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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1일, 드디어 Nick Hornby! 본문

아무도 모른다/2014.01 ~ 2014.12

2014년 12월 21일, 드디어 Nick Hornby!

dancingufo 2014. 12. 22. 03:01




01.


이곳에서 닉 혼비, 의 책을 사려고 시도한 건 여러 번이다. 처음엔 중고서점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닉 혼비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아일랜드의 꽤 큰 서점인 Eason도 몇 번이나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나는 닉 혼비를 한 번도 찾아내지 못해서, 결국 언니가 한국에서 'Fever Fitch'를 원서로 주문해 이곳으로 보내주어야 했다. (물론 더는 한국책을 읽지 않고 참을 수 없어진 나를 위해, 책 몇 권을 보내주는 김에 닉 혼비의 것도 함께 보내준 것이긴 했지만.)


나에게 닉 혼비는 영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작가 중 하나로 인식되어 있는데, 어쩐지 이곳에서는 그를 안다는 사람조차 만나보지 못해(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이티브가 아니었다.), 아일랜드에서는 닉 혼비를 끝내 찾아낼 수 없는 걸까 생각하고 있던 찰나,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갑자기, 닉 혼비가 내 앞에 나타났다.



02.


그러니까 희정이와 함께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싶긴 한데 둘 다 너무 배가 불러서 커피숍엔 들어가지 못하고, 거리나 좀 돌아다닐까 하다가, 종종 가판대에 책을 내놓고 파는 사람들이 오늘도 잔뜩 늘어서 있는 걸 발견하고, 나는 본능적으로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리에서 파는 중고책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마저 가격대가 그리 싸지 않은 경우가 많아, 나는 별로 관심도 두지 않고 이 책 저 책을 슬쩍 넘겨보는데, 나와는 다른 쪽으로 다가간 희정이가, 유아틱한 느낌의 표지를 가진 책 한 권을 관심있게 넘겨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내게 묻기.


"언니, 이 펭귄 너무 귀엽지 않아?"


그래서 고개를 들었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오마이갓. 오마이갓!"



03.


희정이는 갑작스런 내 반응에 놀라서 '왜? 왜?'하고 되묻는데, 나는 그런 희정이가 들고 있던 책을 거의 빼앗듯 가져온다. 


"세상에, 닉 혼비잖아!"


그리고 다시 소리를 지르기. 


물론 희정이는 닉 혼비를 모른다. 희정이는 마거릿 대처도 모르고, 버지니아 울프도 모른다. 제임스 조이스나 버틀러 예이츠를 모르는 것 정도는 그냥 넘겼는데, 대처와 울프를 처음 들어본다는 말 앞에서 나는 너무 당황했고, 그래서 아무 말 않는 내 표정을 보더니 희정이가 먼저 


'언니, 미안. 내가 좀 바보야.'


라고 사과를 한 적이 있다. 


그러니, 희정이가 닉 혼비를 알 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희정이를 붙잡고, 세상에! 희정아! 드디어 찾았다!를 연발하다가, 바로 그 책 밑에 놓여 있는 책도 닉 혼비의 책임을 깨닫고 또 소리를 질렀다.오마이갓. 어바웃 어 보이도 있잖아! 오마이갓!



04.


그렇게 닉 혼비를 찾아냈다. 아직 읽지 않은 원서가 다섯 권이나 있고, 오만과 편견도 진도를 못 내고 있는 중이면서, 또 책을 두 권 더 사는 나를 잠깐 스스로 탓했지만


이게 내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라고 스스로를 변명하기. (하지만 크리스마스에는 에딘버러에 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이다;)



05.


사실 <Looking for Alaska>와 <The fault in our stars>는 내 형편없는 영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Pride and Prejudice> 앞에서 나는 한참 버벅대고 있는 중이다. 물론 난 <오만과 편견>을 이미 읽었다. 워낙 좋아하는 책 중 한 권이기도 해서, 내용도 대체로 잘 기억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원서로 읽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렵다. 그래서 내가,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선택했다고 느끼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읽던 책을 도중에 덮는 걸 도무지 잘해내지 못하는 나는, 여전히 잘 안 읽히는 이 책을 가지고 전전긍긍중인데,


희정이가 출근 시간이 되어 먼저 까페를 떠나고 혼자 남겨진 후, 심심해서 <About a boy>를 펼쳤다가, 이 책이 술술 읽히는 것에 조금 놀랐다. 그러니까 <Pride and Prejudice>은 좀 접어두고 <About a boy>나 <Fever Fitch>를 읽고 싶어진 것이다. 


 

06.


한국을 떠나올 때도, 책 때문에 고생하는 나를 보고, 큰언니는 책을 다 갖다 팔라고 했다. (오마이갓! 언니는 지환이를 갖다 팔라면 팔 거야?) 엄마는 이 책 어디 다른 데 좀 맡겨놓으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엄마도 안 맡아주는 책을 누가 맡아준다고 그래!) 그렇지만 난 책을 팔지도 못했고, 다른 데 맡기지도 못해서, 결국 고향집의 비어있던 방 한 칸이 내 책으로 가득차 버렸고. ('민숙아, 이 책 상자에 넣어서 베란다에 놔두면 안 돼?' '안 돼, 엄마. 그러면 책에 곰팡이 쓴단 말이야.' '책에 무슨 곰팡이가 쓴다고 그래?!' '아니야. 책도 오래 상자에 넣어두면 상해.') 잠시 한국에 왔다가 그 방을 목격한 큰언니는, 어디 지환이 읽힐 책 없나, 하고 내 책을 호시탐탐 노렸다고 했다. ('언니야, 그 책 가져가면 민숙이가 엄청 화낼 걸?' '이 중에 몇 권 없어진다고 지가 어떻게 알아?' '민숙이 더블린 갈 때 책장 다 사진 찍어서 갔어. 그리고 걔 지가 가진 책 목록 엑셀로 정리도 해놨다던데?'). 


그렇게 책 때문에 조마조마해하며 여기로 와놓고, 이곳에서 또 책을 모으기 시작중이다. 이곳에서 얼마나 살게 될지도 모르고, 또 언제 어느 곳으로 옮겨가게 될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책을 사도 될까, 가끔 고민하지만


결국 결론은 그렇다고 사면 안 될 건 뭐람, 이라는 것이다. 이게 내 즐거움인데, 이 즐거움을 모른 체 하고 살 거라면 대체 이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을 테니 말이다.



07.


어쨌든, 드디어 닉 혼비를 만나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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