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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2015.01 ~ 2015.12

2015년 8월 13일, I am gonna miss you

dancingufo 2015. 8. 14. 09:23

 

 

01.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비키가 나에게 한 마디 말조차 하지 않는 것은.

 

letter를 낸 이후, ‘너 대체 왜 그만두는 거야?!’라고 처음 물어온 것은 레스토랑의 코니였다. 내가 그만둔다는 걸 어떻게 저 여자까지 알았을까, 싶어 나는 대답 대신 웃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며칠 후, 라운지에서 일하고 있던 나를, 갑자기 붙잡은 건 도네였다.

 

, 너 그만둬? ?”

.”

? 대체 왜? 나는 너 그만두는지도 몰랐어.”

정말?”

! 아무도 나한테 얘기를 안 해줬다고!”

나 지난주 수요일에 비키한테 그만둔다고 말했고, 금요일에 프랭크한테 레터 냈는 걸.”

그런데 세상에 프랭크가, 그 레터를 아무한테도 안 보여줬어. 마치 네가 레터를 안 낸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비키도 너 그만둔다는 얘기를 나한테 안 해줬다니까.”

그랬구나. 난 몰랐어.”

어쨌거나, 단 너 왜 그만두는데? ? 너 여기 싫어?”

 

다그치듯 물어오는 도네 앞에서 나는 또 그냥 머쓱한 웃음만 지었다. 글쎄, 도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 이곳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까?

 

, 우리는 너 되게 좋아해.”

도네, 나도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좋아. 다만.”

, 그럼 뭐가 문젠데?”

다만, 난 너무 지쳤어.”

 

그 순간 도네가, 마치 이해라도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을 때 조금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 . 여기서 일하는 건 쉽지 않아. 그리고 넌, 굉장히 열심히 일했고.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도네는, 내가 일하는 걸 자신이 얼마나 마음에 들어했는지, 일하는 동안 내 영어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늘 부산한 행동만큼이나 부산한 말투로 늘어놓았고 나는 그것으로 도네의 인사가 끝난 줄로 알았는데,

 

그로부터 며칠 후, 너무나 정신없이 바빠, 도네까지 앞치마를 두르고 플로어로 뛰어 나온 날, 혼이 나간 사람들 마냥 어쩔 줄 모르는 뉴걸들을 붙잡고, ‘엘레노라, 이건 312번 테이블에 가져다 줘.’, ‘줄리아나, 그건 메인바에 가져다주고 손님이 음식 취소한다고 했다고 비키한테 말해.’, ‘테오, 너 키친 가서 클린 커트러리랑 컨테이너 네 개만 가져다 줄래?’라고,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시키고 있는 나를,

 

갑자기 도네가 다시 붙잡았다.

 

, 너 왜 떠나는데? ? 여기 있으면 너 돈 많이 벌 수 있잖아.”

 

그러니까 난, 내가 떠나는 것에 대해 도네가 얼마나 못마땅하게 생각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도네가 그러다니. 난 진짜 생각도 못했어.’라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던 제니퍼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나는 그런 도네에게 조금은 고맙기도 했고, 벌써 세 번째 계속된 너 대체 왜 그만두는 거야!!????’라는 질문이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하면서,

 

가끔 비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니까, 도네가 나에게 이렇게 서운함을 표하는 동안, ‘, 너 그만둘 거면 레터 써가지고 와.’라고, 차갑게 한 마디 던지고 말았던, 비키에 대해서 말이다.

 

 

02.

 

, 또는 언제부터, 그렇게 비키를 좋아하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그녀가 나에게 특별히 친절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녀가, 원래 상냥한 사람인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고갈티 같은 곳에서 일하다보면 프랭크나 도네처럼, 괴팍한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듯한데, 걔 중 가장 어리면서도, 사적인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그러면서도 막상 웨이트리스들이 곤란을 겪으면, 별 말도 없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비키의 모습이 좋았던 것 같다. 나라면, 비키처럼 저렇게는 못할 거야- 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어느 순간 아이들이

 

“Vicky loves you."

 

라고, 농담 반 진담 반, 부러움 반 비아냥 반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딱히 비키가 그런 척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그녀가 나를 괜찮은 스태프로 보고 있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끝도 없이 계속되던 마감이 어느 순간 내 로스터에서 사라졌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데이터임 스케줄을 나 혼자서 독차지하다시피 했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비키는 내게 지독한 스케줄을 주기도 했다. 오전 1030분부터 새벽 4시까지라는, 다른 아이들은 웬만하면 받지 않는 로스터를 나는 매주 한 번씩 꼬박 꼬박 받았고, 최소 3~4명이서 함께 하는 마감을 혼자 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딱히 비키에게 불만을 표하고 싶지는 않았다. 모두가 무서워하는 프랭크에게마저, 나도 모르게 신경질 잔뜩 섞인 말투로 대답을 하면서,

 

비키에게는 그러고 싶지 않았고 그럴 수 없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한 번 좋으면 그냥 계속 좋다고 생각해 버리니까.

 

 

03.

 

그런 비키가,

 

비키, 나 여기 그만둬야 할 것 같아.”

 

라는 말 이후, ‘She tries to kill me'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로스터를 안겨주었다. 매일 같이 계속되는 마감. 이제는 혼자 하는 마감마저 당연하게 느껴지던 2주일. 나는 마지막 9일 동안은 단 하루의 쉬는 날도 받지 못했고, 그런 나를 지켜보던, 고갈티 스태프 중 유일하게 나와 사이가 나쁜 엘레노라가, 어느 날 갑자기 물었다.

 

, 왜 너만 매번 이런 스케줄을 받아?”

?”

그러니까, 너만 왜 매번 이렇게 끔찍한 스케줄을 받냐고. 난 그들이 너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싶었다. 아니, 어떻게 비키가 나한테 이럴 수 있는 건지 알고 싶었다.

 

 

04.

 

레프트뱅크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비키가 다가와

 

“How are you, Dan?"

 

하고 물은 건 참 오랜만이었다.

 

“Vicky, I am all exhausted."

 

그래서 나도, 오랜만에 우는 소리를 했고. 하지만 돌아온 비키의 대답은 차갑기 그지없어서,

 

“Do you know why? You are laeving, that's why you are tried."

 

나를 조금 놀라게 했고, 나는 그런 비키를 붙잡고

 

“Don't say like that. You know I was always tired, that's why I am leaving. Not because I am leaving, I am tired."

 

라고 우는 소리를 해야 했다.

하지만 비키는 가타부타 별다른 대답이 없었고, 그래서 나는 서운한 생각이 들었지만, 손님들은 끝도없이 밀려 들어와 더는 비키와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얼마 후, 또 와인병을 따지 못해 버벅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비키가 다가와 말했다.

 

이리 줘. 내가 딸게. 네 오프너는 안 좋은 거야. 그걸로는 따기 힘들어.”

 

하지만 그런 비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그 테이블은 하루에 한 번씩 만나게 되는 fucking customer의 것이어서, 와인이며 음식이며 모든 걸 다 취소해야 했을 때,

 

비키, 미안해.”

 

라는 내 말에, 이번엔 비키가 별로 차갑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버리는 비키를 보면서 생각했다. 고마워, 비키. 도와줘서 고맙고, 그리고, 여전히, 나를 싫어하지 않는 것 같아서 고마워. 라고 말이다.

 

 

05.

 

나는 나의 마지막 날로, 금요일을 택했다. 딱 하루 더 일하는 것으로, 팁까지 합하면 150유로는 더 벌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오후 3,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러 가는 나에게, 갑자기 프랭크가 물었다.

 

, 너 오늘 몇 시에 끝나?”

 

그래서 나는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오늘은 금요일 아닌가. 몇 시에 끝나는지 우리가 알 방도가 어디 있단 말인가.

 

글세, 그건 나도 모르지. 아마 마감까지 할 걸?”

 

그러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프랭크가, 역시나 이번에도 브레이크 가기 전에 7, 8번 테이블을 치우고 가라느니, 커트러리를 정리해 놓고 가라느니 이것저것 시키더니, 이제 가도 되지? 라고 묻는 나에게,

 

“I like Dan."

 

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이건 조금 많이, 뜬금없는 타이밍이랄까.

 

좋은 만남이었어. 꼭 이렇게 일하는 관계를 떠나서, 인간적으로, 그치?”

 

그래서 쳐다보는 나에게, 드디어 활짝 웃어주는 프랭크의 얼굴 때문에, 나도 그냥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프랭크. 나도 너 좋아해. 그리고 나한테 rude하지 않게 대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아이들과 마지막 브레이크를 함께 가지면서, - 이제 비키에게만 인사하면 되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떤 말로,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까, 하는 것에 대해서도.

 

06.

 

그리고 브레이크가 끝난 후 돌아온 나를, 비키는 오랜만에 메인바에 배정시켰다. 북적거리기는 하지만, 레프트뱅크에 비하면 딱히 할 일 없는 곳이라 이것저것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는데, 비하인드 바에서 일하고 있던 비키가, 주문서를 쓰고 있던 나에게 갑자기 말했다.

 

“Dan, today is your last day.”

 

그래서 쳐다보니, 비키가 웃음을 띤 듯 띤지 않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서 있었다.

“Yes, Vicky. Thank you for everything."

 

그래서 나는, 가볍게 인사를 하는데 비키는 마치 삐친 여고생마냥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Dan, Don't go. Who can work with me? Don't leave me alone."

 

그러니까, 비키가, 그런 말을 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비키가 나를, 싫어할 리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니, 내가 떠나는 것에 대해 비키가 괘씸하게 여기는 것은, 내가 떠나는 것을 그녀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그런 식으로 말을 해올 거란 건 생각지 못했기에 나는 순간 할 말이 없어졌고, 내가 얼마나 비키를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I am very sorry for leaving now. But Vicky, you were the best manager for me"

 

라고, 농담처럼 말하면 이번엔 비키도 장난스레 고개를 끄덕거리며 I was하고 말했지만,

 

그 순간 나는 조금, 울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나도 조금 서운했으니까. 친하지 않았지만 감정적으로 친밀함을 느꼈던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이 지난 2주간, 나에게 너무 힘든 시간을 주었으니까. 그러는 중에도, 비키가 전혀 싫어지지 않았으니까.

 

 

07.

 

그렇게 새벽 4시 마감까지 끝내고, 마지막으로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나오려는데, 언제나 모든 스태프가 떠날 때까지 고갈티를 지키는 비키가, 웬일인지 보이지 않았다.

 

“Frank, where is Vicky?"

 

그래서 묻는 나에게, 프랭크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I think she is gone."

“Maybe she is in the hostel, Isn't she?"

"I don't think so. Dan, she didn't want to say goodbye to you."

 

그래서 그냥 고갈티를 나오면,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들어서 비키에게 문자를 보냈다.

 

[Vicky, I expected to see you in the hostel, but I couldn't. So I didn't say 'I am gonna miss you. I hope all new staffs are doing well for you. See you again!]

 

그러자, 아무 답이 없을 것 같던 비키에게서 답문자가 도착했다.

 

[Dan, Thanks a lot for the message! You are very sweet. It was my pleasure working with you. You are a very hard worker and a very sweet personality. I wish you all the best in your travels and in the future. Don't forget us in Gogartys.]

 

08.

 

그렇게 비키와 헤어졌다. 처음, 내가 일을 잘하지 못할 때, 도네는 나에게 한없이 rude했고, 프랭크는 툭하면 나에게 심술맞게 굴었다. ‘, 오늘은 너랑 일하는 거야? , 너무 좋다!’라고, 나와 함께 일하는 스케쥴을 받을 때면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엘렌도, 처음엔 나에게 네가 모든 걸 다 엉망으로 만들고 있잖아!’라며, bitch처럼 굴기 일쑤였다.

 

Floor staff가 일을 잘해야 Bartender가 편하고, Bartender가 일을 잘해야 Floor staff가 편한 시스템이기에, 내가 고갈티에서 가장 오래 일한, 그래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장 잘 아는 Floor staff가 된 이후, 모든 Bartender들은 다 나에게 친절했다. 하지만 그 이전의 나에게, 일을 잘하게 되기 이전의 나에게 rude하지 않았던 건 비키와 앤디, 그리고 지금은 일을 그만둔 션 뿐이었고

 

그래서 나는 비키를 좋아하고, 앤디를 좋아하고, 션을 좋아했다. 그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나도, 고갈티 안에서는 그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싶었으니까.

 

 

09.

 

[앤디, 나 내 컵에 80유로짜리 카드 영수증 넣어놨는데.]

[그런데?]

[근데 봐봐. 여기 55유로 밖에 없잖아.]

[......정말?]

[. 나 여기 80유로 넣어뒀는데.]

[알아. 기억나. 그래서 내가 영수증 챙겨가고 80유로 넣어뒀는데?]

[그런데 55유로 밖에 없어. 그 이후로 나, 아무것도 주문 안 해서 돈을 쓸 일이 없었는데.]

[알아. 그것도 기억해.]

[......25유로는 어디 간 거지?]

[모르겠어, .]

[......]

[..., 근데 내가 너한테 25유로를 줄 순 없어. 왜냐하면,]

[알아. 너한테 25유로를 달라는 건 아니야. 하지만 분명히 80유로를 넣어뒀는데.]

[, 그건 나도 알아. 누군가 돈을 가져갔을 거야. 아니면, 폴의 주문에 누가 네 돈을 사용했거나. , 너 네 플롯 확인해봐. 혹시 25유로가 남지 않아? 그러면 그거, 단의 돈이야.]

[아니, 안 남는데? 나 정확하게 300유로 가지고 있는데?]

[......]

[......]

[, 내가 프랭크한테 이 상황을 말할게. 혹시 마지막에 결산을 했는데 25유로가 남으면 그거 네꺼라고.]

[앤디, 고마워. 그런데 난 프랭크가 나한테 그 돈을 돌려줄 거라고 생각지 않아. 설사 돈이 남는다 하더라도 말이야.]

[......]

[......]

[알았어. ......, 그럼 내가 마감할 때 25유로 돌려 줄게.]

[앤디, 그렇게 하면 그거 너한테 문제가 되는 거잖아.]

[괜찮아.]

[아니야. 마지막에 돈이 부족하면, 바텐더가 돈을 채워 넣어야 한다고 들었어. 그치?]

[. 그치만, 이건 내 실수기도 하잖아.]

 

그 순간, 25유로를 돌려 달라고 말할 수 없어졌다. 어디서 어떻게, 25유로가 사라졌는지 알 수 없어도. 가끔 앤디가 잔돈을 잘못 남겨주는 경우가 있긴 했어도. 그래서 난 종종, He is the best, but he has often made mistake라고 말하곤 했어도.

 

앤디가 아니라면,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앤디가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 내 손해를 보상시켜 주려고 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냥 알았다고 웃었지만, 앤디에게 돈을 돌려받지 않는 쪽을 택한 채 내 마지막 날을 마감했다.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사람들. 하지만, 고되기 그지 없는 하루하루 속에서도 조금은 나에게 위안을 줬던 사람들.

 

[, 전부 다 괜찮아? 무슨 문제 있어?]

[고마워, 앤디. 내 테이블은 다 괜찮아.]

[갈증나? 물 한 잔 줄까?]

[, 진짜 고마워.]

 

그리 다정하지 않았어도, 언제나 젠틀했던 앤디. 그리 친절하지 않았어도, 왠지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비키.

 

지금 이렇게 고갈티를 떠나면서 장담하건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나는 이 사람들이 무척 그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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