌고 술탄아흐멧 역에서 내리니 한겨울의 히포드로모스가 나타났다. 저 어디쯤에 있는 곳이 내가 묵을 호스텔이겠구나 생각하며 다시 캐리어를 끌고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발짝 걷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곳에는 수많은 갈매기들이 소리 없이 날고 있었다. 먹구름 가득 낀 어두운 하늘 아래엔 말로만 듣던 아야 소피아 박물관이 천 년이 넘는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었다.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는 함께 여행을 떠나온 나의 동행 J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꼭 세상이 멸망할 것 같아.”
그러자 피식 웃은 J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게. 종말이라도 올 것 같네."
 
그랬다. 우리가 처음 만난 이스탄불은 춥고 어둡고 을씨년스러워서 꼭 내일 아침이면 세상이 멸망해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서울을 떠나 이곳으로 왔건만, 이곳은 서울보다도 더 살아남기 힘든 곳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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