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6년 1월 24일, 다짐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6.01 ~ 2006.12

2006년 1월 24일, 다짐

dancingufo 2006. 1. 25. 03:49


꿈에서 S를 보았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은 출근을 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있던 때였다. 이미 정오도 지나 있었고, 내가 잠자리에서 벗어난 지는 여러 시간이 지난 후였다. 나는 무릎 위에 펼쳐둔 책에서 그다지 인상 깊을 것도 없는 문장을 읽어내려가다가 문득 지난밤 꿈에 S가 나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사실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잠깐 당혹스러움을 느꼈고, 그런 나 자신이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내가 S의 꿈을 꾼 것은 여러번에 걸쳐 일어난 일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몇 달에 한번쯤은 겪은 일이고 그러니까 그 몇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꽤나 여러번 꿈 속에서 S를 마주친 것이다. 꿈 속에서 S는 놀랍게도 늘 나의 헤어진 연인으로 나타났다. 때로는 나를 외면하거나, 내게서 도망가거나, 나에게 다시 손을 내밀거나, 또 다시 나를 두고 돌아서 가곤 했지만 최근에는 부쩍 그냥 웃는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말이다. 아무런 일 역시 없었던 것처럼 그냥 웃는 얼굴. 아무렇지 않은 몸짓. 이제 다 괜찮아졌다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S는 내 앞에 서있었다.

나는 꿈 속에서, 살아서 다시 S를 만나 웃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했다. 이렇게 삶은 S를 다시 내게 돌려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얼마쯤은 감격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꿈을 다시 기억해냈을 때 내가 가져야하는 것은, 내가 아직도 그런 꿈을 꾼다는 사실의 허탈함이었다. 다시 그가 내 꿈에 나타난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을 꾼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S가 나의 피붙이기를 바랐다. 평생을 지켜보면서 살아도 시간의 흐름에, 관계의 변화에 원치 않는 헤어짐 따위 하지 않아도 되게 나는 S가 나의 오누이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내가 S에게 다정한 말 몇 마디를 듣지 않는 것쯤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손을 잡거나, 눈을 들여다보거나, 다정한 말을 속삭이는 것들 따위 S와의 사이에 없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그냥 무너지듯 나를 스쳐갔다. 그 이후로 내가 어떻게 그 시간들을 지나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 하나를 잃은 허전함이 삶을 공허하게 만든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혈육을 잃은 상실감 같은 것이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온전하게 보내기가 늘 힘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S도, 지나간 그 시간들 속에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가끔 울고 싶어졌다.

이제 나는 그 시간들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은 이제 불길한 냄새만을 간직한 채 방치되어 있다. 그 기억은 되돌리고자 하는 의지조차 가질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 꿈은 S를 놓지 않고 있다. 어느 날, 바람에 휩쓸려 사라지는 모래처럼 S의 얼굴도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 때는 내 꿈도 너를 놓아줄 것이다. 나도 그 때는 너에게서 자유로워 질 거라고, 소리없이 다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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