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15년 10월 6일, 본문

아무도 모른다/2015.01 ~ 2015.12

2015년 10월 6일,

dancingufo 2015. 10. 9. 05:18


 

내가 얼마나 나쁜 년인가 하는 것을 모르는 척 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서운해하는 나를 비웃으며, 올해도 한 해가 간다. 내가 처음 스스로를 보면서 나이가 들었다, 고 느낀 것이 십 년 전의 일이라 해도, 사실 난 지난 십 년 동안 스스로를 늘 어린아이쯤으로 여겨왔다. 그러니까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철이 든, 똑똑한 어린아이 정도.

 

, 이제 여기서 유년기는 끝났습니다.

 

라는 느낌으로 그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다 자란 아이인양 굴어왔지만 실은 그 동안 단 한 번도 나 스스로를 어른으로 느끼지 않았다는 걸.

 

그 사실을 깨닫게 해주어서 나는 류블랴나가 좋았다. 아니, 류블랴나가 좋아서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건가. 아니면 그냥 이 두 가지 사실은 전혀 별개의 문제인지도. 어쨌든 난, 류블랴나가 너무나 좋았고 그리고 그 류블랴나에서 두 가지 결심을 했다. 돌아가서 이제 그만 내 생활로 돌아가겠다는 것. 그리고 이 감정에 대해서 더는 생각하지 않겠다는 것.

 

 

 

 

아일랜드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펍에서 일주일에 55시간씩 일을 하며 살아도 좋으니, 아일랜드에 머물 수 있게 해주길 바랐다. 그런데 이제, 웨이트리스 노릇은 그만할 거야. 좋은 경험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해. 일주일에 고작 100유로 받으며 아이 셋을 돌보는 오페어 노릇도 이제 그만할 거야. 잊어버리고 있었던 게 있다. 그러니까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어도 좋아.’

 

라는 내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실은 내가 잘 알고 있었다는 것.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들이 있다. 5년 후에는 무엇을 하겠다거나. 그 동안 돈을 얼마쯤 모아서 그 다음은 또 무엇을 하겠다거나.

 

나는 그냥, 발길 가는 대로, 이리저리 떠돌며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는 데 돈이 얼마나 들까? 라고 물어보는 이들을 한없이 한심하게 여기며, 나는 마치 그들과 전혀 다른 특별한 사람인 양 굴면서. 하지만 자, 유년기는 정말로 오래 전에 끝이 났다. 자기 자신에게밖에 관심이 없는, 세상이 내 위주로 돌아가는 게 당연한, 어린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내가 제일 유치해. 







계속 울고 싶었던, 류블랴나에서의 시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성 프란체스코 교회에 앉아서 내가 생각한 것. 류블랴나 캐슬로 걸어 올라가며 내가 떠올린 것. 


그 사실들을 기억하면서 더블린으로 돌아가야지. 





더블린에 있을 수 있어서 정말로 좋았다. 응, 정말로 좋았다. 살면서 내가 한 선택들 중, 최고의 것이었다 할 만한 것 중 하나가 더블린으로 오기로 한 것일 거야. 


힘들었고, 외로웠고, 춥고, 가난했지만. 좋았던 기억들이 너무 많아. 나는 이곳에 온 이후에야 I'm deadly happy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김단, 으로 살 수 있어서 좋았고 너를 만나서 너무 좋았고, 희정이를 만나서 너무 좋았고, 


여전히 그리운 티아고. 잘 통하지도 않는 말들로도 같이 웃고 떠들 수 있었던 내 친구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다시 공부하는 즐거움. 아, 그러니까 정말로 행복했어. 덕분에 나는 앞으로 조금 더 잘 살 수 있을 거야.




그래도 이제 더블린에서 더는 머물지 못한다는 이유로 슬퍼하지 않을 거야. 한국에서 꼭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처럼, 꼭 더블린에서 살아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이리저리 떠밀리며 방랑하는 건 그만하고,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더블린은 아니라는 사실을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