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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문, <어떤 작위의 세계> 본문

피도 눈물도 없이

정영문, <어떤 작위의 세계>

dancingufo 2013. 7. 2. 16:40





[언젠가 이후로 아무리 해도 마음에서 우러나 기꺼이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 삶의 가장 큰 실질적인 어려움이 되었고, 그 어려움을 늘 상대해야 했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상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마지못해 할 수 있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결국에는 주로 또다시 무의미하고도 알 수 없는 글을 쓰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겠다는 약간의, 하지만 거의 원대하게 느껴지는 소망을 갖고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곤 했는데 그것은 무척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글이 씌어지는 날은 많지 않았고, 글이 씌어지더라도 실망스러워 모두 버리게 되는 날이 많았다. 


그런 상태로 한동안 있는데, 조금씩 어떤 불편한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것에 대단히 작위적으로 여겨졌다. 그 순간에도 이 경험을 어떤 식으로든 글로 옮기려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순간의 경험을 글로 옮기기에 유리하게 조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는 멘도시노의 숲 속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생각에 빠진 그 경험이 글로 옮겨질 경우 어떤 모습을 갖추게 될지를 생각했고, 어떤 막연한 밑그림을 만들었다.


언젠가부터 그런 식으로, 어떤 순간을 순수하게 경험하기보다는 그 순간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의식하며, 의식과 감정까지 조작하며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어떤 잘못처럼 여겨졌고, 나 자신이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뻔한 수작을 벌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나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편안함은 내가 어떤 작위의 세계 속 한가운데 있기에 주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오래도록 너무나 작위적인 삶을 살아왔고, 이제는 작위적인 것이 내게는 자연스러웠다. 내가 작위적인 삶을 산 것은 삶의 그 무엇도 사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고, 그에 따라 삶에 진지할 수 없었고, 삶의 어떤 사실들이 아니라 그 사실들에 대한 생각들에만 관여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이것이 나의 삶의 가장 큰 실질적인 어려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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