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15년 7월 23일, 본문

아무도 모른다/2015.01 ~ 2015.12

2015년 7월 23일,

dancingufo 2015. 7. 24. 06:21



01.


넉달 반을 일했는데, 사년 반을 일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고갈티에 오기 전에는 내가 아일랜드에서 뭘 했는지, 죄다 잊어버린 것 같다. 



02.


[비키,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응.]

[나, 곧 그만둘 거야.]

[오, 안 돼, 단. 노노, 나한테 그런 이야기 하지마.]


피곤하고 지친 비키의 대답. 


[프랭크한테 말해.]

[응?]

[아니야. 아니, 그래. 어쨌든 너 글로 써서 레터를 내.]

[나도 알아. 그럴 건데, 그냥 레터 내기 전에 너한테 말하고 싶었어.]

[그래, 알았어. 하지만 언제까지 일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레터로 써서 줘.]


피곤하고 지쳐서, 짜증스러운 비키의 대답.


나는 그런 비키에게 서운한 걸까? 아니, 나는 비키가 그럴 거란 걸 모르지는 않았지.



03.


최소 두 명이서 마감을 하는 게 정석인 메인바에, 레프트 뱅크를 마감한 내가 도착하자 비키는 메인바에서 일하던 두 명을 다 집에 보내버렸다. 그렇게, 당황스럽게도 혼자 메인바에 남겨진 나는, 그래, 많이 바쁘지 않으니까 내가 모든 걸 다 해낼 수는 있지만. 그렇다 해도 어떻게 이 마감을 나로 하여금 혼자 하게 만드는 걸까, 생각을 하며-


터덜터덜 혼자 메인바를 헤매던 도중, 라운지에 있던 라리사가 잠깐 take away box를 가지러 메인바에 내려왔다. 그런 라리사에게 슬쩍 불평 한 마디.


[라리사, 나 지금 여기 혼자다?]

[뭐???]

[나 여기 오니까, 비키가 산토스는 비하인드바로 불러 들이고 나탈리아는 집에 보내버렸어.]

[말도 안 돼!]

[응, 물론 오늘 그리 바쁘지는 않아서 내가 다 할 수는 있어. 그래도 메인바 마감은 할 일 되게 많은데, 그치?]

[단, 그게 문제야. 네가 혼자 다 할 수 있다는 것. 그걸 그들이 아니까 너만 남겨두는 거라고.]

[그렇지.]

[Poor Dan.]

[그러게, Poor Lari.]



03.


라리사와 나는, 같은 시기에 고갈티에 들어왔지만, 내가 메인바 붙박이 노릇을 했던 것처럼 라리사는 레프트 뱅크 붙박이 노릇을 해왔던 터라 이상하게 서로 만날 일이 정말 없었다. 메인바와 레프트뱅크를 꾸준히 오가며 일했던 에더와 제니퍼가 우리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어, 어떻게 어떻게 한 무리로 묶여지지 않았다면 라리사와 공감대가 생길 일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매니저들이 가장 일 많이 시키는 고정 멤버로 


단과 라리사, 가 확정되면서 나와 라리는 마지막까지 함께 남겨지는 일이 잦아졌다. 그 날도, 또 레프트 뱅크를 둘이서 마감하고 다시 메인바 마감까지 해야 했던 날- 짜증과 억울함으로 한껏 흥분한 나와는 달리 어김없이 침착함을 잃지 않은 라리가 말했다.


[우리가 피곤하든 말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그냥 그들은, 아, 그래, 단이나 라리사는 할 수 있으니까 그냥 맡겨, 라고 생각하는 거야. 쟤네한테 맡기면 별 문제는 없어, 이렇게 생각하고 마는 거지. 프랭크가 매번 우리 둘한테 마감시키는 것도 그래. 프랭크는 이렇게 생각하는 거야. 화요일엔 나 말고 아무도 없어. No Anna, No Donney, No Vicky. 그러니까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길 바라는 거고, 그래서 무조건 너랑 나를 남기는 거야. 원래 네 day off는 월요일, 화요일이었는데 목요일로 바꼈지? 월, 화는 대부분의 애들이 다 쉬는데 우리는 그 때 절대 못 쉬어. 프랭크가 자기 day에 너랑 나를 넣어달라고 했대. 그래서 비키가 네 day off를 바꾼 거야.]


물론 나도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원래 비키가 쉬는 날은 나도 쉬고, 비키가 일하는 날에만 나도 일했던 그때는 참 좋았는데. 어느 순간 나는 나의 그 좋았던 day off를 잃어버리고 이제는 모두가 기피하는 프랭크 데이의 고정 멤버가 되었다. 모두가 기피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둘 떠맡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더라. 그래서 나는 지쳤고, 그래서 나는 그냥 그만두기로 했다.



04. 


지난주 화요일에, 에더가 먼저 레터를 냈고, 이번주 화요일에 파울리나가 그만두겠다는 말을 했고, 그리고 그 다음날인 수요일, 내가 비키에게 그만둘 뜻을 전했으니. 일주일 만에 세 명. 그리고 바로 이틀 후인 금요일에 라리사가 레터를 낼 계획이니 열흘 사이에 네 명의 플로어 스태프가 동시에 그만두는 것이다. 그것도 단 다섯뿐인 old girls 중의 네 명이.


워낙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다 보니, 매니저들은 누가 그만두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지만. 이렇게 한 번에 모든 오래된 스태프들이 동시에 떠나는 것은 드문 일이라 지금 비키가 어떤 곤란함을 느낄지는 조금 짐작도 가서, 나는 아주 조금 비키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같이 점심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이거 나름 재밌지 않아? 우리 모두가 동시에 떠나는 것. 난 이왕이면 제니 너까지 우리 다섯이 다, 동시에 다 레터를 내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그럼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그들에게 shit을 줄 수 있잖아?]


그러자 라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나도 그들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하면 재밌어. 우리가 거기서 일할 때, 걔네가 단 한 번이라도 우리를 신경썼어?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한번에 다 떠나버리는 거야. 난 나마저 레터를 내면 그들이 어떤 표정일지 진짜 궁금해.]


그러자 마주앉아있던 아리안느가, 우리가 떠난 후에도 남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약간 뾰루퉁해져 대답을 한다.


[그래서 나랑 제니는 약속했어. 한 날 한시에 같이 레터를 내기로.]


물론 우리 모두가 다 떠나도 고갈티는 어떻게든 돌아가리란 걸 안다. 하지만, 남은 스태프가 고작해야 들어온 지 한두 달 된 애들이 전부인 상태에서, 일년 최대의 성수기를 맞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만두겠다는 내 말에, 비키는 당장 노노, 를 외쳤겠지만-


이젠 정말 not my problem인 것이다. 모두가 정말 이기적으로 굴었고, 더 이상은 나는 그런 곳에서 살아남고 싶지 않다. 



05.


하지만 사실, 나로 하여금, 고갈티를 떠나겠다고 마음 먹게 한 것이 그 누구도 아닌 안나라는 건 인생의 재미있는 아이러니이다.



06.


자, 그러니까 2주 후면 진짜 Rock & Roll. 그리고 나는 다시 하늘을 날아 크라쿠프로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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