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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sunrise/스탠드에서 본 풍경

예쁘게, 안녕

dancingufo 2013. 6. 17. 01:50






[글=김민숙]처음 내가 ‘퍼플 아레나’를 찾았을 때, 그 이름들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는 걸 기억합니다. ‘장철우’나 ‘이창엽’과 같은 이름이 처음의 나에겐 조금도 특별하지 않았다는 것을요. 내가 그 이름들에 익숙해져간 것은 아마 갓난아기가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며 걸음마에 익숙해지듯 한 경기, 한 경기를 거듭해 보며 내가 대전 시티즌에 익숙해지면서였을 것입니다. 나는 어느 순간 외지도 못했던 이름들을 기억하게 되고, 구별해내지도 못했던 얼굴들을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이루어졌죠. 난 오래전부터 그렇게 하리라 마음먹어온 사람처럼 빠르게 대전 시티즌의 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팀의 팬이 된 이후로는 그 모든 이름들이 제각각 그렇게 특별할 수 없었습니다. 그 어느 순간부터는 ‘장철우’나 ‘이창엽’과 같은 이름이 나에겐 그렇게도 소중할 수가 없었지요. 



선수들이라 하면 바라보는 우리에게 언제나 좋은 경기를 보여주고 싶었겠지만, 비단 한쪽에서만 그런 마음을 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나 우리의 선수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 특별한 이름들 앞에는 늘 좋은 수식어를 붙여주고 싶었어요. 언제나 자랑스럽고 믿음직스러워서 우리의 윙백만 생각하면 배가 불렀고, 언제나 부지런하고 열정에 넘쳤기에 우리의 스나이퍼를 떠올리면 늘 흐뭇했습니다. 승리에 익숙해져본 적 없고, 든든한 선수층에 마음 편했던 적 없지만 그 대신 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혜롭고 온화하신 감독님, 한결같은 열정을 보여주는 시민들, 팀을 아껴주고 위해주는 선수들, 열린 마음으로 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구단. 난 그런 것들이 좋았습니다. 조금 자랑스러웠고 조금 뿌듯했지요. 이 팀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서 언제까지고 대전의 역사에 한쪽 발을 담가두고 싶었습니다. 때론 패배하여 고통스러웠지만 그 기억들마저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대전의 모든 것은 나에게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요. 



하지만 이제는 그런 믿음 따위, 철부지 어린아이나 가질 법한 것이었단 걸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본 것은 ‘방출 확정자 장철우’라거나 ‘이창엽 경남 FC로 이적’과 같은 글귀였죠. 그 때 나는 슬프고 아쉽고 분하기보다는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젊었던 내 선수들이 나이가 들고, 그리하여 저들이 머지않아 은퇴란 걸 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언젠가 조금 아쉽고 쓸쓸하게 저들과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말이죠. 그래서 난 가끔, 아주 조금씩 그 헤어짐에 대한 준비를 하고는 했습니다. 많이 슬프지 않게요. 많이 아쉽지 않게요. 조금씩 내 마음에서 헤어질 것에 대한 준비를 해두면 나중에는 웃으면서 저들과 헤어질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믿음 역시 철부지 어린아이의 것이 되어버렸어요.


 

나는 그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줄곧 ‘방출’이란 단어는 장철우라는 선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처음 봤던, 달리고 있던 장철우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죠. 가끔 장철우가 날린 중거리슛이 너무나 날카로워 내가 얼마나 놀라곤 했던가, 기억을 떠올려 봤습니다. 때때로 한 시즌은 너무나 길어 마흔 경기가 넘는 경기가 우리 앞에 쏟아졌고, 그럴 때마다 우리의 장철우는 교체를 하는 법도 없이 그 많은 경기를 소화해냈습니다. 어느 순간은 분명히 힘들고 지쳤을 텐데도 믿을 수 없게 늘 부지런하고 훌륭했지요. 우리는 그런 장철우에게 참 많이 감탄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장철우라는 선수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언제나 박수와 환호와 영광과 고맙다는 인사였습니다. 



03년 우리 팀이 처음으로 승리와 영광을 낯설어하지 않게 되었던 그 해에, 우리 팀의 중원이 얼마나 튼튼하고 훌륭했는지에 대해서도 기억합니다. 그 중원의 한 가운데 서서 우리의 이창엽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달리고 있었던가 하는 것도 말입니다. 난 때때로 이창엽이라는 사람은, 기복이란 것을 모르고 한결같이 열심히인 모범생과 같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다름 아닌 우리가 바로 그 모범생과 함께하고 있어서 참 기뻤지요. 언제부턴가 우리 팀의 경기를 보러 다녀도 이창엽의 모습을 볼 수가 없어 때로는 의아해하고, 때로는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속상해했습니다. 혹시나 좋지 못한 소식이 있을까 늘 조마조마했어요. 그리고 그런 좋지 못한 예감 따위 절대로 현실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바람은 결국 이런 식으로 끝을 맺고 마네요. 



언제까지고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은 순진한 욕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난 처음 내가 대전의 팬이 되었을 때 그 자리에서 달리고 있던 선수들이 영원히 우리 편이기를 바랐지만 그건 그렇게 쉽지도 간단하지도 않은 일이죠. 네, 우리는 언젠가는 서로에게 ‘안녕’하고 인사할 것을 분명히 알고 만났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좀 더 기쁘게, 행복하게, 예쁘게 안녕할 수 있었다면 마지막까지 우리는 같은 편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난 혹시나 지금의 이 안녕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겨 더 이상 우리가 같은 편이 아니게 될까봐 그것이 슬픕니다. 무섭고, 아쉽고, 미안하고, 그리고 슬퍼요. 



장철우란 이름도, 이창엽이란 이름도 사실 대전 시티즌의 팬이 아닌 축구팬에게는 낯선 것일 수 있습니다. 이 선수들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니 이 선수들이 얼마나 훌륭하고 열정적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달리고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이라면, 그 모습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보려고 노력해본 사람이라면요. 단 한 경기라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선수들이 얼마나 멋진 선수들인가 하는 것을 말입니다. 



장철우나 이창엽이 우리의 잔디 위에 서있는 동안 나는 자주 불안을 잊었습니다. 젊고 빠르고 강한 상대를 만나도 잘해줄 거라고, 설사 승리를 가져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들이라면 최소한 언제나 최선을 다해줄 거라고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머리 위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지지 않아도 나는 이 사람들이 달리는 모습에 가슴에 벅찼던 적이 많습니다. 비단 나만 그랬겠습니까. 우리는 제각각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달랐고, 하여 제각각 다른 이름과 번호가 마킹된 유니폼을 걸치고 있었지만, 그래도 늘 이 사람들이 ‘나의 선수’라는 걸 잊었던 적은 없습니다. 월드컵에 출전하여 4강을 기록한 우측 윙백이라도 해도, 유럽을 넘나들며 물오른 기량을 뽐내는 미드필더라도, 나에게 장철우나 이창엽보다 중요할 순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이름들은, 나에게 특별한 이름이니까요. 다른 이름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특별한, 우리의 선수들의 이름이니까요. 



이 선수들이 대전 시티즌과 함께 한 시간이 자그마치 9년입니다. 대전 시티즌이란 팀이 K리그에 존재한 시간도 9년이지요. 우리의 처음에, 이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이 팀을 어깨에 짊어지고 달렸던 선수들이 바로 이 선수들입니다. 난 그 9년이란 시간을 다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가끔 그 시간들을 온전하게 지켜내 준 이 선수들에 대해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여러 가지 조건들로 하여 힘들 때가 많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 그랬겠지요. 그래도 지금은 어느 팀도 만만하게 보지 못하는 팀으로 성장했지만, 한결같이 응원해주는 시민들로 하여 어깨 당당히 펴고 어느 도시보다도 축구열기를 자랑하는 도시의 팀이 되었지만, 그 때는 그런 것도 손에 쥐지 못했던 때입니다. 가난했고 약했고 그리하여 외톨이 같았죠. 이 선수들은 바로 그 시간들을 버텨내줬던 선수들입니다. 우리는 그 시간들을 거쳐서 이만큼 성장한 거예요. 



그런데 이 선수들이, 이제는 우리와 헤어집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동안 연습했던 것처럼 예쁘게 ‘안녕’이라고 말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한 선수는 나의 팀에 의해 ‘방출’당했고 한 선수는 점점 출장횟수가 줄어든다 싶더니 결국 신생팀으로 ‘이적’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다음 시즌 우리 팀 선수 명단에는 이 이름들이 없겠지요. 나는 한동안 그 사실을 낯설어하고 어색해하고 슬퍼할 것입니다. 하지만 점점 괜찮아지긴 하겠죠. 조금씩 무뎌지긴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분명히 그리울 것입니다. 나는 장철우와 이창엽이 있었던 대전을 아주 많이 좋아했으니까요. 



아쉽지만 그래도 이제는 '안녕'을 말할 때인가 봅니다.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이제는 예쁘게, 당신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싶습니다. 그 동안 그렇게까지 열심히 달려주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어느 곳에서, 어떤 유니폼을 입고 다시 뛰게 된다 해도 여전히 나의 선수들은 우리와 함께했을 때처럼 훌륭할 것임을 믿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게 된다 해도 이것만은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동안 뿐 아니라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당신들은 다름 아닌 ‘우리의 선수’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바로 그 '우리의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글: 김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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