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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sunrise/스탠드에서 본 풍경

밝은 미래

dancingufo 2013. 6. 17. 11:52



오프 시즌이 되면 그토록 좋아하는 내 팀의 경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축구팬들을 조금씩 설레게 하는 일이 있으니, 그것은 아마도 다음 시즌 우리 팀에 새롭게 들어올 선수의 존재일 것입니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할 때면 어떤 선수가 어떤 팀으로 옮겨가고, 어떤 신인이 어느 팀으로 입단하는가 하는 문제들로 하여 여러 팬들의 희비가 엇갈리고는 하죠. 누군가 새로이 내 팀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는 소식은 팬들로 하여금 부풀어 오른 기대감이나 어느 정도의 의구심, 막연한 설렘 같은 것들을 품게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선수들과 함께 하는 첫 경기는 조금 더 흥분되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길고 긴 오프 시즌 동안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대했던 선수들과의 첫 만남인 셈이니까요.



하지만 대전 시티즌을 좋아하고 있는 저로서는 그런 들뜬 기대감으로 새로운 선수를 맞아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 팀의 새로운 선수들은 대부분 소리 소문 없이 내 팀의 유니폼을 입고는 하죠. 경제적으로 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전으로서는 뉴스 꺼리를 만들어낼 스타급 선수는 물론이고, 이름 있는 신인 선수들 역시 데려오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대전이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는 일은 늘 조용하게 진행됩니다. 어차피 스포트라이트는 대표팀 출신 선수라거나 거물급 신인들의 움직임에 맞춰져 있으니까요. 누구도, 대전의 팬임을 자부하는 저 같은 사람들 역시 ‘대전에 어떤 선수가 새로 들어왔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 채 지나갑니다.



그런 이유로 새로운 시즌이 시작하면 저는 한동안 전혀 알지 못하는 선수가 내 팀의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지켜봐야 합니다. 그럴 때면 ‘우리 팀에 이런 선수도 있었단 말인가’라며 놀라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하죠. 그러니까 제가 대전의 새로운 선수들과 만나는 일은 그다지 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존재를 모르고 있었으므로 기대감도 없고, 기대하지 않았으므로 흥분이나 설렘도 없고, 결국엔 못미더워하는 마음마저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밝히는 것이지만, 실은 배기종 선수와의 만남도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올 시즌의 두 번째 경기였던 부산전, 주중경기라 경기장을 찾지 못하고 경기 상황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배기종 선수의 골로 대전이 승리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승리로 인한 기쁨에 한껏 들뜨는 와중에도 저는 조금 당황스러워집니다. 


우리 팀의 시즌 첫 골의 주인공이, 우리 팀에게 첫 승을 안겨다준 주인공이, 대체 누구인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었죠. ‘배기종이 누구지?’라고 물어도 그 이름의 주인공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생각을 했죠. ‘배기종은 누구지? 배기종은 대체 누구야?’ 그렇게 배기종 선수와의 첫 만남은 ‘Who are you?'란 질문과 함께 시작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그에 대한 답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2주 후에 배기종 선수는 팀의 두 번째 골 역시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냅니다. 골을 잘 만들어내지 못하는 공격진 때문에 답답해하던 대전팬들은 단숨에 배기종 선수를 기대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선들이 즐겁기라도 하다는 듯 배기종 선수는 또 다시 그로부터 2주 후에 두 골을 더 만들어내더군요. 그리하여 현재 배기종 선수의 성적은 8경기 4골 1도움. 득점과 공격 포인트에서 각각 6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으며 그에 힘입어 대전 시티즌은 4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활약 때문인지 배기종 선수의 이름은 축구팬들 사이에서 금세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요즘은 심심찮게 배기종 선수를 다룬 기사도 보입니다. 하긴 드래프트에서 받아주는 팀이 없어 번외 지명으로 입단한 선수가 한 경기당 0.5골을 집어넣고 있으니 화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쪽이 더 이상한 일이겠죠. 대전팬들 역시 지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이 선수를 어여삐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경우를 말하자면, 당연히 이 선수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제가 배기종 선수를 좋아하는 것은 꼭 이 선수가 성공시킨 골의 수 때문은 아닙니다. 처음 이 선수가 달리는 것을 지켜봤을 때 저를 매혹시킨 것도 골보다는 이 선수가 가진 젊음과 성실함과 겁 없는 태도였죠. 


몇 년 전의 대전을 떠올리면, 우리는 젊은 선수를 잘 가지지 못하여 자주 선수단의 노령화를 걱정해야 했고 세대교체에 대한 염려를 늘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대전의 현재는 어떻게든 이어 나가고 있다 해도 과연 미래는 어떨 것인가- 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지고는 했죠. 대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대전의 미래 때문에 불안해진 경험 말입니다. 



그런 제게 배기종 선수는 우리의 밝은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존재입니다. 이 선수는 늘 건강하게 달리고, 기회가 왔다 하면 망설이거나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과감하게 슛을 하는 선수죠. 빗나가는 슛을 보아도 금세 다시 달려들어 새로운 골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대전의 팬이라면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섯 골을 내리 먹은 경기에서 앞서나가는 팀을 끈질기게 따라붙어 끝끝내 5-4까지 만들어내는 데 큰 몫을 하기도 하더군요. 



저는 그런 배기종 선수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즐거워집니다. 프로 무대에서 고작 한 달 반을 뛴 배기종 선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 달 반이 더 지난 후의 배기종을, 1년이 지난 후의 배기종을, 다시 2년과 5년이 지난 후의 배기종을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배기종 선수의 미래와 함께, 제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대전의 밝은 미래입니다. 



그저 K2리그에서 뛰던 선수라는 것만 알고 있던 주승진 선수가 몇 년 사이 우리에게 보석의 원석처럼 귀중한 선수로 자랐습니다. 울산대를 졸업한 후 조용히 대전으로 걸어 들어온 장현규 선수가 이제는 다른 팀 팬들에게 보여주는 것마저 아까운 선수가 되어 있어요. 덕분에 우리의 왼쪽 윙백은 리그 최강이라 이야기해도 부끄럽지 않고, 우리의 수비진은 견고하고 단단하여 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라 해도 쉽게 골을 넣을 수 없을 거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랬던 것처럼, 그 선수들에게서 더 나은 대전을 찾아낸 것처럼, 이제는 배기종 선수에게서 대전의 더 나은 미래를 봅니다. 



한 달 반전에 저는 배기종 선수에게 ‘당신은 누구야?’라고 물었지만 이제는 저 스스로 그에 대한 답을 합니다. 이 선수는 바로 우리의 미래라고 말이죠. 



배기종 선수의 푸르른 젊음은 우리를 더 힘차게 할 것입니다. 그 겁 없는 태도가 우리를 더 용감하게 할 것이고, 그 싱그러움이 우리를 좀 더 건강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배기종 선수가 자라나는 것만큼 우리 팀도 자라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심장의 어딘가가 든든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간혹 패배하고 많은 골을 먹어도, 어쩐지 요즘은 그다지 오랫동안 패배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당장의 승리가 중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속에서 내 팀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 동안은 참 많이, 그렇게 내 팀의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힘이 들고는 했죠.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내 팀의 미래가 밝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 팀의 모든 미래에 배기종 선수가 함께 할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분명히 어느 팀에서도 발견해내지 못한 선수를 찾아내는 힘. 그 선수를 훌륭한 선수로 키워내는 힘. 그리하여 내 팀에 몸담았던 선수들 중에 보석 같은 이들이 많다는 것을 확신하는 힘은 대전의 힘이 될 것입니다. 그 힘이 모이고 모여 대전은 지금보다 더 강하고 더 튼튼한 팀이 되는 거겠죠. 



대전의 다음 상대는 특별히 힘들어하는 팀인 울산입니다. 워낙 많은 골을 우리 팀에게 선사했던 팀이라 두렵고 껄끄러운 마음부터 생기는 것이 사실이군요. 그렇지만 이제는 이 팀과의 경기를 피하고 싶은 마음보다 울산전을 처음 겪어보는 배기종 선수가 우리에게 그토록 두려웠던 이 팀을 어떻게 상대해내는지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지나간 과거가 어떠했든 이제부터 이 선수가 우리의 미래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현재보다 더 밝은 미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 김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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