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아카시아 본문

나쁜 교육

아카시아

dancingufo 2005. 5. 20. 12:01



나는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얘기들을 싫어한다. 될 수 있으면, 가족이 필요치 않은 얘기들을 하고 싶다.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느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보다 비밀스럽기 때문에 위험하고 무섭다. 또한,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없고 쉽게 알려지지도 않기 때문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겨둘 가능성도 높다.

태어나면서 가지게 된 가족 이외의 새로운 가족은, 내 손으로 절대 만들고 싶지 않은 나에게 이 영화는 '공포' 이상의 '공포'다. 이 영화는 새로 들여 온 자식이 늘 문제를 일으킨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진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이상한 그림을 그리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여온 자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 들여온 자식을 끝끝내 자신의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으려하는 '내 피'에 대한 할머니의 집착이다. 이 사회가 품고 있는 강박관념 중 하나는 바로 '가족 만들기'이다. 가족을 만들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에서 소외되며, 정상적인 가족을 만들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핍박을 받는다.

물론 이 영화가 소름끼쳤던 것은 '가족 만들기'에 대한 내 알레르기 반응일 수도 있다. 시체를 감고 감아, 마치 시체와 하나가 되어버린 것 같던 아카시아 나무의 뿌리. 그 뿌리 만큼 질기고 무서운 '내 피'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인정해 버리는 불합리를 잊지 않도록 자꾸만 건드려주는 것이 '예술'이라는 걸 하는 사람들의 사명이라고 아직도 나는 믿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썩 흡족한 영화는 아니었다해도 문제의식을 잃어서는 안 될 것 같다던 박기형 감독의 말만은 꽤나 내 마음을 울린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을 어떻게든 영화 속에서 풀어보려고 노력한 수고도 눈부시다.

심혜진의 차가운 눈과 차가운 표정, 차가운 말투와 차가운 몸 안에 그 가족의 비극이 녹아있다. 좀 더 많은 관객이 이 여배우의 늦지 않은 향연을 지켜봤다면 좋았을 것이다. 박기형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 모든 것에 공포가 녹아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평온해 보이는 여학교 안에. 행복해 보이는 가족 안에. 온순해 보이는 여학생 안에. 완벽해 보이는 여자 안에. 그것을 발견하고 보여주는 것이, 아마도 이 감독의 힘인가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