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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sunrise/터키 축구 이야기

터키에 대해 알고 싶은 몇 가지

dancingufo 2013. 6. 17. 12:15



2013년 3월 26일. 오늘도 이스탄불엔 비가 내린다. 그러고 보니, 페네르바체 경기장에 갈 때면 늘 비가 오는 듯하다. 이스탄불에 온 이후, 한 번도 맑은 아시아 지역을 본 적이 없는 것은 그런 이유다. 페네르바체 경기장에 갈 때면 언제나 비가 내렸고, 그래서 막연하게 ‘이 팀은 나와 잘 맞지 않아.’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오늘도 그곳에 가야 한다. 터키와 헝가리의 월드컵 지역 예선전이 페네르바체 홈구장인 쉬크뤼 사라졸루 스타디움(Şükrü Saracoğlu Stadı)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가까운 곳에 있는 이노누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하면 좋을 텐데, 생각을 해보지만. 페네르바체 홈구장 쪽이 시설이 더 좋은 듯하니 어쩔 수 없다. 7년 전 새로 보수를 했고, 그 때 확장 공사를 한 덕에 수용 인원도 많고, 2008/2009시즌에는 UEFA컵의 결승전 장소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쉬크뤼 사라졸루 스타디움으로 가려면 페리를 타건 버스를 타건 어쨌든 대륙을 건너야 하므로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래서 서두른다고 서둘렀건만 비속에서 좀 헤매다 보니 경기 시간에 늦고 말았다. 때문에 허둥지둥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보지만, 티켓을 가지고 있어도 관중석 안으로 들어가는 건 쉽지가 않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대표팀 경기에서 역시 표에 적힌 좌석 번호 같은 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좌석은 물론 다를 것이다. 하지만 터키 축구장의 서포터 석에는, 늘 실제 존재하는 좌석보다 입장한 관중이 더 많아 보인다. 오늘도 그런 상황은 변함이 없고, 그래서인지 출입구마다 사람들이 잔뜩 모여 서 있어서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조금이라도 빈 자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 경기장을 빙빙 돌다가 발견한 것은 진행 요원들과 경찰들마저 경기 진행에는 이미 관심이 없고 그라운드 상황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커다란 글씨로 STAFF라거나 POLICE라고 적혀 있는 형광색 조끼를 입고서는, 관중석으로 우루루 몰려가 넋을 잃고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우리 자리를 찾아달라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상황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설 자리를 찾아냈다. 1층으로 내려가 보니 뒷줄에는 몇 자리쯤 비어있는 곳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출입구를 통해서는 도무지 그곳까지 갈 수 없을 것 같아, 우리는 살짝 담을 뛰어넘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겨우 자리를 잡고 서 보니, 페네르바체 홈구장은 시야가 정말 좋다. 북측 관중석의 1층에 서서도 이 정도로 경기가 잘 보인다면, 서쪽 관중석의 시야는 얼마나 멋질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그런 시야 덕분에, 터키에서 축구를 본 이래 가장 집중해서 경기를 볼 수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충격적이게도, 터키 대표팀이 내가 예상한 것보다 축구를 너무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너무 뜨거운 나라라, 이 나라가 당연하게 축구를 잘하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와 함께 4강에 진출한 이후, 터키 대표팀은 한 번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현재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도 D조 4위에 머무르고 있으니, 브라질 월드컵에서 역시 터키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실들을 그제야 깨달은 나는, 골대 앞에 선 부락 일마즈가 몇 번이나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마는 걸 한심하게 지켜본다. 갈라타사라이에서 뛸 때는 굉장하다고 생각을 했건만, 그건 다 드록바가 수비수들을 끌어내주기 때문이었다며 잘 알지도 못하는 비난을 해본다. 


그렇게 터키 대표팀은 지지부진하게 전반전을 끝내더니 후반전이 시작되자 선제골을 넣었다. 골이 들어가자 온 관중석이 들썩들썩 하는 것이, 내 입에서도 절로 노래가 흘러 나온다. 랄랄랄, 랄랄랄, 랄랄랄, 투르키예! 랄랄랄, 랄랄랄, 랄랄랄, 투르키예! 대표팀에서의 응원은 베식타스 팬들의 응원보다 훨씬 간단해서 따라 부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선제골을 넣는 과정은 너무나 어려웠는데 동점골을 내주는 건 그렇게 쉬울 수가 없다. 터키는 선제골을 넣은 지 8분 만에, 수비수 세미 카야의 어이없는 실수로 헝가리에게 동점골을 내주고 만다. 경기는 그렇게 원점으로 되돌아 갔고, 결승골을 기대해 보지만 90분이 다 될 때까지 터키 선수들은 별로 훌륭한 경기를 하지 못한다. 그렇게 터키는 월드컵 본선 진출로부터 또 한 발짝 멀어졌지만 어쩐 일인지 팬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차분한 반응을 보여준다.


어떤 팬들이 철조망을 두드린다든가 문을 발로 찬다든가 하면 옆에 있던 다른 팬들이 곧장 그런 팬들을 나무랐다. 경기 중에도 어느 구역에서 화약 같은 것을 터트리자, 다른 구역에 있던 팬들이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터키 팬들은 거친 것 같지만, 실은 자율적으로 규제를 잘 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런 모습은 언제나 무질서해 보이지만 나름 그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터키라는 나라와 아주 잘 어울렸다. 




한 가지 문제는 출입구가 매우 좁은데 사람이 많아서 그곳을 빠져나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관중석을 빠져 나오다가 얼마간 꼼짝달싹 못한 채 터키 남자들 속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러자 주위는 어둡고 사람들은 조금씩 밀려오고 이 근처 어딘가가 계단이었는데 이러다가 발이라도 헛디디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다행히도, 넌 대체 왜 여기 있는 거냐? 하고 물어보듯 우리를 쳐다보던 수십 개의 눈들이 어쨌든 얘네부터 좀 내보내줘라, 라는 듯한 태도로 우리를 안전한 쪽으로 안내해 주었기에 나와 제이는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경기장 밖으로 나오자 이미 시간은 열한 시가 가까워져 있다. 유럽 지역으로 넘어가는 페리는 당연히 끊겼을 것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지난 며칠 내내, 인터넷을 붙잡고 앉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오는 버스 편을 알아보았다. 결국 이스탄불의 버스 노선을 검색해볼 수 있는 사이트를 찾아냈고 이 사이트에서 자정이 넘어서까지도 아시아와 유럽 사이를 운행하는 버스를 알아냈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사람이 뭔가에 빠져들어 집중하기 시작하면 못 알아낼 게 없는 듯하다.


그렇게 자정이 넘어 집에 도착하면, 문득 터키 축구팬들에게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진다. 만약 우리나라 대표팀이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게 된다면, 마치 한국 축구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의 기사들이 쏟아질 것이다. 월드컵과 무관하게 리그가 존재하고, 국제 대회 성적이 어떠하든 리그는 계속된다는 것을 한국 사람들이 이해할까? 월드컵에 한두 번 나가지 못하는 것이 한국 축구의 끝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리그팬 이외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단정짓긴 힘들지만, 어쨌든 터키 사람들에게 대표팀의 축구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진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들에게 페네르바체가, 갈라타사라이가, 또는 베식타스 J.K가 어떤 이미지를 가진 팀인지도 알고 싶어졌다. 처음엔 그저 터키 축구를 보고 싶어서 이곳에 온 것인데, 이렇게 한 경기 두 경기 그들의 축구를 보다 보니 이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고 그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진다.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알고 싶어지는 게 많아지는 것은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하나 둘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될 때, 단순한 이방인의 호기심으로 터키 축구를 바라보던 내 마음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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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도시답게 축구팀 역시 유럽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팀과 아시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팀이 따로 있다. 현재 1부 리그에서는 총 다섯 개의 클럽이 이스탄불을 연고지로 하고 있으며(베식타스, 갈라타사라이, 페네르바체, 카심파사, 이스탄불 부육셰히르) 이 중 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팀은 페네르바체뿐이다.


2) 부락 일마즈는 갈라타사라이 소속의 선수로 지난 시즌에는 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바 있다. 터키 국가 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이며, 현재 챔피언스리그에서 득점 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기도 하다. 부락 일마즈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는 것은 이 선수에 대한 나의 높은 기대치를 에둘러 표현한 것뿐, 부락 일마즈가 실제 경기에서 나쁜 플레이를 펼친 것은 결코 아니다. 


김민숙(스포탈코리아 칼럼니스트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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