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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기4] "너희들, 베식타스 서포터야?" 본문

Before sunrise/메르하바, 나의 친절한 터키

[터키 여행기4] "너희들, 베식타스 서포터야?"

dancingufo 2013. 1. 21. 20:15

 

http://news.kyobobook.co.kr/comma/openColumnView.ink?sntn_id=6386

 

 

간밤에는 이스탄불에 폭설이 내렸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올라가보니, 창 밖으로 눈 쌓인 블루 모스크와 아야소피아가 보였다. 갑자기 쏟아진 눈 때문에 어제 우리의 일정은 엉망이 되었지만, 눈 쌓인 이스탄불의 아침은 아름다웠다. 게다가 어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날씨가 계속해서 이런 상태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밤새 눈은 그쳐 있었고 잠시 모습을 감추었던 갈매기도 다시 하늘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12 21, 나와 J는 오전 시간을 따로 보내기로 했다. J는 돌마바흐체 궁전(Dolmabahce Saray)[i]에 가고 싶어했지만, 나는 그 궁전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또한 그 동안 밀린 여행기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혼자 베벡(bebek)으로 가 까페에서의 조용한 오전을 즐기기로 했다.
 
눈 쌓인 이스탄불의 아침.
우리가 묵은 호텔의 가장 훌륭한 점은, 매일 아침 이러한 풍경을 바라보며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베벡은 베식타스 지구에 속하는 지역으로 많은 부호들의 별장과 요트가 늘어서 있는 곳이다. 보스포루스 해협에 접해 있어서 전망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리 특출한 구석이 있지는 않다. 그런데도 이곳이 여행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면, 그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가 이곳에 있더라는 식의 입 소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베벡의 스타벅스를 찾으면 바다로 난 테라스에 앉아 유럽에서 아시아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기에 특별한 감상에 젖을 수 있다.
 
J와 헤어져 혼자 찾아온 베벡.
이 아침 나는 스타벅스와 그 옆에 있는 까페 네로를 차례대로 오가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혼자 까페에 앉아 여행기를 대충 메모해두고 있자니, 돌마바흐체 궁전을 둘러보고 온 J가 도착했다. 이 날 오후, 우리가 둘러보기로 한 곳은 오르타쿄이(Ortakoy)와 탁심 광장(Taksim square)이었다. 오르타쿄이는 베벡에서 버스로 딱 여섯 코스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러니까 버스를 타면 금방이지만, 오랜만에 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 날씨가 즐거워 나와 J는 해안가를 따라 걷기로 했다.
 
해안가를 걷다가 만난 낚시를 즐기고 있는 아저씨.
맑은 날은 아니었는데 비나 눈이 내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신이 나서 걸었다.
하지만 세 코스 정도 걷고 나니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나와 J는 경보라도 하듯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오르타쿄이에 도착했다.
 
 
오르타쿄이는 작은 마을이다. 둘러볼 만한 벼룩시장이 있다고 들었지만, 막상 가 보니 작은 가판대 몇 개가 모여 있는 정도였다.[ii] 반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는 마을이었고, 쇼핑을 그리 즐기지 않는 우리에겐 더더욱 심심한 곳이었다. 그래서 그리 복잡하지 않은 골목을 휙 둘러보고, 오르타쿄이의 명물(?)이라는 쿰피르(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쿰피르는 내가 터키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만족스러운 음식이었다!)로 점심 겸 저녁을 대신한 후, 우리는 탁심 광장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오르타쿄이에서 탁심 광장으로 가려면 DT2 버스를 타면 된다. 이 사실 또한 우리는 무작정 거리를 걷다가 이번에도 먼저 친절은 베풀어온 터키쉬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 왔던 길을 되짚어 올라가 정류장 앞에 서면, 곧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 버스에 올라탈 때까지만 해도 나와 J, 그 이후 우연히 마주친 풍경 하나 때문에 우리의 저녁 일정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목적지를 지나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창 밖 풍경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버스에 앉아 있노라면, 문득 커다란 경기장 하나가 눈 앞에 나타났다. 축구장만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드는 본능 때문에, ‘? 경기장이다!’하고 작은 소리로 외치면 J는 이곳이 다름 아닌 베식타스의 홈 경기장[iii]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는,
 
우리 내일 경기 있으면 보러 올까?”
 
하고 물었기에,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도 차차 멀어지는 경기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내가 무언가 걱정스러워 보였는지 J는 다시 한 번,
 
나중에 호텔 가서 경기 일정 찾아보자.”
 
하고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 때 내가 걱정한 것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지난 십 년간 줄기차게 축구장을 다녀본 사람의 직감으로, 그 날의 경기장 주변 분위기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 경기가 있을까 봐 그러는 거야”.
 
하고 대답을 하면, 그렇게 걱정만 하고 있는 나와 J는 확실히 달랐다. 정말로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J는 핸드폰으로 베식타스의 경기 일정을 찾아보았고, 그렇게 우리는 바로 그 저녁, 오후 8시에 경기가 펼쳐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계를 보면 이제 갓 5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경기를 보기에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내리다시피 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내리고 나서 안 것이지만, 우리는 그곳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 이제 어떻게 하지?’하고 주변을 둘러보면 마치 운명처럼 우리 곁으로 머플러를 목에 두른 채 걷고 있는, 그러니까 축구장으로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한 한 무리의 남자 아이들이 지나갔다.
 
쟤네도 축구장 가는 것 같지?”
.”
그럼 우리 쟤네 따라갈까? ”
 
그럴 때 나와 J는 죽이 너무 잘 맞았다. 그렇게 우리는 어디인지 알지도 못하는 거리를 앞에 걸어가는 네 명의 남자 아이들만 보고서 무작정 따라 걷기 시작했다.
 
탁심 광장으로 향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이노누 스타디움.
이 경기장을 만남으로 해서 우리의 여행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추억이 남게 된다.
 
 
이노누 스타디움(Inonu Stadium)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건 그로부터 15분쯤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렇게 결국 경기장으로 돌아온 우리가 어쩐지 어이없어서 나와 J는 서로 웃음을 터트렸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다시 기온이 내려간 데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도 다시 시작되었지만, 추위가 생각도 안 날 만큼 그때 우리는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일단 경기장을 찾아오긴 했는데 티켓 오피스는 어디인지, 과연 티켓이 남아있기는 할는지, 또 티켓 가격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단 티켓 오피스부터 찾고 보자 하는 마음으로 경기장 앞으로 다가가면,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를 향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동양 여자라는 이유로 참 많은 시선을 받아보았지만, 터키에서는 그 정도가 조금 더 높았지만, 터키의 그 어떤 곳에서보다도 이 경기장에서의 집중도가 최고조였다. 축구를 보러 온 듯한 축구팬들이, 이런저런 간식거리를 팔고 있던 거리의 장사꾼들이, 필요 이상으로 그 수가 많아서 우리를 조금 긴장하게 만들었던 경찰들이, 그리고 경기장 주변에 잔뜩 서 있던 진행요원들이, 모두 다 하나같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지금껏 내가 마주쳤던 터키 남자들은 우리가 뭔가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보이면 언제나 먼저 다가와 도움을 주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 축구장에 모인 남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도 먼저 말을 걸진 않았고, 오히려 놀리는 듯 휘파람을 불면서 지나치고는 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사람들이 왜 축구를 남자들의 스포츠라고 인식하는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이곳에는 우리가 알던, 그 친절한 터키 남자가 한 명도 없었다. 대신 거칠고 불친절한, 그래서 왠지 겁이 나고 피하고 싶은, 무서운 남자들만 잔뜩 있는 듯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과연 이 경기를 보기로 한 것이 잘한 일일까 생각을 했다. 어쨌든 터키는 이슬람 국가였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축구장 주변에서는 여자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 딱 맞춰 축구장을 찾아왔는데 그냥 돌아가고 싶은 마음 또한 없어서 우리는 꿋꿋이 티켓 오피스를 찾아냈다. 그리고 어느 좌석의 티켓을 살 것인가 잠깐 고민을 하다가, 마음 같아서는 W석에 앉고도 싶었지만 갑작스레 지출하게 된 여행 경비인데 한 사람 당 100TL가 넘는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우리는 결국 서포터석일 것이 뻔한 Yeni acik의 티켓을 두 장 샀다  
 


[i] 오스만 제국의 제 31대 술탄인 압뒬 메시트의 지시에 의해 건축되었고 1856년 완공되었다. 터키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케말 아타튀르크도 이스탄불에 오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가 서거할 때까지 머물렀던 방의 시계는 여전히 그가 사망한 시간인 9 5분에 멈춰 있다.  
[ii]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오르타쿄이의 길거리 시장은 일요일에 열린다고 한다.
[iii] Besiktas JK. 이스탄불을 연고지로 하는 스포츠 클럽으로 축구, 농구, 배구, 핸드볼 등 많은 분야의 참여하고 있다. 베식타스 축구팀은 돌마바흐체 궁전 바로 앞에 위치한 이노누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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