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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기 2] 메르하바, 나의 친절한 터키 본문

Before sunrise/메르하바, 나의 친절한 터키

[터키 여행기 2] 메르하바, 나의 친절한 터키

dancingufo 2013. 1. 7. 10:00

 

 

http://news.kyobobook.co.kr/comma/openColumnView.ink?sntn_id=6298

 

이스탄불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지만, 여행 첫날부터 호텔 안에서 뒹굴고 싶지는 않아서 나와 J는 간단하게 짐을 풀어놓은 다음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쪽잠을 잤더니 어깨가 너무 뻐근하다는 둥, 둘 다 여행 준비를 전혀 안 해온 덕에 이번 여행은 정말 고생길이 훤하다는 둥 수다를 떨면서 걷고 있을 때 우리에게 한 터키 남자가 다가왔다.
 
곤니찌와.”
 
늘 그렇듯 우리를 일본인으로 착각하여 일본식 인사를 건네온 그 남자는, 앞으로 이 나라에서 숱하게 마주치게 될 친절한 터키 남자였다.
 
너 일본에서 왔어?"
“아니야. 난 한국인이야.
, 그래?”
 
그제야 자기가 인사를 잘못 건넸음을 안 남자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 웃으며 악수를 청해왔다. 그 친근한 인사에 별다른 생각 없이 손을 맞잡자, 남자는 자연스럽게 손등에 키스를 하려 했다. 그 행동에 놀란 내가 본능적으로 손을 빼내려 하자, 남자는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why not? I love you.”
 
이렇게 나는, 이스탄불에 도착한 지 세 시간 만에 터키 남자로부터 사랑 고백을 받는 데 성공했다.
 
물론 모든 터키 남자들이 처음 보는 여자의 손등에 다짜고짜 키스를 하려 한다거나 대놓고 사랑고백부터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터키에 머무른 지 채 열흘이 지나기도 전에,
 
이 나라에는 왜 이렇게 날 사랑하는 남자가 많아? 대한민국 땅에는 날 사랑하는 남자가 하나도 없는데 말이야.”
 
라고 내가 푸념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한국 여자가, 터키에 머무른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살면서 쉬이 겪어보기 힘들었던 숱한 관심과 애정 표현을 터키에서는 동양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즐기거나 감수하거나 버텨내야만 한다.
 
Bebek의 거리를 걷다가 마주쳤던 터키 아저씨들. 터키인들은 종종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사진이 어떻게 찍혔는지 확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터키 남자들은 여행객에게 굉장히 친절하다. 거리를 걷다 보면 끊임없이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궁금해 하고, 때로는 이런저런 도움을 주며, 그냥 기분 좋게 한 번 웃을 수 있는 농담을 던진다. (해가 진 후, 히포드로모스를 걷고 있을 때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던 한 터키 남자는 우리가 조금 자신을 경계한다고 느꼈는지 ‘Don’t worry. I’m gay’라고 말하곤 사라졌다. 그게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말이 유쾌해서 한참을 웃었다.)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나 또는 타고난 성향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나 역시, 어떤 터키 남자들에겐 너무나 고마웠고 또 어떤 터키 남자는 조금 불쾌하기도 했다. 하지만 특별한 의도(?)가 있는, 그리 좋지 못한 사람들을 잘 구별해낼 수만 있다면, 터키 남자들의 친절은 대부분 안전하다.
 
사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답지 못하게, 우리 동네에서도 길을 잃어버리는 전형적인 지도 못 보는 여자. 동서남북은커녕 좌우 구분도 쉽게 하지 못해서 어릴 때 엄마는 툭하면 나에게 나는 네가 집을 찾아오는 것도 신기하다.’라고 말씀하곤 하셨다.
 
그러니 내가 여행을 다닐 때, 얼마나 자주 틀린 길을 가고 버스를 잘못 타거나 잘못된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고, 그리하여 내가 찾고자 하는 장소까지 가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길에서 허비해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가 정작 터키에서는 길을 잃을 일이 별로 없었으니, 이유인즉슨 그곳에서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주위를 한 번 두리번거리기만 해도 곁에 있던 터키 남자 아무개가 짠 하고 나타나,
 
“can I help you?”
 
하고 물어오기 때문이다.
 
터키에 있는 동안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많은 친절을 받았고, 그래서 많은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터키쉬 한 명을 소개해야겠다. 그러니까 그 버스 기사 아저씨를 만난 것은, 우리가 피에르로티(Pierreloti)라는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내려왔을 때였다.
 
피에르 로티는, 프랑스의 해군이자 소설가였던 피에르 로티가 그곳에서 자주 습작을 했다고 하여 그의 이름이 붙여진 까페이다.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게 되어 있는 이 까페에 앉아 이스탄불을 내려다보면, 그 전경이 실로 일품이다. 우리 역시 커피 한 잔씩을 시켜놓고 앉아 한참 이스탄불의 야경을 바라보다가, 저녁 여섯 시쯤 까페에서 내려왔다. 여섯 시에 내려왔는데 무슨 야경인가 싶겠지만, 겨울의 이스탄불에서는 4시만 넘어가면 주위가 어둑어둑해진다.
 
 
피에르로티 찻집에서 내려다 본 이스탄불.
이 까페에서 내려와 나는 또 한 번 한없이 친절한 터키쉬를 만났다.
 
 
그런데 막상 내려오고 보니 주위가 그렇게 휑할 수가 없다.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하나 있긴 한데, 사람은 아무도 없고 버스들은 정류장에 서지도 않은 채 씽씽 지나가버린다. 같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던 한 무리의 한국인들은 이미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가버린 모양이다. 하지만 여행 중에 웬만해서는 택시를 타지 않는 나와 J, 다시 에미뇌뉘 선착장(Eminonu pier) [i]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와
 
너희 버스 기다려?”
 
하고 물었다. 사실 글은 이렇게 썼지만 그때 우리가 아저씨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던 건 아니다. 아저씨는 터키어로 우리에게 물었고, 우리는 그 뜻을 짐작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에미뇌뉘라고 답했을 땐, 아저씨 역시 단박에 우리의 뜻을 이해하셨다. 그리고는 에미뇌뉘로 가는 버스 번호를 죄다 알려주셨기에 우리는 금세 편안한 마음이 되어 버스 정류장 앞에 섰다.
 
낯선 나라에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주제에, 우리는 걱정이랄 게 없는 태평한 여행자였다. 그런데도 정작 아저씨는 그 어두컴컴한 곳에 이방인인 우리만 남겨놓고 가기가 마음이 쓰였는지 두어 발짝쯤 떨어진 곳에 서서 함께 버스를 기다려 주신다. 그러다가 가끔, 아까부터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던 텅 빈 버스를 돌아보시는 것이, 알고 보니 아저씨는 곧 출발해야 하는 이 버스의 운전 기사이셨다. 덩달아 뒤돌아보면, 어느 새 아저씨의 버스를 타려는 승객들이 하나 둘 늘어나 있다.
 
결국 아저씨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으셨는지 우리에게 자기 버스를 타라 하신다. 이 버스는 에미뇌뉘로 안 가는 건데 싶어서 어리둥절하지만, 아저씨는 자기 버스를 타고 두 코스 정도만 가서 내리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버스를 타며 주섬주섬 버스카드를 꺼내려고 하자, 이번엔 있는 힘껏 손을 흔들어 보이신다. 그러니까 버스비도 내지 말고, 그냥 뒤로 가서 앉아만 있으면 된다는 뜻이다.
 
그런 우리를 아저씨가 데려다 주신 곳은 99번 버스가 다니는 길이었다. 내리고 나서야 안 것이지만, 그곳은 원래 사람을 내려주는 버스 정류장도 아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를 여기에서 내리라고 하는 건가 싶어서 쳐다보니, 아저씨는 열심히 도로 맞은편을 가리키신다. 그 손길을 따라 시선을 옮겨 보면, 그곳에는 정말로 버스 정류장이 하나 있고, 바로 그 정류장에 99번 버스가 멈춰 선다.
 
아저씨는 건물도 많고 사람도 훨씬 많이 다녀서 그나마 안전하게 느껴지는 곳까지 우리를 데려다주고 가신 것이다. 덕분에 이번에도, 아무런 고생 없이 에미뇌뉘에 잘 도착한 우리는 다시 숙소가 있는 술탄아흐멧 역으로 가는 트램을 타기 위해 거리를 걸었다. 해안가를 걷기엔 날이 조금 추웠지만, 방금 받은 그 친절을 생각하면 마음은 충분히 따뜻했다. 그래서 괜스레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저 멀리 갈라타 다리 아래로 반짝이는 수많은 가게들의 간판이 보였다.
 
그 밝고 쾌활하며 사람 냄새 나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벌써부터 무언가가 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터키를 떠나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면, 이 터키인들의 한없는 친절함이 한동안은 무척이나 그리울 거라는 걸 짐작하는 데서 오는 아련함이었다.
 
제법 많은 나라를 여행했고, 제법 많은 시간 동안 여행자로서 이국인을 마주쳐 보았지만, 터키인들에게는 쉬이 외면하기 힘든 특별한 친절함이 있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생애 최고의 여행지 중 한 곳으로 터키를 꼽는 것은, 터키의 놀라운 대자연이나 눈부신 모스크들 때문이라기보다도 낯선 이국인들에게 함박 웃음을 지어 보이며 메르하바(Merhaba) [ii]라고 인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터키인들의 친절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i]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는 페리를 탈 수 있는 선착장이다. 이곳에서 99번 또는 99A번 버스를 타면 피에르로티 찻집이 있는 TELEFERIK역에 내릴 수 있다.
[ii] 터키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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