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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교육

천하장사 마돈나

dancingufo 2006. 9. 13. 09:46

세상엔 보지 않고도 재미없다거나 좋지 않다고 말해도 되는 그런 영화란 없다. 그 동안 꽤, 열심히, 여러 편의 영화를 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는 와중에도 이 당연한 사실 하나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 <천하장사 마돈나>라는 이 영화의 제목을 제대로 기억하기도 전에, 여자가 되고 싶은 씨름부 소년의 이야기라는 한 줄짜리 설명만 듣고도 나는 이 영화가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보고 싶지 않다는 건 단순한 내 감정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내 취향이 아니라거나 맥빠지는 코메디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했다. 이 영화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거의 없었는데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편견이라는 것은 그렇게 무서워서, 단 한줄짜리 설명만으로도 쉽게, 어처구니없을 만큼 쉽고 튼튼하게 그렇게 생겨나고는 한다.

동구는 영화 안에서, 또 영화 밖에서, 그런 편견들과 싸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멍하니 앉아있다보면 그 싸움이 많이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조금 안쓰럽고 마음이 짠해지지만, 그래도 동구에게 별로 위로같은 걸 하고 싶지는 않다.

동구는 웃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집 나간 엄마, 술 주정뱅이 아빠에 그 아빠를 닮아가는 동생을 두어도, 비대한 몸에, 예쁘지 않은 얼굴에, 분명 여자인 자신이 남자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그래도 웃으면서 살았으니 말이다. 오동구는 스스로를 가엽게 여긴다거나 안쓰러워하지 않는 녀석이었다. 나는 그 점이 못내 기특했던 것 같다. 어줍짢은 위로나 동정을 던질 수 없게 했던 건, 동구의 그러한 점이었다.

같은 설정이라도, 그것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는가 하는 것이 영화에 이토록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충분히 칙칙할 수 있었고 도식적일 수도 있었고 방향을 잃기도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 셋 중 어느 것에도 발목을 잡히지 않고 지금의 이 모습까지 온 것이 조금 장하다.

변변한 스타 하나 없고, 여자가 되고 싶다고 해도 주인공은 이준기같은 얼굴을 가지지도 못했고, 감독들도 이제 신고식을 치루는 신출내기. 알고 있다. 이 영화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에 썩 좋은 조건을 갖추진 못했다.

그래도 동구가 세상의, 친구들의, 선배나 선생님, 아버지의 편견에도 잘 맞서서 꿋꿋하게 걸어나갔듯 이 영화도 그러기를 바란다.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웃고 춤추고 노래하던 동구처럼, <천하장사 마돈나>도 많이 기특하고 장한 모습으로 살아남길 바란다.

보지도 않고 재미없는 영화 취급해버린 나의 성급한 편견을 두고두고 내가 뉘우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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