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아무도 모른다/2006.01 ~ 2006.12 (234)
청춘
01. 마음은 이곳, 저곳을 건너 다닌다. 내 마음은 이 자리에 있는 줄 알았는데 돌아보면 다시 다른 곳에 서있다.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나는 앉아서 울고 서러워서 울고 마음을 잃은 줄 알고 운다. 하지만 아가, 네 마음은 이곳에 있단다- 라고 말하는 젊은 목소리. 믿을 수 없어서 쳐다보면 내 마음은 그곳에 있다. 하지만 그럴 때면 나, 마음을 되찾은 기쁨보다도 너는 언제 또 이런 곳에 와있었던가- 싶어 허탈해진다. 허탈해진 나를 다시 추스리기가 힘들다. 일상이 바쁘다는 사실보다도, 이곳 저곳을 건너다니는 마음 때문에 지친다. 02. 하지만 그녀는 지쳤다기보다도 지겨워진 것일 게다. 지긋지긋해진 것이다. 그 마음을 나는 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마음 따위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도 ..
괜찮지 않은 마음을 붙잡고, 너는 괜찮아야만 한다고. 곧 괜찮아질 거라고. 괜찮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떼를 쓰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어떻게 견디는 건지도 모르는 주제에. 왜 괜찮지 못한 이 마음을 탓하는 것일까. 알고 있다. 내가 숱한 열정들을 실은 경멸하고 두려워했다는 걸. 그래서 이렇게 열정에 사로잡힌 내 마음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나친, 결벽증이고 지나친, 자기애다.
푸석푸석, 말라있던 하늘에서 갑자기 천둥이 쳤다. 쾅쾅- 하는 소리에 놀라서 창밖을 보았지만,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조용하고 얌전할 뿐이었다. 그래서 잘못 들었나- 생각하며 보고 있던 원고로 시선을 돌리는데, 또 다시 쾅쾅- 하는 괴음이 들렸다. 이번엔 확실했다! 그래서 다시 창 밖을 보니, 더는 못 속이겠다는 듯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방울, 두 방울, 톡톡, 그리고 갑자기 주룩주룩. 그리고 다시 죽죽죽. 거센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세상을 적시는 중이었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일분일초 마감이 급한 날이건만, 보던 원고를 덮어놓고 창가에 가 섰다. 아침이면 사무실의 온 창문을 다 열어젖히는 것은 언제나 나의 몫. 그렇게 오늘도 내가 열어젖힌 창문 사이로 빗물이 튕겨서 ..
타인에게 늘 기대고자 하거나, 끊임없이 위로를 요구하는 인간들을 싫어한다. 나 역시 한편, 너의 어깨에 기대고 싶다거나 위로받길 원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나- 어깨를 빌려주거나 위로하는 손짓도 네 쪽에서 더 원해야 하는 것이다. 그 마음이 진심으로 나를 안쓰럽게 여겨줄 것이 아니라면, 혼자 견디고 만다. 그쪽이 훨씬 더 나은 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싫고, 그것이 기질이나 천성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일이라 하면 나는 그런 기질이나 천성의 인간들을 경멸하고 있다. 진심으로 경멸한다.
[그러니까 지금 직구를 날리고 있는 셈이지.] [그러게, 멋있다 야.] [변화구를 날릴 머리가 없는 거야.] [그래도 사랑은 직구라잖아.] 라고 말하고보니, 그랬던가. 사랑은 직구던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머리가 있고 없고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래도 직구를 날릴 용기가 있다는 게 어딘가. 적당히 비꼬아서, 가슴이 다 뭉클하다. 그러니, 남의 사랑 갖고 그만 웃자. 어차피 직구란 게 뭔지도 모르는 나보다야 그쪽이 좀 더 열심히 살고 있는 듯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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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 어느 순간에, 어째서 이 사랑에 빠지게 되었더라.'를 생각하다보면 '그래, 처음부터 좋았던 것 같아.'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랑이 자신의 운명이거나 필연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소망은 기억을 재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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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내가 지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싫다. 거울 속의 내가 그렇게 보이는 것, 왠지 싫다고 생각하고 있다.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이나 너를 믿는다는 말 같은 것, 듣고 싶지도 않고 지겹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난 강한 사람이 맞을 것이다. 이런저런 우울한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무너지지 않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뭐래도 나는 딱 나 만큼의 사람을 좋아하고 있으니까.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이란 굉장한 것일 게다. 이 힘을 믿고 갔으면 좋겠다. 02. 마음. 네가 나한테 너무 독하게 굴지 않기를 바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너와 지는 게임 밖에는 못하는 것이겠지만, 너무 많이 휘둘리고 싶진 않다. 그러니 네가 나를 조금만 안쓰럽게 여겨주길 바란다. 03. 그리고 생각하기..
01. 오랜만에, 떠올랐다. 그래, 억울해했다.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것. 보면서 살지 못한다는 것.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 더는 네가 나를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도 그 사실이 억울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이렇게 영영, 자꾸만 더 멀어지기만 할 뿐이라는 것. 02. 하지만 첸. 이제는 말이야. 이제는, 더는, 생각하면서 슬퍼하거나 우울해하거나 울거나 하지 않게 된 나를 발견해.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괜찮아진 건지는 모르겠어. 네 앞에서 결코 담담하거나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을 줄 알았거든. 하지만 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 오래 버텼잖아? 오래 걸렸던 거잖아. 이제 나도, 괜찮아져도 되는 거라고. 너도 아마 웃어줄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어. 너는 나한테 처음이거나 또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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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서울에 왔을 때의 일이다. 내 쪽에서 무언가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관념처럼 머리 속에 붙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맛있는 것을 사주거나 재미있는 곳에 데려다주고 싶지만 여기저기 좋은 곳을 찾아다닐 줄 모르는 나는 그런 것에 익숙하지 못해서 한참을 헤맨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언제나 그렇듯 언니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언니는 예전처럼 핀잔을 주기보다는 그럭저럭 괜찮다며 웃고 넘어가준다. 그런 언니의 모습이, 이제 언니와 나 사이도 결국은 멀어져버렸음을 짐작케 한다. 그렇다. 결국은 멀어져버린 것이다. 스무 살 이후의 삶은 그렇게 끊임없이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우리 가족의 나쁜 피로부터, 그 피가 주는 무게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웃..
좋은 사람을 알고 있다. 좋은 눈이나 좋은 미소를 가지고 있고, 그 사람을 만나면 나 자신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그런 사람 말이다. 시간은 결코 내가 원한다고 해서 사람을 내 곁에 남겨 두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순진한 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이런 좋은 사람. 내게서 뺏어가지 말라고. 이 관계는 오염시키지도 말고 어긋나게도 하지 말아달라고. 서로를 오해하거나 서로에게 무리하는 일 없이, 그냥 계속 이렇게 놓아둬 달라고. 가끔은 만나서 세상에 좋은 사람이 아직 있다는 생각을 하며 때로는 내가 웃고 때로는 내가 위로받을 수 있게. 이 사람은 그냥 이곳에 놓아둬 달라고. 그렇게 바라고 있다. 이 좋은 사람. 잠깐 나를 이렇게, 순진한 바람을 가지게 만든다.
가을이 오고 있다. 사람들은 아직도 무더움을 호소하지만, 나는 어느 새 더위를 잊고 가을을 맞고 있다. 아침 바람에, 코끝이 간질거린다. 가을 냄새가 나는 이유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쩐지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툭- 하고 누군가가 내뱉는다. 하지만 나는, 찬 바람을 좋아한다. 조금, 마음이 들뜨는 것이다. 이런 계절은 소풍을 나가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찬 바람이 코끝에, 얼굴에, 손가락 사이에 와 닿아서 조금 웃는다. 사는 동안 허탈함을 느끼지 않겠다고 발버둥쳐서는 안 되는 일일 것이다. 무리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치열한 고민이나 펄펄 끓는 열병보다도, 내버려두는 쪽에 마음을 내맡긴다. 나는 내 마음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그렇게 아는 것으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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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어느 한 사람에게- 는 아닐 것이다. 요즘은 계속 짜증이 난다. 몇몇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이유로 비슷하게 불쾌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아마 일상의 많은 시간들을 짜증스럽게 보내고 있는 것일 게다. 그래. 지금 나는 짜증이 난다. 하지만 그런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어쩐지 짜증을 낼 수가 없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는 이성에게 끌린다거나 타인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거나 하는 것과 같은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이란 생각이 든다. 식욕이니 성욕이니 하는 것만큼 원초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인 것이다. 그러니까 본능인 셈이고 그러니까 달리, 그 감정의 타당한 이유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이해한 것일까. 나 자신은, 나의 말을, 이해하고 수긍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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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일기를 쓰기로 하자. 오늘의 첫번째 생각. 사람. 사람은 이상하게도 늘 사람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의 경우를 보자면, 사람보다도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관계맺음에 자주 힘겨움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난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과 거리를 좁혀 나가는 것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사람을 만날 순 있지만 사람을 믿지는 못하는 것이다. 공포, 라고 느낀다. 거리가 좁혀지는 데에 대해서 공포를 느끼고 있다.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조금 무섭다. 사람에게 진심을 다한다는 것도 많이 낯설다. 엄마에게 진심을 다하고 있다. 그 사람에게도 그랬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엄마를 만나는 일에는 늘 다짐같은 것이 뒤따르고 그 사람과는,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