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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관객에게 두뇌게임의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생각이 너무 강했던 것일까. 반전의 즐거움이나, 추리의 즐거움 같은 것. 그런 것들을 잔뜩 안겨다준 후 지적인 영화라는 평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이 영화가 왜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파악한 후라면, 최소한 재미있게 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과도하단 평은 물릴 수가 없다. 혼란에 빠지게 하기 위해, 추리를 하도록 하기 위해, 아니라면 그냥 놀라게 하기 위해, 지나치게 기교에 신경쓰고 있다는 평 말이다.
소년이 소녀를 처음 만난 건, 소년이 ‘순정’이란 단어에 대해서 처음 배울 때이다. 순정이란 것이 줄창, 평생, 죽을 때까지 한 여자만 뼛골 빠지게 사랑하는 것이란 걸 아버지에게서 배우는 순간 소년의 눈앞에 소녀가 나타난다. 노란 우비를 입고 야무진 표정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던 그 소녀가 너무나 인상 깊었기 때문에, 그리고 하필이면 그 순간에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에 대해 노래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년은 사랑에 빠진다. 줄창, 평생, 죽을 때까지 한 여자만 뼛골 빠지게 사랑하는 그런 사랑에 말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소년 조강과 소녀 아리의 18년에 걸친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조강과 아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채 1년도 되지 않는다. 아리는 늘 연기처럼 사라졌다가 어느 날 갑자기 조강의 앞에..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 그 여자에게 끊임없이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맞추는 남자가 있다. 그 여자는 계속해서 불안해하고 이해할 길 없는 행동을 보이지만, 그래도 그 남자는 언제나 여자에게 친절하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여자나 남자가, 어째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영화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저 그렇게 여자와 남자가 있고 그들은 부인과 남편이었으며 아름다운 부인이 그녀를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먼저 죽어버린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영화는 끝나버린다. 그런데도 이상한 일이다. 여자의 모습도 남자의 행동도 내 마음에 남아있는 것이 느껴진다. 이 영화, 영화만이 발휘할 수 있는 어떤 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영화다.
무서웠던 것 같다.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놓친 그 순간부터. 절뚝, 거리며 아이가 일어서던 그 순간부터.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리는 것은 얼마나 순간인가. 인간이 인간을 잃고 다시 되찾을 수 없는 것도 얼마나 순간에 일어나는 일인가. 그런 공포를 준다. 봉준호는 나에게, 무엇을 미워해야 하는지 무엇에게 화를 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그런 공포. 살인의 추억을 보고, 다시 보면서 박해일이 범인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분명히 범인의 얼굴을 하고 있던 그 남자가, 나중엔 결국 불쌍해져서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향해 돌을 던지고 손가락질을 해야 하는 것인가- 그런 생각에 막막했다. 그 막막함이, 참 무서웠다.그리고 다시 한 번 그 막막함을 마주친다. 한강에서 몇십년을 이물로 살면서, 괴물..
이 한 장면만 봐도, 이 영화가 매우 진부한 신파극임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진부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정말로 신파다. 그렇지만 또 어처구니없게도 이 영화, 꽤 재미있다. 보면서 많이 울었다. 울리길 작정하고 만들거면 이 정도로는 만들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신파극을 봤다. 아무 생각 않고 그냥 좀 울고 싶은 날에는 이 영화를 추천한다. 그나저나 전도연은 언제부턴가 영화와 드라마를 막론하고, 어떤 역할을 맡게 되든, 좀 심하게 앵앵거리는 말투와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꽤 신경에 거슬린다. 연기도 잘하는 배우가, 왜 저런 말도 안 되는 습관을 들인 것일까. 귀여운 것도 귀여운 것 나름이지. 이제 좀 그만해줬으면 좋겠다.
갑자기 이 영화가 보고 싶었다. 보면서 선도 악도 없고, 그냥 사랑만 있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사람은 의도를 했건 그렇지 않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살아간다. 에드워드가 다른 것은 그 상처가 조금 더 눈에 잘 드러난다는 것뿐이다. 에드워드가 두려워한 것은, 자신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자꾸만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다는 사실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려고 하면 사람이 고독해진다. 그런 것이 두려우면 누구와도 마음 편히 가슴을 맞댈 수 없다. 결국은 그렇게 홀로 성에 갇힌 채 살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에드워드가 그러한 것처럼, 타인에게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타인을 아프게 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우리 역시 말이다.
[시간을 버는 천사에게...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거두라. 시간이 흘러 오늘 핀 꽃이 내일이면 질 것이다.]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오, 나여! 오, 생명이야! 대답은 한 가지. 네가 거기에 있다는 것. 생명과 존재가 있다는 것.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진실은 발을 차갑게 하는 이불같은 것입니다. 잡아 당겨도 늘어뜨려도 이불은 부족합니다. 무슨 수를 써봐도 우릴 덮어주질 못합니다. 울면서 태어난 날부터 죽음으로 떠나는 날까지 울고, 절규하고, 신..
1편을 그냥 그렇게 봤다. 조니 뎁은 유쾌하고, 올리는 멋지고, 키이라 나이틀리는 참 마음에 들지만 그래도 영화는 그냥 그랬다. 그래서 굳이 2편을 보러 영화관을 찾을 생각은 없었다. 동생 녀석이 캐리비안 2편을 노래부르지 않았다면, 아마 영화가 내내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릴 때도 난 무관심으로 일관했을지 모른다.그런데 갑자기, 극장 안에 앉아있다가 이 영화가 재미있어졌다. 조니 뎁의 연기가 너무 기막히고, 키이라 나이틀리의 특별한 매력은 더더욱 빛을 발하고, 무엇보다 요정 올리가 섹시한 오빠로 나타나서 한참을 즐거워했다. 이야기도 재미있고 영상도 실감나고 신이 나서(물론 징그럽거나 깜짝 깜짝 놀라는 장면이 있어 화를 내기도 했지만) 두시간 삼십분이 흐르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극장을 나서면서야, ..
꽤 좋은 연애소설이, 그저 그런 연애영화가 되었다. 다케노치 유타카가 준세이의 느낌을 잘 살려준 데 비해, 진혜림은 아오이의 이미지와 너무나 맞지 않아 힘들었다. 아오이는 좀 더, 부드럽고 자그맣고 동글동글하며 조금쯤 슬픈 이미지라고 생각해왔다. 그에 비해 진혜림은 너무 크고, 눈매나 얼굴이 전체적으로 날카롭다. 다케노치 유타카를 하필이면 '양키, 모교로 돌아오다'에서 먼저 만나는 바람에 때때로 어색한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이 배우의 얼굴에는 준세이가 살아있다. 그에 반해 아오이는 없었다. 이 영화에는 준세이만 있고 아오이는 없었다. 그래서 많이 아쉽다.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라고 준세이가 말했다. 잊지 않고 살아서 준세이는 아오이를 다시 만났다. 그렇지만 그저, 잊지 않..
진영인이 웃는다. 저렇게 웃었던 시절도 있었다는 걸 알았으니까, 조금 마음이 놓인다.양조위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나는 홍콩 영화가 무더기로 히트치던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고, 그래서 지존무상이나 영웅 본색이니 하는 홍콩 느와르 영화들을 아주 많이 보며 자랐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한 영화가 '첩혈쌍웅'이었고, 그래서 그 속편이 되는 '첩혈속집'도 보았다. 양조위를, 거기서 만났다. 사람들은 '비정성시'니 '아비정전'이니를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 영화들은 모두 다 철이 든 이후에 보았다. 내가 처음 만난 양조위는 바로 '첩혈속집'의 양조위였다.이제는 기억도 희미하다. 내가 처음 본 양조위에 대한 기억 말이다. 어째서 양조위를 좋아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장국영처럼 예쁘지도 않..
1, 2편을 너무 재미있게 봤다. 덕분에 3편이 나왔을 때 기뻤다. 전작들만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뒤를 망쳐버렸단 느낌은 안 든다. 이 정도면 무난하다. 취향과는 별개로 어떤 영화는 무작정 재미있을 수도 있다. 로맨스물에 별로 감정이입을 못하면서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울었던 것처럼, 액션물이 별로라고 생각하면서 류승완의 모든 영화를 좋아하는 것처럼, 슈퍼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별반 관심이 안 갔는데도 '엑스맨'은 참 재미있다. 로맹가리의 소설에 보면 (제목은 일 것.) 인간이 오염된 환경 속에서 돌연변이로 태어나는 것을 거듭하여 조류의 손을 가지게 된다거나 파충류의 피부를 가지게 된다거나 파리 먹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거나 하는 내용이 있다. 엑스맨을 보다보면 그 소설이 떠오르곤 했다. 물론..
분명히 재미있는 스토리지만 어쩐지 이 영화는 재미가 없다. 그래도 그 긴 시간을 졸지 않고 버텨내게 한 것은, 역사를 오해하게 만들고도 남을 픽션의 놀라운 힘이 아닌가 싶다.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 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아마 영화를 본 모두가 츠네오의 웃음에 반했을 것이다. 아마 영화를 본 모두가 조제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었을 것이다. 이렇게 어여쁜 남자와 여자가 한 사랑도 시작이 있으면 결국 끝을 만난다. 츠네오처럼 울면서 떠나는 것도, 조제처럼 덤덤하게 버티는 것도, 이별에 대처하는 많은 자세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조제의 장애를 연민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고, 조제를 향한 츠네오의 사랑을 고귀한 것으로 만들지 않는 이 영화는 얼마나 훌륭한 미덕을 지녔는가. 이런 사랑 이야기라면 백번을 봐도 좋을 거란 생각을 한다.
아무리 바짝 정신을 차리고 살려고 해도, 인생은 늘 인생 나름의 무게로 인간을 덮친다. 그 무게를 견디고 살아남느냐, 그 무게에 짓눌러 죽어버리느냐. 인간에게는 그 두 갈래의 길 뿐인 것 같다.
01."금자야, 눈이 그게 뭐니?" "친절해 보이려구요."02.인간의 몸은 자꾸 해체시키고, 해체됐던 가족은 자꾸 만나는구나. 모르겠다. 별로 느껴지는 것도 없고, 뭘 느껴야하는 건지도 모르겠고.어쨌거나 이런 것도 세번 보니까 조금 물리는구나. '복수는 나의 것' 때만 해도 연달아 두 번을 봐도 재미있더니.
내가 좋아하는 다아시가 살아났다. 내가 좋아하는 다아시가 얼굴을 가지고, 목소리를 가지고, 몸짓을 가지고 나타났다. 내가 생각하던 그대로의 다아시가 아니다. 그래도 상관없다. 다아시가 화를 내는 엘리자베스에게 키스하고 싶어 다가간다.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의 손을 살짝 잡았다가 놓는다. 은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사랑 이야기. 영화의 맛은 당연히 책만 못하지만, 그래도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는 '부록'이나 '덤'과 같은 느낌으로 충분한 재미를 주지 않을까 싶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두 명의 일본 여배우. 예쁜 우에노 쥬리와, 더 예쁜 아오이 유우.일본의 코믹 영화란 것은, 하하하- 하고 웃게 하는 것이 아니라 피식- 하고 웃게하지.그나저나 제목 때문인 것이겠지만, 보다가 몇 번이나 카메 생각을 해버렸네.예쁘다. 저 거북이.
오랜만에 나다로 향한다. 며칠째 기분이 나아지질 않은 이유다.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울다가, 무엇이든 좋으니 어쨌든 하자고 생각한다. 그것이 고작 좋아하는 극장에 가서 아무 영화나 한 편 보고 오는 정도라도 말이다. 길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발이 가는 대로 내버려두니 어느 새 나다에 도착해있다. 마침 다음 영화는 내가 도착한 시간으로부터 5분 후 시작하는 . 제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생각하면서도 표를 끊는다. 그것은 순전히 이 영화관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한 번도 실망한 적 없었다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하는 믿음 때문. 카메라에 잡힌 것은 인도의 거리다. 낯선 듯 익숙한 나라의 아이들이, 검은 얼굴을 하고 거리를 뛰어다닌다. 그 아이들에 제각각 카메라의 렌즈 안에 잡혀질 때..
이 영화는, 한 호흡이다. 그러니까 딱 한 호흡으로 가는 영화다. 숨을 들이쉬고 영화가 시작한 후엔, 들이쉰 숨을 내뱉을 틈이 없다. 그 숨을 내쉴 수 있는 것은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 영상마저 화면에서 사라진 후이다. 이렇게 한 호흡으로 가는 것이 쉽진 않았을 것이다. 자칫 단조롭다거나 지루하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한번의 호흡에 매혹된다. 영화가 시작한 후엔, 다른 쪽으로 시선 한 번 돌리지 못하게 하는 이 영화의 끈질긴 그 호흡의 길이에 말이다. 김지수의 얼굴은 예쁘지는 않지만, 심은하의 얼굴 만큼이나 비극적인 드라마를 풍긴다. 그래서, 그저 침묵하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지나간 슬픈 사연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떠올리고 싶지 않아하는 기억이 자꾸만 삶의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