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8월 27일, 저녁잠 본문
01.
지는 해가, 파란 강물 위로 붉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저 멀리로 잠든 거북이의 등껍질같은 올림픽 주경기장이 보인다. 여섯시가 넘어서면 세상이 검붉고 검푸르다. 가만히 선 채로 유리창 너머의 세상을 바라본다. 나는 그리운 것이 있다. 그것의 정체는 언제나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있다. 이 그리움은 뇌세포 어딘가에 각인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의 난자 속에서 머물 때의 자세를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그 그리움도 버릴 수가 없다. 심장이 자꾸만 바람 소리를 낸다. 흔들린다. 이것은, 사는 내내 중심을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함이다.
02.
누군가는 나를 좋아해준다. 누군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나의 태도가 싫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내가, 그런 태도를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와 상대방이 어느 정도 코드가 맞느냐 맞지 않느냐의 문제이지 내가 나쁘고 나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그 여자를 싫어하는 것도 그 여자가 나쁜 사람이라서 아니라, 너무나도 나와 맞지 않는 코드를 가지고 있는데 안 보고 안 만나면서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부한 말은 진리이기 때문에 진부해지는 것일까. 좋아하는 사람은 못봐서 괴롭고 싫어하는 사람은 봐서 괴롭다- 란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
03.
콤도도스는 결국 암살당하고, 로마는 다시 내전 상태. 이제 중흥기는 없을 것이다. 거대한 제국은 멸망을 향해 걷는다. 마르쿠스가 이런 로마를 보지 못하고 죽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04.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와서 옷만 갈아입고 한 시간을 잠들었다 일어난다. 부스스 잠에서 깨어나니 틀어놓았던 CD는 한 바퀴를 다 돌아 꺼져있다. Arap strap의 Here we go를 들으면 잠이 잘 온다. 얼굴을 가리는 머리를 모아 묶고, 방문을 열고 나가니 조용한 집안에는 온통 불이 꺼져있다. 탁, 거실불을 켜고 탁, 욕실불을 켠다. 잠자는 사이 피부가 화장을 다 먹어버린 것인지, 클렌징을 해도 화장솜에 묻어나오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도 어쩐지 석연찮은 기분이 들어 꼭 스물 일곱번 얼굴을 헹구고 일어선다. 방으로 다시 돌아오기 전 슬쩍 현관문을 열고 나가보니, 저녁이 와있다.
외롭다. 골목골목을 떠도는 가정집들의 저녁 냄새는, 마치 혼자있는 내가 죄인인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어릴 적 읽은 양귀자의 <모순>에서, 여주인공 진진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을 한다. 해질 녘에는 낯선 곳을 헤매여선 안 된다고. 그러면 자꾸만 돌아오고 싶어진다고.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그 마음이 너무나 내 마음 같아서 한참을 울었다. 나는 그 마음이 내 마음이 되지 않길 바라면서 한참을 울었지만, 결국 소용없는 울음만 되었다.
어떡해야 좋은 걸까. 몇분쯤 걸어내려갔던 골목을 다시 걸어올라오며 곰곰이 생각한다. 어떡해야 좋은 걸까.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것이다. 진심을 말할 수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내 상태라면, 그냥 그렇게 진심을 숨긴 채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너무 비겁한 걸까. 그렇지만 모기의 말대로, 비겁한 것은 정말 나쁜 것일까.
05.
올 해의 마지막 닭전이다. 편하게 자고 기분 좋게 일어나, 닭요리로 점심을 먹고 수원으로 가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반드시 승리겠지. 즐거운 일요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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