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아무도 모른다/2006.01 ~ 2006.12 (234)
청춘
01.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면, 웃고 떠들 수 있으니까 우울한 것도 잊을 수 있다. 화는 나지만 최소한 우울하진 않은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모두 헤어진 후 혼자 남게 되면, 그 때부터 잊었던 우울함이 살아난다. 스물스물 심장으로부터 기어나와 손가락끝, 발가락끝까지 점령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그런 우울함에 점령당해 기력을 잃었다. 기력을 잃었기 때문에 앉아있을 힘도 없어, 무작정 침대에 누웠다. 전날 저녁에 긴 잠을 잤기 때문에 쉬이 잠이 오지 않는데도 계속 뒤척뒤척거리며 누워있기만 했다. 여러가지 자세를 취해보았지만 어떤 자세를 취해도 불편했다.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고도 생각했지만,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생각 따위 꺼져버려! 라고 소리치고 싶었던 것이다. 생각이란 것 해봤자 머..
팀이란 대체 뭘까. 선수도 아니고 구단도 아니다. 그렇다면 몇몇 선수들과 코칭스탭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팀일까? 그런 거라면 내가 좋아하고 있는 이 정체는 무엇이지? 이미 늦었다. 다 늦은 일이다. 날카로운 칼로, 나의 이 한심한 모든 점들을 쓱싹쓱싹 잘라버리고 싶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잠에서 깨버렸다. 가만히 앉아있자니 두통이 밀려온다. 나도 내가 화를 내는 일이 부당하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부당함에 대해 설명하려 들면 어쩐지 답답해진다. 창문을 열어본다. 빗소리가 들린다. 시원한 공기도 들어온다. 이 답답함도 괜찮아질 것이다. 언제나 충격은, 시간이 지나면서 완화되기 마련이니까. 영원한 것은 팀뿐이다. 그렇지만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게 아니다. 때로는 알고 있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다. 하나하나 설명을 하자면, 납득하지 못할 것이 없다. 그렇지만 납득한다고 해서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란 게 그렇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계속 잃었다, 고 생각이 든다. 이 ..
그냥, 마음이 조금 어지럽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데 마음이 늘 그런 거지, 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실은 생각하던 게 있었는데 말로 하고 나니 일기로 적기가 힘들어졌다. 왜? 라고 묻고보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냥 그렇다. 어떤 사람을 싫어하느냐 하면, 자기 생각을 표현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다. 싫은 것을 싫다, 화가 났다는 것을 화가 났다, 불만인 것을 불만이다, 라고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사람마다 조리있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이 다르니까,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괜찮다. 그렇지만 그 말을 할 용기가 부족해서, 그로 인해 일어날 상황을 감당할 수 없어서,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한다는 느낌 때문에, 정작 제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싫다. 내가 옳고 상대방이 그르..
01. 가위손을 보다가, 너무 답답해서 영화를 꺼버렸다. 시간을 보니 아직 20분쯤 남아있던데 그걸 다시 어떻게 봐야하나. 불쌍한 쪽, 잘못이 없는 쪽, 아무것도 모르는 쪽이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는 영화 만큼 답답한 것이 없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줄 알았다면 아마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을 들여 언제나 이런 식으로 유쾌하지 않은 일만 하는 것. 내 습성이긴 하지만 오늘은 마구 짜증이 난다. 02. 그 사람이 나보다 어른이고, 내가 그 사람을 나보다 지혜롭다고 느낀다 해도, 나는 그 사람의 충고나 조언을 들을 수 없다. 이런 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내가 왜 화를 내고, 설명하려 들지 않고, 막무가내로 굴고 있는지, 그런 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
01. 영어 공부를 시작하면 꼭 30분쯤 지났을 때 잠이 온다. 자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잠들어버릴 때도 있고 안 되겠다 싶어 책을 덮은 후에 깰 때도 있다. 원래 썩 공부를 열심히 하는 타입이 아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30분도 못 채우나 싶어 조금 한심해졌다. 그래도 오늘은 두 번으로 나누어 공부를 한 덕에 대충 한 시간. 그럼에도 하려던 곳까지 다 못 끝냈으니 칭찬할 수가 없다. 내일은 35분씩 두 번에 도전하자! 02. [꿈꾸는 책들의 도시] 2권을 오늘 마스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역시 못했다. 계획에 없던 영화를 보기도 했고 채팅을 평소보다 오래 한 탓도 있다. 책들의 도시, 란 말이 좋아서 산 책인데 그다지 재밌는 줄 잘 모르겠다. 얼른 마스터해버리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
그냥, 헤매다가 돌아온다. 하루가 그냥 그렇게 가버린다. 그렇지만 지금 이런 하루, 불안하다고 느꼈는데 조금 여유롭기도 하다. 몸이 나이를 먹는 중에도 늘 마음이 사춘기 시절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나에겐 컴플렉스였나보다. 마음을 다잡는 건 좋지만,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억지로 살지는 말아야겠다고 충고한다. 이것은 내가 나에게 하는 조언이다. 왜 아무와도 이야기 나누지 않느냐고, 왜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느냐고, 그렇게 물어왔지만 사실 난 누구와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뿐이다. 아무도 없다고,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싫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고 싶지 않다. 그냥 나 혼자라도 괜찮다고 믿고 싶다. 이런 마음을 아무도 건드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툭, 하고 허물어진다. 관계란 것은 그렇..
하나, 둘, 떨어지던 빗방울이 무더기가 되는 것은 잠시다. 귀를 기울이다가 바닥을 차오르는 소리가 시원해지면 괜히 기분이 좋다. 창가로 바짝 다가가보니 내리는 비가 꽤 세차다. 창문으로 빗방울이 튕겨서 들어온다. 문을 열고 나가고 싶어졌다. 하루의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사실은 내가 질투가 꽤 많은 인간이었다고 요즘은 생각한다. 예전부터 그랬던 건지도 모르는데, 최근에 들어서야 깨닫고 있는 것이다. 별로 편한 감정은 아니라서 때때로 괴롭다. 대신에 최대한 공정해지자고 주문을 건다. 질투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거나 좋은 사람을 나쁘게 판단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다짐을 한다. 나에게 그런 성향이 숨어있었다. 융통성없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성향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나에게도 그런 성..
탁탁탁,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를 좋아한다. 프림과 설탕이 고루고루 들어간 커피도 좋다. 료짱의 웃는 얼굴을 좋아하고 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손에 드는 것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이 이렇게 많다. 생각을 하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좋아했던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고, 싫어하는 것들에 관대해질 수 있는 너그러움이 여기 있다. 내 심장을 믿자. 사람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마음을 부끄러워하지도 말자. 두 손이 저려서 가만히 책상 위에 올려놓아본다. 못난 손이다. 하지만 나는 내 손을 좋아하는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이상형을 묻는다. 외모는 전지현이라도 좋고 김태희라도 좋겠지. 그렇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여전히 내가 좋다고 답하면서, 그래 나는 정말 내가 좋구나- 라고 느낀다. 신기한 일이다. 이렇게 나..
01. 비가 내리다 만다. 견우랑 직녀는 잘 만났을까. 02. 생각했는데, 나도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해주는 다정한 아빠가 가지고 싶다. 어린 남자는 이상하게 눈에 안 찼던 거다. 나는 다정한 아빠가 가지고 싶었던 거니까. 03. 시간을 함께 보내주지 않았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비가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비 내리는 소리도 커졌다. 불 끄고 이불 덮고 침대에 누워서, 열어놓은 창문으로 비 내리는 소리를 들을테다. 이 소리. 너무 좋다.
01. "누나, 치렁치렁이 무슨 뜻이에요?" "음... 긴 게 늘어뜨려져 있는 거지." "...긴 게 늘어져요?" "그러니까, 누나가 머리를 풀면 머리가 길어서 이만큼 늘어지잖아. 그게 치렁치렁한 거야." "아, 그럼 누나는 귀걸이도 치렁치렁하겠네요?" "음, 그래 그런 거지." 그래. 나는 머리도 치렁치렁하고, 귀걸이도 치렁치렁하다. 02. 사실 머리카락이 많이 길었다. 긴 머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길면 또 지겨운 마음이 들어서 단발로 자르곤 했는데 이번엔 여름이라 그냥 올림머리를 하고 다니다보니 머리가 긴 것도 몰랐다. 책상 뒤쪽에 전신 거울이 있어, 앉은 채로 우연히 뒤를 돌아보았다가 머리가 꽤 많이 길었다는 걸 알았다. 조금만 더 길면 허리까지도 되려나, 싶어 대충 손으로 감을 잡아보니..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 그 미래에 일어날 일이나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 나는 조금 당황스러워하고 못믿어 하고 견딜 수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던 것처럼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을 바꿀 수도 없다. 내 힘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짊어진 채, 남아있는 시간을 그럭저럭 버텨내는 것이 삶의 본질이란 말인가. 아무리 눈을 감고 평화를 얻으려고 해보아도, 이 무력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집으로 올라오는 골목길에는 작은 절이 하나 있다. 그 절 창문 옆에 풍경이 달려있어, 바람이 불 때면 늘 챙그랑거리는 풍경 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모르고 조금 겁이 났다. 늦은 시간이었고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소리에 예민해져있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소리의 정체를 찾아낸 후엔 퇴근길에 바람이 불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산사에 들어온 것처럼, 상쾌하기도 하고 여유롭기도 하고 그래서 발걸음도 춤을 추듯 가벼워지는 것이다. 오늘도 바람이 불었고, 그래서 흔들리는 풍경 소리를 들었다. 덕분에 지금은 이렇게 기분이 좋다. 꼭 충고 때문은 아니더라도, 조금 더 진심이 전해지도록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예전에 나는 내 말에 담긴 진심을 알아채거나 모르고 넘어가거나 하는 것은 타인의 몫..
01. 멀쩡하다가 갑자기 피곤하더니, 잊어버리고 있다가 갑자기 김은중이 보고 싶어졌다. 큰 일이다. 갑자기, 김은중이 너무 보고 싶다. 02. 이틀전인가. 갑자기 제주도에 너무 가고 싶더라니. 나중에 알았지만 김은중이 제주도에 전훈을 가있다했다. 그러면 그렇지. 이젠 거의 텔레파시 수준인가. 어쩌면 예지능력일지도. 김은중이 있는, 제주도에 있을 수 없어서 조금 슬프다.
[나중에 결혼해서 나랑 바람이나 피자.] 라고 했다가, 첸에게 맞았다.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더라도 첸을 만나고 싶다는 뜻이었는데, 첸은 냉정하게 싫다고 말했다. 맞은 데가 아프기보단 첸의 대답 때문에 서운해졌다. 사람들은 나더러 차갑다느니 못됐다느니 해도 역시 난 마음이 약한 사람이다. 첸이 나중에 결혼해서 자기 가족만 사랑할 걸 생각하니 질투가 난다.
귀걸이를 찾았다. 벗어둔 옷에 걸려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아르헨이 졌다. 리켈메와 메시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기분이 나빠졌다. 무슨 사람 기분이 이런가. 내렸다 그치는 비 같고. 불었다 잠잠해지는 바람 같네. 나의 편협함은 너무나 놀라워서, 싫은 소리 못 듣는 이 고집도 대단해서. 그러고보면 넷상에 일기를 쓰는 이 시대의 우리들은 더 이상 진짜 일기를 못쓰게 되었구나. 어린 시절엔 선생님의 일기 검사 때문에 그랬다지만, 지금은 왜 이렇게 자발적으로 남이 보는 일기를 쓰고 있는 것일까. 지겨워라. 이 모든, 자의식들.
귀걸이를 잃어버렸다. 2년 전에도 한국에 잠깐 나왔다가 잃어버렸던 적이 있는 귀걸이다. 산 지 얼마 안 되어 잃어버린 것을 매우 아쉬워하며 같은 가게에 가서 다시 샀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내가 마음에 들어해서 샀고 산 이후에도 꾸준히 애용하는 편에 속했다. 귀걸이는 크고 길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만, 이 귀걸이는 작고 단순해도 무척 좋다. 아마 내가 살짝 미쳐버릴 만큼 빨간색을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어디서도 이렇게 빨간색이 강조된 귀걸이를 본 적이 없다. 붉은 계열의 옷이 많은 나에게 이 귀걸이는 굉장히 유용하기도 했다.그런데 이 귀걸이를 또 잃어버리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서 귀걸이를 빼는데 오른쪽 귀가 허전했다. 가끔 이렇게 귀걸이가 한쪽만 달아날 때가 있다. 한쪽만 남아있는 귀걸이는 쓸 수도 없..
답변에 내 이름이 나오기 시작하면 궁금해서 질문지를 받아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문답의 인기 요인. [질문을 시작하기 전 지킬 것] 1. 포스트 자체에 질문 내용을 게시하지 말 것. 2. 만약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용을 메일로만 가르쳐줄 것. 3. 단, 메일을 통해 질문 내용을 받은 사람은 무조건 바톤을 받아야 함. 1, 2번은 종미. (블로그를 하는지 안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3번은 무엇으로 보나 역시, H님이라고 생각. 4번 같은 경우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여야 이런 마음이 들 듯. 5번의 일은 재주도 없고 섣부르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함. 6번은 우리 사무실 Y양. 요즘 볼수록 예쁘다고 생각함. 7번은 없음. 8번은 천사종은. 9번은 내가 무척 그래서, 주위에 나보다 더 그런 사람을 보기..
스페인이 병신같은 탓이지. 누구를 탓하겠어. 그런 식으로 해서는 우승할 수 없는 거야. 그런 걸 알겠어. 참 멋진 일이구나. 라울의 생일에 이런 패배를 안기다니.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 월드컵이란 게 있는 거였어. 그래도 라울은 울지 않았을 테지. 멋지게 지단에게 축하 인사를 했을 거야. 차라리 잔디에 무릎 꿇고 앉아서 울기라도 해보렴. 질 팀이 졌고 이길 팀이 이겼으니, 화도 내지 말아야 하는 걸까. 그래, 프랑스는 강하다. 지단은 건재하며. 이 영웅의 마지막 월드컵은 초라하게 끝나지 않는 거야. 웃고 있구나, 지단. 당신이 영웅이라고, 누구보다도 내가 늘 그렇게 말했어. 그러니까 난 화도 안 내고 울지도 않고 당신이 웃는 걸 보기만 하지. 멋진 사람이고 좋아하고 있고 끝까지 영웅이기를 바라. 그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