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아무도 모른다/2012.01 ~ 2012.12 (56)
청춘
일기예보를 보니, 비가 온다고 했다. 남쪽에서부터 태풍이 올라오는 중이고, 그렇게 밤이 되면 폭우가 쏟아질 거라고. 그러니까 아침부터 내내, 결코 그 비속을 헤치고 나가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어차피 태풍을 헤치고 약속 장소까지 나오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테니까. 꼭 그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해야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세수도 하지 않고, 금방 자다 일어난 것 같은 얼굴로 하고선 방 안을 뒹굴다가. 문득, '7월 18일이면 좋겠어요.' 라고 답장을 보냈던 게 떠올랐다. '수요일이 아니면 다른 날은 힘들어요. 그리고, 장소는 선택하란 말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종로쪽이 좋겠네요.' 라고 덧붙였던 것도. 그러니까 약속의 시간과 장소를 모두..
늘, 스페인을 응원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난, 라울 대신 7번을 달고 뛰는 비야가 미웠다. 그리고, 하필이면 라울이 대표팀을 떠난 후, 월드컵과 유로에서 우승컵을 차지한 스페인 대표팀도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물론 그렇다 해도, 그 어떤 나라들보다 스페인에 깊은 애정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만약, 호날두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밉고 원망스러웠더라도 나는 스페인의 우승을 바랐을 것이다. 또는,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포르투갈을 응원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호날두의 영광이나 기쁨을 생각하며,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포르투갈이 우승하기를 바라는 나를 보고 스스로도 조금 놀란다. 이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나는 예전에, 호날두 만큼 주는 것 없이 미운 선..
딱히, 동물애호가라든가. 세계평화가 꿈이라든가. 세상에 굶는 아이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뭐 그런 생각 같은 걸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여전히, 이 인류가, 분명히 더 선한 방향을 향해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별다른, 거창한 꿈 같은 건 없지만, 힘이 센 사람일수록 힘이 약한 자 앞에서 마음이 약해지는, 그런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상상 속의 사회를 꿈꿔보고는 한다.
요 며칠, 정신없이 늘어난 업무량에, 휴일이 되면 밖에도 나가기 싫어 사람도 만나기 싫어. 이 소중한 휴일은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쓰겠다! 생각을 하다가. 어쩌다 손쉽게 강연회 초대권을 얻어버렸다. 결국 친구가 늘 말하는 대로 이것은 운명이다! 생각을 하며 벙커로 향하면, 덕분에 많이 웃고 덕분에 많이 힘내고 덕분에 다시 많이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벙커의 매출을 위한 거다! 라고, 총수는 말씀하셨지만. 우유와 계란이 잔뜩 들어갔을 게 뻔한 비비케이크는 사먹을 수 없어 대신 머그컵을 사가지고 왔다. 그리고 책장 위에 올려놓고 보면, 새삼 참, 귀여운 주진우. 나의 소박한 바람은, 벙커1에도 채식인을 위한 메뉴가 생기는 것. 하지만 채소는 가축(...)이나 먹는 거라며, 아침에는 삼겹살 먹고 점..
언제나 할 말이 많았는데, 결국 한 마디도 못하고 헤어져, 가끔 나는 혼잣말을 한다. 전해질 수도 없고, 더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여전히 습관처럼 떠오르는 그런 혼잣말.
문재인. 그리고, 유시민. 뭐라고 불렀더라. 장관님. 대표님. 뭐 그렇게. 그런데 지금은 또 뭐라고 불러야 하나. 선생님, 이란 건 왠지 아니야. 뭐랄까. 어째든. 뭐라고 부르든. 어떻게 지내시는 걸까. 무얼 하고 계신 걸까. 문재인의 출마 선언서를 보다가, 나는 왜 갑자기 유시민을 떠올리는 걸까. 역시,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쓰임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나, 뭐 그런 모든 것들을 떠난 채로도 말이다.
공원을 걸으러 나가기 전에 마트에 들러 두부, 당근, 오이, 깻잎, 브로콜리와 파프리카, 토마토를 사왔다. 그리고 그것들을 제각각 씻고 썰어 통 안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었더니 늘 텅텅 비어있던 냉장고가 가득 찼다. 예전엔 배가 고프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대충 사와서 먹었는데. 요즘의 난 아침엔 밥을 지어 먹고 회사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물론 내가 싼 도시락은 과일과 야채가 생것 그대로 들어있는 간단하기 그지없는 도시락일 뿐이다. 하지만 평생 채식을 하겠다고 결심한 이상, 매일 이런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 난, 두부 샐러드와 채식 카레를 만들어 보겠다고 레시피를 보고 있다. 사실 나는, 음식을 지어 먹는 일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았다. 그..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그 남자는 나를 차에 태울 때, 꼭 뒷좌석에 태운다. 누구는 그게 예의거나 배려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조금도 기분 좋지 않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채식을 하겠다고 하자, 친구는 갑자기 왜 그런 결심을 했느냐는 듯 당황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건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내가 생각해 온 일이었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육식을 멀리 했기 때문에, 사실 그다지 새로운 선언도 아니었다. 다만, 육식을 멀리하는 것과 육식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정말 차원이 다른 문제여서- 흔히들 말하는 vegetarian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후, 나는 밖에서 식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세상 대부분의 음식에는 동물성 식품이 섞여 있었고, 때문에 나는 학창시절에도 귀찮아 하던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신기해하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질문이 귀찮아서 내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이유를 웬만하면 말하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
뭔가가, 달라질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계속해서 희망을 엿보면서 사는 일 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는 걸 알겠다.
유시민을 따라서 여기까지 왔다. 유시민에 대해서는 늘 비난도 많았지만. 나는 유시민이 결코 옳지 않은 길은 가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믿었다. 때로는 유시민의 선택이, 결과론적으로는 최선책이 아닐 때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나는 유시민이 매 순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이라 믿었다. 나는, 유시민의 판단력과 통찰력을 믿었고 역사의식을 믿었으며 불의를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수줍음을 믿었다. 또한 유시민의 능력을 믿었고, 유시민의 지혜와 지식을 믿었으며, 그가 지키고 싶어하는 가치를 믿었다. 그러니까, 유시민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유시민이 정치를 하지 않는다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하면서도, 유시민이 정치인으로 살아남아 가장 잘 어울리는 곳에서 올바른 제 역할을 다 해..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01. 어제는, 출근이 하기 싫어서 회사를 가지 않았다. 오늘은 정오까지 가야 하지만, 또 모든 게 귀찮아서 멍하니 앉아 있다. 워크샵 같은 걸 강요하는 분위기가 싫어서 이 회사를 다니기 싫어졌다. 그래서 난 오늘은 출근을 할까? 아니면 오늘도 핸드폰을 꺼버리고 내 마음대로 혼자 놀까. 실제의 난 꽤 소심하고 걱정도 많고 일에 있어서는 나름 성실한 편인데, 가끔은 왜 이렇게 될 대로 되라- 는 마음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비도 내리고, 일요일이고, 바다나 보러 갔으면 좋겠구나. 02. 많이 피곤했을 테니, 꼼수다는 재촉하지 않고 일주일 더 기다려줄 수 있다. 대신, 저공비행이 듣고 싶구나. 그리고 우리 시장님이 나온 힐링 캠프도 보고 싶다.
01. 그 말을 들었을 때, 문득 언젠가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생각이 났다. 그러자 왠지 헛웃음이 났다. 이번에도, 원하는 것은 사랑이지 사람이 아니다. 02. 올 겨울엔, 그리스에 가자.
사는 게 계속해서 이런 거라면, 이쯤에서 그만 살아도 되는 게 아닐까. 예수가 서른셋에 죽었는데, 내가 예수보다 오래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 난, 문재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늘 문재인을 응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때때로, 노통을 그렇게 보냈는데 우리가 문재인까지 끌어내 이렇게 정치를 시켜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탓이다. 어떻게든 문재인을 죽이기 위해, 날을 세우고 덤빌 사람들을 생각하면 사실 난 겁이 난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마음으로 나는 요즘 김용민이 안쓰럽다. 원하지 않던 길이다. 좋은 목회자가 되고 싶어했던 사람이고. 그런데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다. 큰형은 잡혀가서 감옥에 갇히고, 그 형이 자기 지역에 또 다시 현 집권당 의원이 뽑히면 못 살 것 같다고 말하고, 그 형을 가둔 것으로도 부족해 또 다른 형도 감옥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세력 앞에서, 결국 자기가 방패가 되기로 한 것이다. 원하는 사람이 걸어도 만..
서른셋은, 요절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01. 어쩌자고 나는 이토록 고집이 세고 이토록 귀가 얇을까? 어째서 나는 이토록 약해빠졌으면서 이토록 단단하게 굳어 있는 걸까? 02. 다시 또, 바람이 분다. 나는 이번에는 그 바람의 방향을 따라잡고 싶다. 03. 누군가 내게 말했다. "도망가지 마세요." 04. 봉도사가 울먹거려서 또 코끝이 찡했다. 오늘은 날도 추운데. 정말이지, 나쁜 놈들은 꼭 벌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대통령님을 건드리지마. 아무리 나쁜 놈들이라고 해도 인간이면 하면 안 되는 일들이 있는 거잖아. 니네 진짜 사람이면 그러면 안 돼!!! 05. 그나저나 나도 시 읽는 기자님 보고 싶구나.
나는 이들이, 부디 영웅이나 아이돌이 되지 말고, 올해도 그저 골방에 모여 히히덕거리는 중년 아저씨들로 남아주길 바랐다. 너무 심각하지도, 너무 진지하지도, 너무 열정적이지도 않게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 이야기들이 개그나 폭로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너무 진지해지고 싶진 않았다. 그냥 웃으면서 듣고 싶었다. 너무 열을 내거나 너무 깊이 생각하거나 너무 안타까워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결국, 나는 이 사람들이 슬퍼졌다. 그것이 김어준의 목소리가 흔들렸기 때문인지, 주진우가 불쌍했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아니면, 진보 매체들마저 보수 언론들과 별 다를 바 없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해대는 속에서 정말로 고립무원이 되어버린 이 사람들 자체가 안쓰러워진 건지도 모르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