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송환 본문
나는 아무런 정치적 관심도, 의식도, 입장도 없는 사람이다. 스물 일곱해를 사는 동안 내가 정치와 관여된 무언가에 관심을 가져본 것은 지난 2002년 12월, 대선 때 뿐이다. 나는 특별한 논리적인 이유없이 그냥 마음이 끌려서 노무현을 좋아했고 그래서 그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그 즈음 보름 가량 그와 또 다른 대통령 후보들을 지켜보았고, 그에게 나의 한 표를 던졌으며, 결국 그가 대통령이 되는 순간에 눈물을 흘리는 기쁨을 누렸다. 그리고 그 시간은 사는 동안 내가 정치에 관심을 기울였던 유일한 시기로 남았다. 그 이후로 나는 다시 아무런 정치적 관심도, 의식도, 입장도 없는 사람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북한에서 보내온 간첩, 쉬운 말로 빨갱이라 불리던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한 특별한 생각이 있었을 리 없다. 그들의 행동에 대해 옳다거나, 그르다는 판단조차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올바르게' 아니 '온전하게' 누렸다. 그것은 이 영화의 한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 것이 '정치'가 아니라 '사람'이었던 이유일 것이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견뎌온 시간이 있고, 그 사람들이 그 시간 동안 무던히도 고집스럽게 지켜온 신념이 있다. 그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신념을 가진 사람인가 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인가 하는 것은 내가 이 영화를 누리는 데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나는 그저 그들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얼굴 뒤에 숨어있는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고집'을 지켜볼 뿐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어쩌면 나는 그들에게 열등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감독의 낮은 목소리에 정체를 분명히 할 수 없는 미안함이나 죄책감, 반성 같은 것들이 묻어있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를 보는 일은 종종 나를 돌아보게 하는 작업이 된다. 나는 사는 동안 아무것도 제대로 지켜내지 않았던 나에 대해 생각한다. 지켜야 할 것이 생겼을 때, 비겁하게 뒤를 돌아 도망갈 생각만 했던 나에 대해 생각한다. 과연 내가 나의 목숨에 대해 당당할 권리가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닐까.
[선택]을 보는 동안 내내 참았던 울음은, 퇴소한 김선명씨에게 "그러게 내가 뭐랬어. 엄마 말 들었으면 이렇게 안 됐잖아." 라고 하시던 김선명씨 노모의 말씀을 들었을 때 결국 터져나왔다. 그 김선명씨와 김선명씨의 노모를 이번에는 다시 [송환]에서 만난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엄마 말 들었으면 이렇게 안 됐잖아. 몇십년의 시간 속에 몰라보게 변해버린 아들의 얼굴을 붙잡고, 니가 선명이냐? 니가 선명이야? 라고 묻던 어머니.
그토록 오랜 시간, 그토록 모진 고문 앞에서도 허리를 굽히지 않았던 사람이 바로 그 어머니 앞에서 허리를 꺾고 무릎을 굽힌 채 용서를 구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어머니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그냥 남자. 그런 사람.
그런데 우리의 역사는, 왜 이런 그냥 사람들을 괴물로 취급해야 했던 것일까. 철저하게 비정치적 인간인 나라고 해도 그 역사의 죄값은 치러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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