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15년 6월 25일, 본문

아무도 모른다/2015.01 ~ 2015.12

2015년 6월 25일,

dancingufo 2015. 6. 26. 00:00




01.


오랜만에, 메인바를 떠나 레프트뱅크에서 일을 하던 지지난주 금요일의 일이다. 내 테이블은 그럭저럭 다 정리가 잘 된 상태여서, 어디 거들 일이 없나 주위를 둘러보다가 비키가 다섯 잔의 캭테일을 만들고 있는 게 보여, 그걸 메인바에 가져다 주려고 비키 앞에 섰는데, 갑자기 비키가 물었다.


"How are you?"


비키는,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고갈티 최고의 매니저이고, 사실상 거의 유일한, 매니저다운 매니저이지만, 사실 그리 친절하거나 다정한 성격은 못된다. 도네는 요즘 나를 보면 늘 반갑게 인사를 하지만, 비키는 그 날 처음 만나도 늘 보는 둥 마는 둥, 데면데면 대하고 마는 사람. 그런 비키가, 그 날 처음 마주친 것도 아니고, 몇 번이나 서로 지나친 마당에 갑자기 'How are you?'라니,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인사를 하니, 나도 인사를 받았다.


"Good."


그런데 그런 내게, 비키가 문득 되물어 왔다.


"Are you sure?"


그러니까, 그 되물음도 좀 뜬금없어, 나 역시 비키에게 되물었다.


"Don't you think so?"


그러자 비키가 대답했다.


"No, You look so tired."


물론, 나는 all exhausted한 상태로 살고 있었다. 지난 5주간, 나는 일주일에 하루씩 밖에 쉬지 못했다. 일주일에 평균 55시간씩 일을 했고, 그 중에서도 금요일은 내 최악의 요일로, 아침 10시 30분에 내가 gogarty 오픈을 하고 새벽 4시에 마감까지 해야 했다.


그러니 무슨 수로 내가, 피곤하지 않을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비키는 매니저이고, 나는 비키를 너무나 좋아하니, 그냥 괜찮다고 이야기하며 넘어가도 될 상황이건만,


힘들면 힘들다고 징징대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이야기했다.


"I need more day off."


그러자 비키가, 어느 정도는 장난스레, 하지만 최대한 진심을 담아, 나를 흘겨 보았다. 그 표정을 보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라는 비키의 속마음이 들리는 듯해서, 나 또한 반은 장난스레, 하지만 최대한 진심을 담아, 쓸데없는 소리해서 죄송합니다! 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돌아섰는데,


지난주 수요일, 새로운 로스터를 받아들고 깨달았다. 역시 비키는 나의 천사라는 걸. 바랄 걸 바래야지! 라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 보았지만, 비키는 정말로 나에게 6주 만에 이틀의 day off를 주었고, 그렇게 이틀을 쉰 덕분에 나는 실로 오랜만에, 좀 살 것 같은 몸상태로 되돌아왔다. 


 

02.


사실 난, 도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프랭크가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만 요즘 들어서는 비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도네가 나를 좋아하든 말든 상관없고, 프랭크가 나를 싫어하든 말든 그 또한 상관없지만, 비키가 나를 싫어한다면 좀 슬플 것 같았다. 하지만 비키는, 싫으면 '나 너 싫어!'라는 것을 온 말과 온 행동으로 보여주는 프랭크와, 좋으면 '넌 좀 Okay야.'라는 걸 세상 사람 모두가 다 알게 만드는 도네와는 달리, 자기의 호불호에 따라 스태프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타입이 아니어서 그 마음을 읽기가 좀 어려운 사람이다. 


그런데 이틀전, staff room에 앉아서, 그 날도 어김없이 나를 집에 보내주지 않는 프랭크 때문에 폭발하고 있는 나에게 제니퍼가 말했다.


"단, 네가 훨씬 일찍 출근했는데 내가 먼저 집에 가서 미안해. 하지만 프랭크가 날 싫어하는 걸 어떡해? 프랭크가 널 좋아하니까, 만날 너만 남기는 거야."

"아니야, 제니퍼. 그는 날 좋아하지 않아. 다만 그는 날 싫어하지 않을 뿐이야. 보통 프랭크는 모두를 싫어하는데, 나는 별로 싫어하지 않아. 그리고 그게 가끔 날 미치게 만들어. 왜냐하면 프랭크는 절대 날 집에 일찍 보내주지 않으니까. 오늘 내가 일찍 출근한 게 문제가 아냐. 난 내일 메인바 오픈을 해야 한다고. 10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하는데, 벌써 자정이 넘었어. 그런데 파울라도 출근한 지 2시간만에 보내버리고, 너도 가라 그러고, 대체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야."


그러니까 난 벌써 2주째 계속되고 있는, Frank day의 악몽에, 심각하게 짜증이 난 상태였다.  안나와 비키의 day off인 데다 요즘 도네까지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화요일을 Frank day라 부르고 있다. 그러던  지난주 화요일, 프랭크는 자기가 싫어하는 제니퍼에게 버럭버럭 화를 낸 후, 출근한 지 두 시간 밖에 안 된 제니퍼를 집에 보내버리고, 레프트뱅크에서 일하고 있던 나에게 와 물었다.


"단, 나 여기서 한 명 데리고 가도 돼?"

"응?"

"나 제니퍼 집에 보낼 거야. 그러니까 나, 마리아 데려간다?"


그 날 난, 뉴 바텐더 셔니와, 플로어 스탭으로 처음 일해보는 산토스와, 고갈티에 들어온 지 이제 한 달 좀 된 마리아와 넷이서 일을 하고 있었다. 뉴 스탭, 뉴 걸, 뉴 바텐더들과 일하는 건 그렇지 않아도 레프트뱅크를 싫어하는 나를 더 심한 긴장 상태로 몰아넣었고, 그래서 신경 바짝 세우고 있던 나에게 프랭크는 그런 부탁 같은 통보를 한 것이다. 하지만 프랭크에게 제니퍼를 집에 보내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결국 난 마리아를 메인바로 보내주고, 산토스에게는 테이블 다섯 개만 넘긴 채 나 혼자 테이블 스물 한 개를 관리하느라 정말 말 그대로 죽을 뻔 했다. 그렇게 겨우 레프트뱅크를 마감하고 난 후 이제 집에 보내주겠지 생각했건만-


프랭크는 메인바에서 잘 일하고 있던 파울라를 집에 보내고, 결국 나에게 메인바 마감까지 시켰다. 프랭크가 제니퍼를 싫어한다는 것, 파울라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그렇게 확실하게 증명되었는데, 문제는 이번주 화요일 로스터도 지난주 화요일과 정확하게 똑같았다는 것이다.


어제도 레프트뱅크를 오픈하고 한참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프랭크가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단, 파울라랑 제니퍼 둘 중 한 명 정해서 집에 보내."


그러니까 둘 모두 출근한 지 두 시간밖에 안 된 상태였다. 게다가 자기가 한 명을 정하는 것도 아니고 날더러 정하라니. 무슨 말인가 싶어 쳐다보니


"둘 다 disaster야. 둘 중 한 명, 네가 보내고 싶은 사람 보내고 네가 메인바로 와."


라는 말만 남기고 가버렸다. 내가 요즘 고갈티에서 자칭 타칭, queen of mainbar로 통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녁 타임엔 메인바에서 일을 하기 싫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가고 나면 레프트뱅크를 관리할 사람이 없어, 결국 난 파울라를 집에 보내고 나 대신 마리아를 메인바로 보내준 후 다시 또 부족한 일손에 내내 긴장하며 정신없이 뛰어다녔건만,


10시 45분에 나를 퇴근시켜주겠다던 프랭크는, 퇴근하려고 float을 반납하러 간 나에게 이런 청천벽력같은 말을 남겼다.


"단, 제니퍼 집에 보내."

"응?"

"제니퍼는 진짜 disaster야. 쟤 집에 보내고 네가 메인바 organize해."

"나 집에 가지 말라고?"

"안 돼. 넌 지금 가지 마."


그래서 난 결국, 이 사람의 신뢰를 받느니 미움을 받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에 불만 폭발을 하며 제니퍼에게 하소연을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제니퍼가, 나에게 말을 했다.


"대신, 비키는 늘 너를 빨리 집에 보내주잖아."


뜬금없는 말에, 응?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니


"비키는 조금만 안 바쁘다 싶으면, 늘 이렇게 말하지. 음, Dan, you can go home. Dan, you can go home. 너는 월요일이 쉬는 날이고 난 월요일에 일해. 그런데도 얼마 전 일요일에, 그때 내가 너보다 출근도 빨리 했어. 그런데도 비키는 너를 집에 보냈잖아. 난 그때, 세상에 말도 안 돼! 지난주 일요일에도 한가하다고 단을 8시에 보내줬으면서, 이번주에도 단을 보내주다니. 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제니퍼, 나는 금요일마다 내가 오픈하고 마감까지 해."

"알아. 물론 그건 힘든 일이야. 하지만 너는 요즘 마감 거의 안 하잖아. 그리고 너 몸 안 좋다고 했을 때, 비키가 너 3시간만 딱 일하고 집에 보내줬지? 근데 너 그거 알아? 파울리나가 금요일엔가 토요일엔가, 몸이 너무 안 좋다고 조금 빨리 보내주면 안 되냐고 비키한테 말했는데 그 날 파울리나 마감까지 한 거? 그런데 그 날, 너 마감 직전에 보내줬다며?"

"응. 2시엔가 보내줬어."

"것봐. 프랭크가 널 안 싫어해서 프랭크 데이마다 네가 힘든 건 사실이지만, 대신 로스터를 짜는 건 비키고 비키가 매번 너부터 신경써주는 건 애들이 다 알아."


물론 난 제니퍼나 라리사가, 내 로스터에 대해서 불만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름, 꽤, 사이 좋게 지내기 때문인지 에더나 아리안느가 'Dan, your roster is the best one.'이라고 말하고 만다면 제니퍼나 라리사는 가끔 대놓고 화를 내기도 했다. 너 또 집에 가? 왜? 너 내일 day off잖아? 오늘은 네가 마감할 차례 아니야? 그럴 때면 난 한편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걸 결정하는 게 나인 것도 아니니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생각하며, 비키한테 따져, 비키한테 물어봐, 라며 넘어가곤 했는데


실은 아이들이 뒤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제니퍼는 꽤 사이좋게 잘 지내니, 웃으면서 이야기해줬겠지만, 썩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것이 첫 번째 감정. 그렇지만 어쨌든 비키가 나를 좋아한다고 모두가 생각한다니 조금 기분이 좋은 것이 두 번째 감정. 


왜냐하면 비키는, 내가 고갈티를 버티게 하는 유이한 이유니까. 



04.


지난주 수요일, 진짜 나에게 이틀의 쉬는 날을 보장해준 비키에게 너무 고마워 나는 문자를 보냈다.


"비키, two days off 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쉬고 돌아가서, 더 열심히 할게!"


그리고 목요일, 마주치고도 별말 없던 비키가, 토요일 오후, 내 곁을 쓰윽 지나가다 갑자기 물었다.


"How was your holiday?"


내가 언제 홀리데이를 가졌더라? 라고 순간 생각했지만, 곧 그것이 나의 day off를 가리킨 농담이라는 걸 깨닫고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어 보였다. 


"Awesome, awesome. Thank you, Vicky."


그러자 비키가, 베실 웃으며 나를 지나쳐갔다. 나보다 어린, 리투아니아에서 온,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귀엽고 카리스마 있는 비키. 가끔 나는, 비키를 실망시키기 싫어하는 내 마음을 비웃지만, 어쨌든 고갈티에, 이렇게 좋은 매니저가 한 명이라도 있어서 참 다행이다. 



05.


그리고 비키 외에, 나를 버티게 하는 또 다른 존재는 바로 안나이다. 


폴란드에서 온 안나는, 벌써 9년째 고갈티에서 일을 하고 있고, 그러니까 실은 비키보다도 더 오래 고갈티에 몸 담고 있는 셈이다. 표정도 없고 말투도 무미건조해서 차갑고 무심해 보이는 안나가, 나는 처음에 조금 힘들었지만-


데이 타임 로스터를 받기 시작하고, 안나와 같이 일을 하는 날이 하루이틀 늘어가면서, 안나에 대한 내 애정은 비키에 대한 내 애정 못지 않게 커져가는 중이다. 사실 전혀 티를 내진 않지만, girls를 care해주는 거의 유일한 존재도 사실 비키가 아니라 안나이다. 식사 손님이 많은 데이 타임에 일을 하면서, 알아야 할 것도 많고 그래서 곤란을 겪는 일도 많은 나에게, 안나는 늘 시크하기 그지 없는 표정으로 도움의 손길을 주고, 


이유없이 욕을 해대는 키친 사람들 때문에, 결국 울컥해 입술 꽉 깨물고 눈물을 참는 나를 알아채고, 


"단, 그 사람들이 뭐라고 했어? 말을 해봐, 키친 사람들이 뭐라고 해서 너 우는 거잖아?!"


라고 대신 화를 내준 것도 안나이다.


"안나, 나중에 말할게."

"지금 말해. 너한테 뭐라고 한 거야?"

"안나, 지금 내가 말하면 울 것 같아서 그래. 나중에 말할게."


라고 말하고, 나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안나에게 고마워서 또 조금 울컥했다. 


바쁘고 정신없을 때면, 자기도 신경이 날카로워져 짜증스런 표정을 하지만, 내가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어쩌지, 어쩌지'하고 있으면 면박을 주는 대신 내 모자를 휙 하고 한 대 때리며 그 실수를 아무도 모르게 숨겨주는 것도 안나이고, 모르는 게 많아서 그 만큼 질문도 많은 나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많이 해줘서 메뉴에 대해 공부하게 해주는 것도 안나이다. 


안나는 매니저가 되기는 싫다며, 마틴의 제의를 거절했지만 사실 상 매니저나 다름 없고 매니저 미팅에도 꼬박꼬박 참석을 한다. 그런데도 나는, 비키는 조금 어려워 하지만 조금씩 안나와는 수다 떠는 것도 편해져서,


손님들에게 rude한 내 행동도 많이 들키고, new staff을 답답해하는 모습도 자주 들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데임 타임 로스터를 많이 받는 이유가 안나의 의견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건 미승이를 통해서 알았다. 


"애들이 뭘 모르네. 언니가 데이타임 로스터를 받을 수 있는 건 비키가 언니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안나가 언니를 좋아하기 때문이야."

"그래? 왜?"

"원래 비키가 로스터 짤 때, 물어봐. 안나한테만 묻는 것도 아니고 바텐더들한테 종종 물어봐. 웨이트리스 누구 넣어줄까, 하고. 당연히 안나 의견을 많이 존중하지. 안나는 짬이 있으니까. 원래 데이 타임 제일 많이 받는 게 파울리나였는데, 요즘 보니 언니가 파울리나 타임을 거의 꿰찼더라. 원래 데이 타임엔 안나가 같이 일하고 싶어하는 웨이트리스들을 넣어주는 거야."


그러니까 사실, 바텐더가 누구냐에 따라 나 역시 일할 때의 기분이 달라지는 게 사실이다. 오래 일한 바텐더들이 모두 관두고, 이제는 나보다 더 늦게 들어온 바텐더들이 늘어나면서, 안나와 일하는 시간은 일종의 축복처럼 느껴질 정도로 의지가 된다. 마찬가지로 바텐더들도 플로어 스태프가 누구냐에 따라 일할 때의 스트레스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금토일월, 나흘을 연달아 메인바 오픈을 하는 건 좀 힘이 들지만-


그럼에도 안나가 있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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