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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기 8] 터키의 하늘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본문

Before sunrise/메르하바, 나의 친절한 터키

[터키 여행기 8] 터키의 하늘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dancingufo 2013. 3. 13. 08:43

 

http://news.kyobobook.co.kr/comma/openColumnView.ink?sntn_id=6596

 

 

 

여행이라는 것은 종종 우연히 마주친 하나의 이미지에서 시작된다. 세상의 수많은 도시들 중, 어떤 특별한 도시에 가보아야겠다고 마음 먹는 일은 그리 대단하거나 특별한 계기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한 번의 우연이나 그 우연이 가져다 준 하나의 이미지 같은 것이 우리를 낯선 곳으로 떠나게 한다. 지금까지 나는 그런 식으로 새로운 도시들을 만나왔고, 카파도키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카파도키아를 처음 만난 건, 누군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놓은 사진 한장에서였다. 그것은 갓 동이 트기 시작한 하늘 위로 수많은 벌룬들이 떠오르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저 벌룬을 타러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카파도키아가 어떤 곳인지 알지 못했고, 하늘을 나는 것 말고는 그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전혀 몰랐다.
 
 
갓 동이 트기 시작한 검푸른 하늘 위로, 수많은 벌룬들이 떠오른다.
이러한 풍경 하나 때문에 나는 카파도키아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카파도키아로 떠나기로 결정한 이후 알게 된 것이지만, 이 지역은 개별적으로 여행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땅은 넓은데 볼거리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볼거리들을 연결해주는 교통편도 그리 발달해 있지 않아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여러 가지의 투어 상품을 이용한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다니는 걸 싫어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자기 차로 운전하며 다니지 않는 이상, 이 지역을 둘러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래서 나와 J도 숙소를 통해서 세 개의 투어를 패키지로 신청했다. 이런 식으로 신청을 하면, 10%정도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그 중, 첫 번째로 경험했던 것은 차량과 가이드가 제공되는 종일 관광 투어인데, 내 속도 대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겐 이 그린 투어가 영 체질에 맞지 않았다. 물론 데린구유 지하도시는 나쁘지 않았고, 으흘라라 계곡을 걷는 시간은 상쾌했으며(하지만 가이드가 자꾸만빨리빨리라고 재촉했기 때문에 종종 그 상쾌함의 흥이 깨졌다.), 영화 스타워즈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셀리메 수도원은 무척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러한 곳들을 나 혼자의 힘으로는 둘러보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기에 후회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 그린 투어를 마친 후에 남은 두 번의 투어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했던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기대했던 벌룬을 타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났다. 우리가 벌룬 투어를 하기로 한 이 날은, 마침 12 25일이었다. 일부러 날짜를 맞춘 것은 아닌데 일정을 짜다 보니 그리 되었다. 어쨌든 덕분에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물론 그러한 아침을 맞기까지는 다소간의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말이다.
 
벌룬 투어는 보통 아침 일찍 시작되고, 때문에 동이 제대로 트기도 전에 일어나야 한다. 우리 역시 다섯 시 반에 데리러 오겠다는 연락을 받은 터라, 알람을 잘 맞춰놓고 일어났는데, 어찌된 일인지 한참을 기다려도 우리를 데리러 오기로 한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바들바들 떨면서 대문 앞까지 나가 보았지만 인기척이 들리지 않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나와 J가 멀뚱 멀뚱 서로를 쳐다보다가, 대체 왜 이렇게 늦는 걸까 하는 따위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괜스레 펜션 밖으로 나가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는 사이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쯤 되자 나와 J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어서 우리는 기다리기를 그만두고 방 안으로 들어와 침대 위에 쓰러져 버렸다.
 
그렇게 우리가 다시 잠이 들 때쯤,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섯 시 반에 우리를 데리러 오겠다던 사람들이 일곱 시가 넘어서야 나타난 것이다. 잠결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 그들은 자신들이 늦은 이유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여행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이런 짜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말이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불만 토로를 덜 하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잔뜩 뿔이 난 상태였지만, 터키 남자들을 상대로 불만을 터트려 보았자 별 도리가 없었다. 때문에 그냥 말없이 차에 올라타면, 덜컹거리는 길을 따라 얼마쯤 달린 후 넓은 벌판 위에서 차가 멈추어 섰다.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여러 개의 벌룬들.
이 풍경이 내 기분을 단숨에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차에서 내리자, 여러 개의 벌룬들이 벌판 위에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마자, 방금 전까지 품고 있던 불만스러운 기분들을 금세 잊었다. 들판 위에는 간단한 다과도 준비되어 있어, 테이블 앞으로 다가가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그러자 잠이 덜 깨 멍했던 머리도 한결 말끔해지면서 카파도키아의 아침 풍경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벌룬이 펼쳐진 후, 날아오를 준비를 끝내는 데까지는 삼십 분쯤 시간이 걸렸다. 준비가 된 것은 큰 벌룬과 작은 벌룬이었는데, 모여 있는 사람들 중 누가 어떤 벌룬을 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작은 벌룬을 타고 싶어서 그쪽으로 기웃거렸는데, 마침 우리 이름은 그 곳으로 예약되어 있었다. 저쪽을 보니 큰 벌룬에는 스무 명은 족히 넘는 사람들이 타는데, 이쪽에는 조종사를 제외하고는 단 여섯 명만 함께 바구니에 올랐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바구니 속으로 들어가면 벌룬은 이제, 하늘로 날아오른다.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높게. 처음엔 무섭다며 자리에 주저 앉았던 J, 나중엔 용기를 내서 슬쩍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본다. 그러자 눈 앞에 펼쳐진 장관에 무서움도 잃었는지, 어느 새 카메라를 손에 들고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
 
이렇게 하늘을 날아보고 싶어서 카파도키아에 왔다.
12 25. 터키의 하늘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는 하늘을 날지 못하기 때문에, 하늘을 나는 동안 행복해지는지도 모른다. 높은 곳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길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독수리가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한때는 인조 날개를 사다가, 우울할 때면 그 날개를 달고 앉아있기도 했다. 그러니까 하늘을 날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비행기를 타는 것도 좋아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사방이 막힌 채로는 하늘을 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패러글라이딩을 하겠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카파도키아까지 와서 벌룬을 탄다.
 
우리가 탄 벌룬을 조종하는 재키는, 솜씨가 무척 좋은 듯하다. 때로는 어느 집의 지붕에 닿을 만큼 낮게 날다가도 또 금세 하늘 높이 올라가 구름 속을 훨훨 난다. 한참을 날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진기하기 그지없는 카파도키아의 풍경이 신비로운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크리스마스 아침은 조금 추웠지만, 그 추위마저도 마냥 상쾌하게 느껴지는 시간들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카파도키아의 모습.
카파도키아의 풍경은 터키가 신으로부터 받은 축복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한 시간쯤을 우리는 하늘에서 보냈다. 어느 순간부터는 사진을 찍는 것도 관두고, 두 팔을 밖으로 내뻗은 채 멍하니 세상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 순간 조금씩 땅이 가까워졌다. 저쯤에서 벌룬의 착륙을 돕기 위해 저쯤에서 미니 버스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몇 번의 들썩거림 끝에 벌룬에서 내리면, 갈대가 무성한 벌판 위에서 어느 새 또 한 번 테이블이 펼쳐졌다.
 
그러니까 사고 없이 무사히 벌룬을 마친 데 대한 축하주를 마시는 시간이었다. 와인 두 어 잔과 함께 각자의 이름이 적힌 증명서 같은 것도 주는데, 별것 아니긴 했지만 나름대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벌룬 투어의 가격은 110~150euro 정도 하기 때문에, 경비가 넉넉지 않은 여행자들에겐 조금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내가 벌룬을 타고 싶다고 말했을 때, J의 첫 반응도 가격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투어가 끝난 후에는, 이 벌룬을 탄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들이 너무 즐거워서, 내일 또 벌룬을 타고 싶다고, 아니 매일매일 벌룬을 타고 싶으니 이 곳에 와서 벌룬을 조종하는 파일럿이 될까 보다고, 나는 흥에 들떠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우리가, 처음 우리를 태우고 왔던 미니 버스 속에 앉아 별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있을 때, 갑자기 버스 문이 확 열리더니 누군가 터키 국기가 그려진 풍선 두 개를 휙~ 하고 날려 주었다. 그 풍선을 보자마자, ‘우와, 우와~’ 하고 감탄사를 터트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은 별로 관심도 없어 보이는 그 풍선을 얼른 하나씩 손에 들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우리가 탄 벌룬을 조종했던 재키.
벌룬 투어를 끝낸 후에 받게 되는 증명서.
벌룬 투어를 마친 후 나눠 마셨던 와인.
그리고 나와 J가 하나씩 나눠 가진, 터키 국기가 그려진 붉은 풍선.
 
 
그렇게 우리 손에 들어온 빨간 풍선은 우리가 카파도키아를 떠날 때까지 방 안을 둥둥 떠다녔다. 사흘 후, 짐 가방을 모두 챙긴 후 혹시나 빠뜨린 것은 없나 하고 방 안을 둘러보니 어느 새 조그맣게 줄어든 풍선 두 개가 침대 옆에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공기가 모두 빠져 볼품없어질 풍선이었다. 하지만, 그 풍선을 처음 손에 들었던 때의 기분은 언제까지나 나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기억으로 남을 테니, 나는 아쉬움 없이 내 작은 풍선들과 안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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