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아무도 모른다/2006.01 ~ 2006.12 (234)
청춘
특별히 나를 서운하게 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 나도 가끔은 누군가에게 그럴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조금 씁쓸한 일이긴 하다. 어릴 때부터 그랬지만 나는 늘 또래그룹에서 내가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해왔다. 아이큐나 성적 따위를 떠나서, 내 두뇌에 대한 신뢰가 깊었던 탓이다. 그 습관은 여전히 남아서 내가 내린 결론에 꼬투리를 잡는 대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엔 나와 같은 인간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들도 자신의 무언가에 대한 믿음이 깊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타인을 만날 때마다 본의 아니게, 그렇지만 단호하게 그쪽을 비웃어버리는 나를 마주친다. 왜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어? 내가 옳잖아, 라고 말하는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얼마나 우습지도 않은 자만인가. 그럼에도 ..
01. 그냥, 생각을 하고 있다. 생각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냥, 생각을 하고 있다. 마음이 이렇게 이 끝과 저 끝을 바람처럼 오간다. 마음이 자리를 바꿔앉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라 나 역시 아무것도 판단할 수가 없다. 하여 나는 그냥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너는 왜 거기서 그러고 있냐고, 뒤돌아서 묻고 싶어진다. 02. 나만 이렇게 진지하게 굴고 있다니. 아마도 만화 속 캐릭터처럼 우스울 것이다. 희극 배우라는 것, 어쩐지 내 삶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03. 조관우. 하림. 015B. DJ DOC. 옛 노래들을 듣고 있다. 너무나 좋아서 잠자리에 들 수가 없다. 04. 여기가 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저 자리도 내 자리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는 아무데도 있을..
01. 엄마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고, 또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세 사람 모두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아차, 싶어 시계를 보니 이미 자정도 한참 지나있는 시간. 타이밍을 맞춰 전화를 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런 변명도 하루이틀이니까, 내일은 잊어버리지 말고 세 통의 전화를 모두 걸도록 해야겠다. 02. 따뜻해져서 그런 거겠지. 자꾸 졸린다. 내 마음도 이렇게 계속 졸고만 있다. 03.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왜 그런 거냐는 질문부터 던지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 난 그 답을 믿지 않으려 들 것이다. 그런 나를 알겠다. 사랑의 낭만성은 믿지만, 사랑의 실체는 믿지 않는 나를.
01. 요즘은 자주 얼굴이 붉어진다. 그래서 거짓말하는 것도 어려워하고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어려워한다. 무엇을 이루려고 살고 있냐고, 그렇게 던져지는 질문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가 바라보는 것은 오를 수 없는 나무다. 그래서 창피하고 겁이 나지만, 어디로도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02. 피곤해서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는데 갑자기 허한 바람을 만난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이렇게 나이를 먹다가 어느 날 문득 쓸쓸해지면 나는 어떻게 하나. 그 때는 무슨 수로 그 쓸쓸함을 이겨내나. 아득한 그 걱정이 나를 사로잡는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만나는, 해지는 저녁의 바람같은 것이다. 내 마음은 그런 것들 때문에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 03. 손을 들어서, 그 어깨를 잡아채고 싶다는 생각..
01. 중국이란 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은 힘들 때면 언제든 도망갈 수 있다는 여지를 나에게 남긴다.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숨을 곳이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렇게 의지박약인 나는 막다른 골목이 아닌 곳에서도 툭하면 도망갈 생각을 하고 마는 것이다. 역시 나쁜 버릇이다. 02. "연애는 아무나랑 하는 거야." 라고 친구는 말하지만, 나에게 연애란 쓸쓸한 것으로만 남았다. 그 쓸쓸한 일을 아무나와 만나기 위해 다시 해야 할 이유가 과연 있을까. 게다가 너는 그 쓸쓸함을 다 지켜봤던 사람인데. 03. 나, 나를 소모하고 있구나. 모든 에너지를 빠짐없이 모아서 하나에만 전념해도 부족할 판에. 이게 다 뭐람. 축구니 영화니 사랑이니 하는 것들이 대체 다 뭐람. 04. 중요한 사람들에게 잘해주자..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고의 문제인 것 같다. 응당 생각했어야 할 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했다면, 그것은 무지보다도 더 부끄러운 것이 아닐까. 대부분의 옳은 것은 쉽고 단순한데도, 그것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참 이상한 노릇이다. 삶에 대해서 알고 있는 척 하지만, 사실 나는 좀 더 일상에 부딪히고 그에 의해 깨져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렇게 관념 속에서만 살다가는 부끄러운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01. 엄마는 이렇게 이렇게 살고, 아빠는 이렇게 이렇게. 언니는 이렇게 이렇게. 또 다른 언니는 이렇게 이렇게. 동생은 또 이렇게 이렇게. 어디에도 든든한 삶이 없다. 내 삶이 위태롭고 하여 절벽이라 느껴서 절망해도, 모두의 삶이 다 그렇다. 그 사실이 가장 나를 절망하게 한다. 02.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춥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침대 위에서 일어날 의지를 가지지 못하다가. 뜨거운 물로 씻고 있는 동안 울고 싶은 기분이나 소리지르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사라져. 방으로 돌아와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차분차분 걸어놓고, 좋은 노래를 들을까 하다가 어차피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다 청승맞으니까. 무엇을 해야 기분이 나아지는 걸까 고민을 한다. 여기서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하나. 03. 그래, 눈을 감고. 아무것..
01.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아서, 그냥 앉아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만 있다. 무릎을 껴안고 싶다.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였으면 좋겠다. 시원한 저녁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별이 있었으면 좋겠다. 잠을 자지 않아도, 불안해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살았으면 좋겠다. 02. 많이 묻고 싶었다. 행복하냐고. 내가 내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그래도 끝내 모른 척 하고 살았다.
쓰던 일기를 모두 지워버린다. 거짓말같은 글은 쓰지 말자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런 것들을 적고 있을 바에는 아무 것도 적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세상에 나 하나라는 기분이 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못할지도 모른다.
01. 이렇게 이 시간들을 우울한 청춘이라 이름짓고 있는 한, 청춘으로 지내는 동안에는 늘 우울할지도 모른다. 언제나 이렇게 우울할지도 모른다. 02. 그 순간 당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한 가지였지만, 그 한 가지 때문에 내 마음이 차가워진다. 그 한 가지란 조금만 더 깊게 생각했다면 이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03. 조용한 도시로, 조용하게, 숨어버리고 싶다. 아무도 찾지 못하게,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게. 꼭꼭 숨어버리고 싶다.
나에 대해서 떠들지마. 아는 척 말고 걱정하는 척도 말아.
그러니 더 이상 내가 무엇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내게는 어떤 식의 일상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 버린다. 한심하게도, 다시 그렇다.
01.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바람이 많이 분다. 바람이 많이 분다 싶더니 비가 내리는 것 같다. 새벽엔 일찍 잠이 드는데, 잠결에 문득 천둥 소리를 듣는다. 덕분에, 잠결이지만 내가 거꾸로 자고 있다는 걸 안다. 뭐 어때 싶어서 그냥 그대로 자긴 했지만 계속해서 바른 자세로 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북쪽으로 머리를 뉘고 자면 안 된다던 어릴 적 엄마의 말 때문이었던 듯 하다. 그런데 방향에 둔한 나는, 또 잠결에 생각한 것이지만 어느 쪽이 북쪽이고 남쪽인지 알 수 없다 싶다. 결국 지금 다시 지금 생각해보는데 역시 내 침대에서 어느 쪽으로 머리를 뉘는 것이 북쪽으로 뉜 것인지, 잘 모르겠다. 02. 어쩌면 친절하게 방향을 알려주는 사람을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길을 모를 때 지도처럼 나를,..
01. 가벼운 봄옷을 입고 싶었지만, 오늘은 추우니까 감기 조심하라는 문자에 겨울옷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골목길을 내려가는데 한 무리의 아이들이 종알거리는 귀여운 목소리로 "예수님이 부활하셨어요~" 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나는 잘 모르는데, 저 녀석들은 알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팔랑팔랑 신이 난 듯 뛰면서 외치는 모습이 귀여워, 곁을 지나가는 한 녀석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어 보았다. 왜 그러세요? 하는 눈빛. 답할 말이 없어서 나는 그냥 웃음. 너도 결혼할 때가 됐나보다, 애가 그리 이쁜 걸 보니- 라던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하긴 어릴 땐 애라면 진저리가 났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애들이 예뻐진 거니까. 괜히 민망해져서 아이들의 무리로부터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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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 에 대해서 조금 더 자유롭도록 하자. 타인의 눈과 생각과 말에 대해서 조금 더 무관심해지도록 하자. 02. 김은중을 보겠구나. 90분을 못 채울 것 같지만, 오랜만에 보는 경기인 거니까. 대전과 경기하는 김은중, 이 아니라 그냥 김은중, 자체를 보러가는 거니까. 집중해서 볼게. 그러면 꼭 90분이 아니라도 괜찮은 거겠지. 그러니 너는 내 기운을 좀 받아서 골을 넣도록 해봐. 그만 쉬고 골을 좀 넣어봐. 이래저래 내가 아무리 편을 들려고 해도, 골 못넣는 스트라이커는 매력이 없는 거잖아. 03. 그나저나, 나 걱정이 많아.
이동국이 다쳤다. 절뚝- 하며 잔디 위로 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더이상 내가 위하고, 지켜보고, 아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절반이 좋아하는 마음이었다면, 절반은 안쓰러움이었던 게 분명하다. 이동국에 대한 내 마음은 그랬다. 튼튼해져서 다시 밀림의 제왕이 될 수만 있다면, 나는 이동국 따위 계속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시큰둥하기만 했다. 이동국은 다시 잘 달려주었고, 실력에 걸맞는 자리를 찾아가는 듯 했다. 나는 이동국을 그만 잊고 지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잊어갔고,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갔고, 어떤 특별함도 느껴지지 않는 선수가 되어갔다. 그 때, 그럴 때, 이동국이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TV화면 속에서, 새파란 잔디 위..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과, 어떤 것도 쓰지 않겠다는 마음이 싸운다. 바보같은 짓이다. 어차피 지금껏 내가 쓴 것은 글이 되지 못했다.
나를 괴롭히는 이 마음에서 도망칠 거야. 도망쳐 버릴 거야. 무섭고, 슬퍼. 나를 이렇게 만드는 너를 미워해. 나는 이 마음에 절대로 붙잡히지 않을 거야. 너, 자꾸 나를 비참하게 만들 뿐이잖아. 너를 잃어도 아무런 후회도 없을 거야. 나는 여기서 도망가 버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