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3.12.29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1 ~ 2005.04

2003.12.29

dancingufo 2003. 12. 29. 02:12


01.

왕의 귀환을 봤다. 한 장면이라도 더 내용을 모르고 보고 싶어 온갖 잡지 정보와 온갖 싸이트에 올라온 감상글 따위를 애써 외면하며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영화를 구했다는 소식에 금요일부터 들떠있던 것을 일요일 저녁에서야 원정대를 만난다. 보고 싶었던 레골라스. 프로도. 아르곤. 샘. 김리. 피핀. 메리. 모두 다 안녕. 


02.

우리 집에 살고 있는 남자 덕분에, 나는 가끔 남자들의 생각에 혀를 내두르곤 하는데 영화나 축구를 볼 때는 그 정도가 두 배가 된다. 예를 들면 최용수가 국대의 엑스맨쯤 된다고 생각하는 그 태도나, 답답하고 나약해서 프로도가 싫다는 그 말들을 접할 때.


03.

왜 프로도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냐고 물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못하는 걸 프로도만이 할 수 있었다는 건 왜 잊어버린 걸까. 아, 물론 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04.

아니아니. 없었다 해도 프로도는 해냈을 거다. 아무리봐도 내 눈엔 프로도가 가장 강해보이니까.


05.

여전히 보기 좋은 레골라스. 슬쩍 웃는 눈짓 하나만으로도 좋은. 유난히 마음에 드는 얌전하게 땋은 머리. 그래서 레골라스는 불멸의 삶을 행복하게 누렸을까?



06.

그리고 멋진 아르곤. 믿음이 얼마나 강한 힘을 발휘하는지 절절하게 보여준 샘. 알고보니 반지의 제왕은 호빗들의 영화더군. 메리와 피핀도 어찌나 흐뭇하든지.


07.

이제 더 이상의 기다림은 없다. 덕분에 설렘도 없어지게 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적어도 오늘 밤까지는 반지를 메고 힘겹게 걸음을 옮기던 프도로를 생각해야지. 곤도르와 로한의 병사 앞에서 언젠가 패배의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 때가 아니라고 외치던 아르곤을 생각해야지. 아르곤, 을 부르는 듣기 좋은 레골라스의 발음도.


08.

한글로 인쇄된 종이를 보고 싶다. 해변의 카프카도 읽고 싶었고, 달에 울다도 구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를 다시 배고프게 만든 생각은 아, 정말 반지의 제왕을 읽어야 할텐데.


09.

적어도 아직 책을 읽지는 않았다는 거, 적어도 DVD완전판은 출시되지 않았다는 거. 이 정도가 반지의 제왕에 아직도 설레일 수 있는 기쁨이 될까? 난 그토록 대단하다는 이 영화의 매니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 소설이 영화화된 건 나름의 행운이 아니었을지. 젊을 때 2002 월드컵을겪었던 것 만큼이나. 아니 그 보다는 조금 덜.


10.

좋아하는 레골라스. 멋진 아르곤. 기특한 프로도. 충직한 샘. 흐뭇한 피핀과 메리. 김리와 간달프. 골룸도 모두 다 그 동안 수고 많았다. 이제는 영광과 환희 앞에서 즐겁게 쉬길.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