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나쁜 교육 (196)
청춘
마음은, 흔들린다. 굳건한 믿음이란 것도 영원하지는 않다. 우리는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 누군가를 믿거나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 판단을 좌우하는 것은 대체로 기억. 하지만 기억은 언제나 인간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임의로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믿음에 기반한 모든 것은 언제나 위태롭다. 나는 내 마음을 알고 있지 않느냐고 묻곤 하지만 이 마음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내 마음을 알아줘야 할 이유가 없다. 마음이란, 언제나 흔들리는 것이니까. 내 마음도 언제나, 흔들리고 있으니까.
라디오 스타를 재미있게 봤대서, 나도 라디오 스타. 그래서 다음 글은 이 영화로 정했지. 누구누구가 추천한 영화라고 사진이 같이 나갈 수 있게끔.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참, 착하고 바람직해.
나쁘진 않지만.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영화를 잘 이해하지 못할 거야. 뭐, 어차피 소설이 원작인 모든 영화가 다 그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지.
오래 전 노래가 듣기 좋은 걸 보면, 확실히 나도 나이가 드나보다. [해가 뜨면 찾아올까. 바람 불면 떠날 사람인데. 행여 한 맘 돌아보면 그대 역시 외면하고 있네. 바람아 멈추어다오. 세월 가면 잊혀질까. 그렇지만 다시 생각날 걸. 붙잡아도 소용 없어. 그대는 왜 멀어져 가나. 바람아 멈추어다오. 이젠 모두 지난 일이야. 그리우면 나는 어떡하나. 부질 없는 내 마음에 바보같이 눈물만 흐르네. 바람아 멈추어다오.]
파리에서는 누구나 사랑에 빠지는지도 모르지만, 는 사랑에 빠지기도 전에 끝이 나버리는군요. 월터 살레스와 다니엘라 토마스의 '16구역'. 올리버 슈미츠의 '축제 광장'. 톰 티크베어 '생드니 외곽'은 훌륭했어요.
그 집에 들어섰을 땐 책장이 보였고, 남의 책장을 훑어보길 좋아하던 나는 그 집의 책장도 훑어보고 있었고, 그 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던 책이 이상하게도 ‘오래된 정원’이었고, 그래서 그 책을 슬쩍 꺼내어 보는데 그 집의 주인은 나에게 말을 해왔다. 영화로 만들어질 거거든요. 읽어보고 있었어요. 그것은 ‘오래된 정원’과의 첫 마주침. 2005년 4월의 일이다. 그리고 소설이 영화로 다시 태어나기 시작할 무렵이던가. 나는 소설을 먼저 만나기 위해 ‘오래된 정원’을 손에 들었다. 겨울이었고, 12월이었고, 그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읽었을 때는 크리스마스가 끝나가고 있었고, 그리고 그 저녁에 잠이 들면서 나는 한윤희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그것이 ‘오래된 정원’을 내가 기다리게 된 시작. 2005년 12..
때때로 사람들은 내 취향을 오해한다. 그러니까 그저 분홍색이거나 리본이 달려 있거나 꽃무늬만 그려져 있으면, 촌스럽고 유치하기 그지없는 옷을 향해서도 '네 타입이다!'라고 소리치는 내 친구들처럼. 코미디거나 가벼워 보이거나 우스꽝스럽다 싶으면 꽤 볼만할 것 같은 영화를 향해서도 '네가 싫어할 것 같아.'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저 사람들의 오해일 뿐이라서,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의외네. 네가 이런 걸 안 좋아하다니.'라거나 '웬일이야. 네가 이런 걸 다 좋아하고.' 따위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의외의 모습을 보인 탓이 아니라 사람들의 통찰력이 부족한 탓이다. 나는 그렇게 일관된, 또는 편협한 취향의 소유자가 아닐 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것들도 그렇게 일관되..
Romantic, 이라는 말은 아름답고 귀중한 말이다. 단 맛이 다 달콤하지는 않듯, 사랑 이야기라고 해서 다 Romantic한 것은 아니다. 어서 Romantic이라는 나의 귀중한 수식어를 버리고 The Holiday라는 원제로 돌아가라.
그 교통사고에는 뭔가 비밀이 있다는 것. 내가 보지 못한 곳에서, 내가 보지 못한 이들이 일어났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제대로 불러 일으키기만 했다면 이 영화도 나름대로 히트를 쳤을 것이다. 그러니까, 재미는 있다. 그렇지만 너무 순진하다. 밀고 당기기를 못해서 연애에 실패하는 진심 어린 소년 같단 말이다.
사람의 신체 부위를, 하나 하나 개별적인 것으로 구분했을 때- 그것은 때때로 무척이나 에로틱한 것으로 탈바꿈한다. 좋아하는 타인의, 특정한 몸 어딘가는 바라보는 사람으로부터 특별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법. 그런 사실을 포착해낸다는 것은 훌륭한 힘일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일에는 사람의 마음을 보는 재주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문득 떠올린다. 숨겨진 마음이 있다. 자신들도 잘 알지 못하는 마음. 왕가위는 그런 마음 안에 있는 에로스를 끄집어낸다. 나는, 까만 속눈썹이나 허리를 짚고 선 손같은 걸 생각한다. 그리고는, 이 세상에 그것보다 더 에로틱한 것은 없었다고 기억하는 것이다. 왕가위는, 에로스에 대해 제대로 말한 것 같다.
김혜수를 제외하곤,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는 출연진들. 그 중에서도 가장 멋있는 건 어쩔 수 없이 조승우. 참 이상하다. 키도 작고 딱히 잘생긴 곳도 없어, 사실은 볼품없는 조승우. 그런데도 영화 속의 조승우는 그냥 조승우와 너무 달라서, 작은 키나 왜소한 체구같은 건 신경에도 안 쓰인다. 아주아주 거대한 존재감에 숨이 탁 막혀, 그저 멋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의 조승우에게선 흥이 안 났다. 하지만 의 조승우는, 아주 많이 흥겹다. 역시, 동갑내기 남자들 중엔 멋진 애들이 많다.
플로리안 헨켈-도너스마르크, . 2006 로카르노 영화제 관객상 수상. 나는 관객이고, 하여 관객의 눈을 믿는다.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은 순전히 '관객상 수상작'이란 이유 때문이었다. 130분이 넘는 런닝 타임같은 건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다. 재미있기만 해줘-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전날, 딱히 마음에 드는 영화를 보지 못해 아쉬웠던 나는 길어도 좋으니 그냥 재미있기만 해줘-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버려지지 않고 보답받을 때는 언제나 기쁘다. 이 영화는 내 기대보다 훨씬 더 훌륭하여, 130분의 시간 같은 건 느껴지지도 않는 사이에 흘러가 버렸다. 나는 오랜만에 세상의 시간이 정지된 것을 느꼈고, 그 정지된 시간 속에선 온전하게 영화 안에 있을 수 있었다. 휴머니즘이라는 것은 진부한..
브루노 듀몬트의 . 2006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 사람들은 무어라무어라 이 영화에 대해, 감동적이라거나 대단하다거나 말을 하기도 하는데 말이다. 사실은 나, 이 영화 너무 재미없었다. 이번 영화제에선, 가장 재미가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남길 말이 뭐 있으랴.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일까 생각해봤는데 말이다. 잘 모르겠다는 결론만 나왔다. 세상엔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가 많아서, 많이 알지 못하니까 안 보이는 것도 많다. 그래도 난, 분명히 영화를 충실하게 다 봤는데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을 땐 내 탓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 감독의 탓이거나, 또는 내가 다 볼 수 있을 만큼 많이 알지 않을 때 만난 시간의 탓이리라. 아아, 이 영화의 인상 깊은 장면은 마지막 즈음.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자식들의 친권마저 아내에게 넘겨준 주인공이, 아내와 각각 다른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린다. 영화 속에서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 주인공이, 아름다운 아내를 바라보며 부를 법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 때 그, 아내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이 슬프거나 조..
2006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수상작. . 생각을 한다. 인간이 늪에 빠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발을 들여놓고 아차- 하는 순간, 후회하고 뒤돌아봐도 빠져나갈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삶도, 그런 식으로 늪에 빠진다. 이들의 삶은, 고통스러웠을 망정 그래도 다행히 그 늪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다른 이들도 삶도 그랬을까? 더 작고 더 나약하고 더 가진 것 없는 이들의 삶도 그렇게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이제는 어쩐지, 영화 속의 현실을 들여다보며 분노할 힘도 쉬이 생겨나지 않는다.
세상엔 보지 않고도 재미없다거나 좋지 않다고 말해도 되는 그런 영화란 없다. 그 동안 꽤, 열심히, 여러 편의 영화를 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는 와중에도 이 당연한 사실 하나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 라는 이 영화의 제목을 제대로 기억하기도 전에, 여자가 되고 싶은 씨름부 소년의 이야기라는 한 줄짜리 설명만 듣고도 나는 이 영화가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보고 싶지 않다는 건 단순한 내 감정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내 취향이 아니라거나 맥빠지는 코메디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했다. 이 영화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거의 없었는데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편견이라는 것은 그렇게 무서워서, 단 한줄짜리 설명만으로도 쉽게, 어처구니없을 만큼 쉽고 튼튼하게 그렇게 생겨나고는 한다.동구는 영화 안에서,..
조금 슬픈 장면이 있긴 하지만. 달리 감동을 운운할 것도 없고, 시나리오가 뛰어나다거나, 짜임이 훌륭하다거나 그렇다고 뭐 특별히 주인공들 연기가 아주아주 멋지다고 말할 것도 없고. 사실 이 영화, 정말로 특별히 칭찬한 만한 구석이 없는 영환데 보고 나오면서 단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임수정이 너무나 예쁘다는 것. 임수정 하나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어서, 별로 마음에 드는 데가 없는 영화인데도 불만족스럽지 않고. 재미있네~ 라거나, 뭐 그럭저럭~ 정도의 반응을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임수정이 대단한 것이다. 이 아가씨, 확실히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