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15년 7월 14일, 본문

아무도 모른다/2015.01 ~ 2015.12

2015년 7월 14일,

dancingufo 2015. 7. 14. 22:53

 


01.


토요일 저녁, 나는 다음날 또 오픈을 해야 하는데 자정이 넘도록 집에 갈 수가 없다. 

 

프랭크가 이번에도 또,

제니퍼와 루페와 엘레노라 세 명을 동시에 다 집에 보내버렸고, 

그런데 하필이면 제니퍼와 엘레노라는 일요일이 day off 이고 루페 역시 일요일 늦게 일을 시작하는 멤버라,

셋 모두 토요일 마감 멤버였고, 


하지만 그 셋이 모두 다 집에 가버렸기 때문에, 

대신 다음날 일찍 출근을 해야 하는 나와 라리사와 마리아가 늦게까지 일을 해야만 한다. 


그래도  다음날 10시 30분까지 출근을 해야 하는 나는 새벽 1시에 퇴근을 하고, 

다음날 12시 30분까지 출근을 해야 하는 라리사와 마리아가 새벽 4시 마감까지 일을 했다는 이야기는 다음날 들었다. 


이렇게 프랭크는 고갈티의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든다. 

프랭크가 싫어하는 아이들은, 너무 일을 적게 해서 불만이고

프랭크가 싫어하지 않는 아이들은, 너무 일을 많이 해야 해서 불만이다.



02.


금요일 오후에도 그랬다.


나는 10시 30분에 출근해 오픈을 했고, 파울라는 6시에 출근을 했고,

그런데 Leftbank가 그다지 바쁘지 않은 것을 보고,

프랭크가 쓰윽 나타나 


'한 명은 그냥 집에 가라.'


라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그래서 누굴 보낼까?'


고민하고 있을 때, 파울라가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단, 난 오늘은 일찍 집에 가기 싫어."

"그래? 난 제발 집에 보내줬으면 좋겠어."

"난 지난주에 28시간인가 밖에 일 안 했단 말이야."

"진짜?"

"응. 너는?"


그러니까 나는, 56시간을 일했으니 정확하게 파울라의 두 배를 일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프랭크는 파울라를 집에 보냈고,

대신 나는 또 새벽 2시까지 남아 있어야만 했다. 



03.


그러니까 나는, 그런 프랭크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스태프에 대한 호불호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자기 마음 편하자고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어린아이 같은 행동에 짜증이 치밀었고,


한 번 싫은 사람이랑은 말 섞는 것도 싫어하는 성미라,

요즘은 프랭크가 뭘 시키든 말든 대답도 잘 안 하는데,


어쩌자고 프랭크는 툭하면 Radio로


"Dan, when you have chance come to main bar."

"Dan, do you hear me? Could you come to main bar?" 


하고 나를 불러대, 프랭크 노이로제에 걸리기 일보직전이다. 


그나마 비키가 있는 날은, 비키가 내 몰골을 보면 집에 보내줄 거라는 희망이나 가져보지만

비키가 없는 Frank day에는 그런 희망도 무용지물이다. 


나흘을 연달아 메인바 오픈을 한 월요일. 

나는, 더 이상은 서 있는 것조차 힘이 들어 못하겠는데


또 다시 나를 호출한 프랭크가


"단, 너 지금 네 테이블 길한테 다 팔고 메인바로 와줄 수 있어?"


하고 부탁 같은 명령을 했고,

하지만 나는, 더는 북적거리는 메인바에서 사람들에게 치이기도 싫었을 뿐더러

프랭크와 얼굴 맞대고 일하기도 싫어서 


"왜?"


하고 정색을 하고 되물었다.


그러니까 제니퍼는, 프랭크에게 감히 '왜?'라고 물어보는 사람은 너뿐일 거라며 통쾌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메인바로 와서 마감을 하라는 프랭크의 말에


"Are you sure?"


하고 되묻던 내 말투를 심심하면 흉내내는 것도 제니퍼이다. 


"단, 넌 프랭크 안 무서워?"


하고 묻는 제니퍼를 가만히 보면, 요즘 프랭크의 미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제니퍼 입장에서는

프랭크가 좀 무섭기도 하겠다 싶지만


"Not at all."


하고 나는 대답을 한다.


나는 프랭크가 무섭지 않다.


 물론, 프랭크는 나에게도 가끔 못되게 굴 때가 있다. 하지만 난, 


"Fuck off, Dan."


하고 눈을 부라리며 말하는 프랭크에게, 그냥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그래봤자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나를 집에 보내거나 나를 짜르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까.

난 집에 가는 것도 짤리는 것도 무섭지 않으니까. 


그리고 실은, 프랭크가 날 짜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 말에 대답도 잘 안 하는 나를 끈질기게 메인바로 불러대는 건,

내가 일하는 걸 마음에 들어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04.


그렇게 메인바로 왔으면 좋겠다는 프랭크의 말을, 에둘러 거절하고

끝까지 레프트뱅크에 남아 마감까지 한 월요일

 

내가 또 유령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갑자기 바텐더 앤디가, 고개를 불쑥 내밀면서 묻는다.


"Dan, are you okay?"


음, 그러니까 앤디는, 내가 안나 다음으로 같이 일하고 싶어하는 바텐더이다. 


그렇지만 앤디는 요즘 King of Launge로 불리우고,

나는 메인바 붙박이 노릇을 하고 있는 터라 도통 같이 일할 기회가 없었는데

월요일에는 오랜만에 앤디를 만났다.


"I wanna be okay."


그래서 베시시 웃으며 대답을 했더니, 앤디도 피식 웃는다.


"단, 엄청 지쳐보여."

"응. 오늘도 내가 오픈했거든."

"지저스, 오늘도? 그리고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거야?"

"응. 정말 죽을 것 같아. 서 있는 것도 너무 힘들어."


그런 내가 불쌍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앤디가 목 좀 축이라며 물을 따라 건네준다.

그러니까, 젠틀하다는 게 뭔지 온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앤디.


그리고는 새벽 1시에 마감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내게, 갑자기 앤디가 다시 말을 건다. 

 

"단, 아주 피곤하다고 했지만 그런데도 넌 너무 잘했어."

"그렇게 생각해?"

"응. 실수도 하나도 안 하고, 오히려 다른 웨이트리스들 음료도 네가 다 서빙해주고. 필요한 게 있을 때마다 너한테 부탁해서 미안. 언제나 네가 나의 hero야."


앤디의 다정한 말에, 피곤이 좀 가셔서 웃었다.  



05.


앤디는 내가, 와인병을 혼자 따지 못한다는 걸 안다. 

처음 한두 번 내가 와인병을 따지 못하는 걸 보고 도와준 적이 있는데,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월요일, 또 큰 와인을 주문한 테이블이 있어


아, 이렇게 바쁜데 저 와인병을 붙잡고 또 씨름을 해야 하나.

내가 아직도 와인 뚜껑을 못 따는 걸 보면 비키가 답답해하겠지?


하며 걱정하고 있는데,

비하인드 바에서 건네어진 와인병은 이미 뚜껑이 따인 채이다.

그러니까 앤디가 내게 주면서 미리 오픈을 해준 것이다.


가끔 내가 와인병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을 때면,

안나 역시 혀를 끌끌 차며


"단, 이리줘."


하고 말하긴 하지만-


앤디는 벌써 두 번째, 내가 말도 하기 전에 내 와인병을 대신 열어주었다.

고갈티에서 계속 일하려면 어쨌건, 이 와인병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어쨌거나-

나에게도, 앤디는 종종 hero이다.



06.


그렇게 겨우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서 세어보니

나흘만에 벌써 40시간 일을 했다.


반면에 같이 퇴근을 한 제니퍼는,

메인바 마감을 안 해서 좋긴 하지만

나흘 동안 13시간 밖에 일을 못해서 걱정이라며 한숨이다. 


처음에 일 잘하기로 소문났던 제니퍼가 어쩌다 이렇게 눈 밖에 난 걸까, 싶으면서도

그래도 프랭크 한 명 제니퍼를 마뜩찮아 하는 걸 거야- 생각을 했지만


새로운 로스터를 확인한 후, 

나와 제니퍼는 동시에 또 한숨을 쉰다.


New girls가 좀 들어오면서 모든 웨이트리스가 이틀의 쉬는 날을 받았는데

나만 6일을 일하는 일정이다.


그 와중에 제니퍼와 엘레노라는 단 4일을 일한다. 


쉬는 날이 없어서 나는 또 짜증이 나고,

안 그래도 툭하면 집에 보내버리는데 일하는 날마저 4일 밖에 안 된다고 제니퍼 역시 짜증이 났다. 


그리고 고갈티를 나서려는데, 제니퍼가 묻는다.


"단, 모두가 다 너를 좋아해."

"응?"

"프랭크도 너를 좋아하고, 도네도 너를 좋아하잖아."

"프랭크는 나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싫어하지도 않는 거지."

"그 정도면 엄청 좋아한다는 뜻이야. 어쨌든 난 프랭크가 널 집에 보내는 걸 본 적이 없어. 도네도 네가 the best one이라고 했고. 그리고 비키도 널 사랑해." 

"그건 내가 비키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모두 다 단을 사랑한다니까. 넌 손님한테 별로 친절하지도 않은데. 그치?"


그래서 난 잠깐 하하- 소리를 내 웃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손님들에게 한없이 불친절하다. 그럼에도 모든 매니저들이 다 나에게 잘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이 나의 진짜 모습을 모르거나, 그들이 원하는 게 친절한 웨이트리스보다는 눈치 빠른 웨이트리스이기 때문이거나. 



07.


그렇게 모든 매니저들의 인정을 받은 대가로, 

나는 고갈티에서 가장 일 많이 하는 스태프인 삶을 살고 있다.


꼼꼼히 우리의 pay slip을 비교해본 적 없으니, 

나는 아리안느나 에더나 라리사가 나와 비슷하게 일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금요일 오후, 함께 점심을 먹으며 우리의 pay slip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알았다.

그 중 누구도 매주 50시간 넘게 일하고 있진 않다는 것.

하긴, day off가 더 필요하다고 징징대는 나에게 

비키가 선심쓰듯 이틀의 쉬는 날을 준 이후, 

나는 또 일주일에 하루밖에 쉬지 못하는 스케쥴을 받는 고정 멤버로 돌아왔고


금요일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새벽 4시까지 일을 하는 유일한 멤버이기도 하니까. 



08.


그러니까 난 이제, 내가 고갈티에서 일하는 한 이러한 사정이 나아질 리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니까 난 이제, 내가 얼마나 오래 일하고 있는가 하는 일로 비키에게 징징대지도 않기로 했다. 

 

이제는 그냥 모든 것에 지쳤고, 

고갈티에서 나는 너무나 행복하지 못하니까, 


이제 그만 고갈티와 안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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