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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dancingufo 2013. 8. 6. 14:16







쉬는 화요일. 새벽 네시 반에 잠에서 깼다. 무얼 할까 하다가, 집 앞에 새로 생긴 영화관에 조조영화를 보러 갔다. 내내 기다리고 있던 <설국열차>를 보는 날이었다. 혹시나 뭔가를 기대하거나 실망할까봐, 어떤 것도, 아무것도, 보지 않고 찾아온 영화였다. 


나름 몰입도는 높았지만,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 그리고<마더> 만큼도 재미있진 않았다. 게다가 나는 잔인한 영화를 괴로워하는데, 이 영화는 잔인한 장면도 장면이지만 잔인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 그래서 몇 번 눈을 감고, 또 몇 번은 눈을 가린 채 있다가


에드가를 왜 그렇게 빨리 죽였어?

커티스가 참 잘 생겼구나.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알고보면 사치야.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게, 봉준호가 갑자기 물었다.


"앞칸에 타든, 뒷칸에 타든, 이 기차는 계속 순환돼. 그런데도 넌 계속 이 기차 안에 있을 거야?"

"... ..."

"아니면, 나갈래?"






모든 혁명이 허탈한 것은, 그 많은 생명을 희생하고도 착취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혁명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안쓰러워 할 뿐이다.) 우리는 자리를 바꾸어 서지만, 결국 누군가는 스테이크를 먹고 누군가는 바퀴벌레를 먹는다. (그래서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을 쓴 것 아니겠는가. 네 발은 옳다! 하지만 두 발은 더 옳다!) 


꼬리칸은 지옥이지만, 엔진과 함께 있는 윌포드도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내가, 사는 게 뭐 별 거 있어?, 라고 말하는 동안, 봉준호는 그렇게 물어온 것이다.


"여기 있을래? 아니면 나갈래?"






좋은 영화란, 어떤 식으로든 세계관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일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어떤 영화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그 영화에 깃들어 있는 세계관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 


<플란다스의 개>를, <살인의 추억>을, <괴물>과 <마더>를, 그리고 또 한 번 <설국열차>를 좋아하게 된 나는, 봉준호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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