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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감독님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7.01 ~ 2007.12

나의 감독님

dancingufo 2007. 6. 27. 12:17

 


http://www.sportsseoul.com/news/soccer/pro/070626/2007062690443378000.htm


나의 감독님은, 친자식보다도 더 애틋하게 선수들을 걱정하고 또 걱정하셨지. 때로는 그 사랑이 부러워서 제발 그 아들들 걱정만 하지 말고, 우리 딸들 걱정도 좀 해달라고 떼를 쓰고 싶었어. 처음엔 차마 감독님의 읽을 수 없었던 편지를 읽고, 읽고, 다시 읽으면서 매번 목에 걸리는 말이 있어. 서러운 날이 있었다는 말. 애틋했던 만큼 또 서러우셨다는 말. 


서러우셨구나. 나의 감독님. 힘드셨던 거구나. 나의 감독님.


잊을 수 없어. 감독님의 뒷자리에 앉아서, 조곤조곤 감독님과 나누었던 대화들. 그 두시간 삼십분의 시간 동안 당신은 팬들의 눈을 조금 더 이해하고자, 팬들의 마음에 조금 더 다가가고자, 끊임없이 이런 저런 질문들을 던지셨지. 미래를 생각할 것인가. 당장의 성적을 낼 것인가, 어린 팬들이 줄어든 이유는 무엇인가. 서포터들의 무리는 어떻게 나눠져 있는 것인가. 쉬지 않고 팀에 대해 생각하고 걱정하시는 마음. 내 마음에도 그대로 전해져서, 나는 행복했던 것 같아. 이분이 나의 감독님이라는 사실. 이분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숙소에 들어오셔서 아들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까. 숙소를 찾아오는 팬들을 거리낌없이 식당으로 불러 들여 밥이라도 한 끼 먹여 보내려고 하신다던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였을까. 숙소 한 켠에 토끼들을 데려다놓고, 숙소에 도착할 때면 가장 먼저 그 토끼들에게 밥을 먹이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였을까. 


생각해보아도 기억나지 않아.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이분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당장 리그 중위권으로 뛰어 올랐던 성적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분에게 감사와 존경을 전하던 선수들의 태도 때문만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모든 업적은 선수들에게 돌리고,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돌리던 모습을 5년 동안 보았지. 그럴 때마다 당신도 가끔은 독한 말 좀 해보라고, 때로는 남의 탓도 해보라고 얘기하고 싶었어.

 

어두운 퍼플 아레나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의 감독님을 기다렸던 기억이 떠올라. 대전 시티즌을 좋아해온 시간 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바로 그때였던 것 같아. 김은중이 결승골을 넣고 승리를 가져다주었던 순간보다도. 배기종이 내 앞에서 골을 넣은 후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순간보다도. 내가 가장 행복했고, 내가 가장 잊을 수 없고, 내가 가장 아름다웠다고 기억하는 순간은 바로 그 때였던 것 같아. 

나는 가도 좋은 팬들은 여전할 테니, 계속해서 이 팀을 사랑해 주라고 당부하셨지. 아름다운 이 경기장도 여전할 테니 자신이 떠나도 큰 일은 없을 거라 하셨지. 하지만 나는, 퍼플 아레나와 나의 감독님을 대전의 가장 자랑스러운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그 자랑스러움 때문에 늘 흥에 겹고 뿌듯하고 흐뭇했는데. 그랬는데 이제는, 나쁜 꿈처럼 그 중 하나를 잃고 말았어.


이제 다시 그 시간들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한동안은 아무리 나의 감독님이 뵙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르지. 이제는 대전을 찾아도 나의 감독님을 뵐 수가 없어. 그곳에 나의 감독님이 안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워서, 나는 이제 대전을 찾고 싶지가 않아. 퍼플 아레나에 웃으면서 뛰어 들어갈 자신도 없어. 


그래도, 그래도, 다시 또 나는 대전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승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퍼플 아레나에 발을 들여놓겠지. 어쩌면 때로는 다른 분에게 감독님, 이라 부르고 그분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그분에게도 좋아하는 감독님이라고 말하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그런 순간에도,


내게 친아버지가 영원히 단 한분이듯이 내게 진짜 감독님도 단 한분일 거야. 최윤겸, 을 잃어버렸다는 이 상실감. 축구를 보는 내내 잊을 수 없겠지. 나는 내 팀의 팬으로서 가장 소중히하던 것을 잃었어. 그래도 그래도, 잃어버린 그것을 잊지는 않을게. 행복했다고 말하신 그 시간들을, 잊어버리진 않을 거야. 그리고 나중에 더 훌륭한 모습으로 돌아오셨을 때, 그 때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길. 역시 나는 당신이 지휘하던 나의 팀이 가장 좋았다고. 지금도 나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그립다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길.


그러니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자. 너무너무 좋아했던 나의 감독님도. 그리고 그 감독님을 잃어버린 우리도.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멀지 않은 미래에 웃으면서 다시 만나자. 


안녕, 안녕,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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