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Before sunrise/스탠드에서 본 풍경 (6)
청춘
[글=김민숙] 축구는 정체성입니다.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저도 축구팬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들으면서 저는 이 말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고 또 옳은 명제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이 말의 뜻을 완전하게 이해했던 것은 아닙니다. 한동안 저는 대전이란 팀이 대체 무엇일까에 대해서 고민해야 했습니다. 축구가 정체성이라면, 100% 확실하게 저의 정체성은 대전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전이 대체 무엇인지 정확하게 갈피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대전 시티즌이란 이름 아래 달리고 있는 선수들인지, 그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모임인 것인지, 구단 프런트도 그에 속하는 것인지, 계약이 종료되면 아무렇지 않게 떠나버리는 선수들이 과연 나의 정체성..
[글=김민숙] 월드컵은 많은 축구인과 축구팬에게 아주 크고 즐거운 축제입니다. 비록 응원하는 팀의 탈락이라든가, 좋아하는 선수의 부상이라든가 하는 것으로 속상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월드컵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아주 멋진 ‘축제’입니다. 그리고 축제라는 것은 보통 즐거움과 설렘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저는 월드컵이 가져오는 즐거움과 설렘의 뒤에서 때로는 아쉬움과 쓸쓸함도 느껴야 했습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16강 진출이 좌절된 것도 속상하긴 했지만 사실은 그보다도 더, 이 축제를 마지막으로 즐기고 있는 선수들의 존재가 마음을 흔들었던 탓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선수들은 나이를 먹습니다. 축구라는 것은 지능적인 플레이라든가 뛰어난 전술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육체의 튼튼..
[글=김민숙] 어떤 스포츠에선 가장 빨리 달린 사람이 승리하고, 또 어떤 스포츠에선 가장 높이 뛰어오른 사람이 승리하고, 또 어떤 스포츠에선 제한된 시간 안에 가장 많은 골을 성공시킨 쪽이 승리합니다. 스포츠란 것은 저마다 승부를 결정짓는 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승리를 차지하게 하는 부분도 다 다르죠. 그렇지만 그 방식이 어떤 것이든, 그것에 참여한 사람들 사이에서 승부를 결정지으려고 하는 것은 스포츠의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경기가 끝나고 나면 언제나 승리와 패배가 생겨나고, 그에 따른 승자와 패자가 생겨나는 법입니다. 경기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그리고 그들을 응원한 또 다른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들 쪽에 승리가 있기를 바라며 바로 자신들이 승자가 되길 원합니다. 사실 승리라는 ..
오프 시즌이 되면 그토록 좋아하는 내 팀의 경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축구팬들을 조금씩 설레게 하는 일이 있으니, 그것은 아마도 다음 시즌 우리 팀에 새롭게 들어올 선수의 존재일 것입니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할 때면 어떤 선수가 어떤 팀으로 옮겨가고, 어떤 신인이 어느 팀으로 입단하는가 하는 문제들로 하여 여러 팬들의 희비가 엇갈리고는 하죠. 누군가 새로이 내 팀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는 소식은 팬들로 하여금 부풀어 오른 기대감이나 어느 정도의 의구심, 막연한 설렘 같은 것들을 품게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선수들과 함께 하는 첫 경기는 조금 더 흥분되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길고 긴 오프 시즌 동안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대했던 선수들과의 첫 만남인 셈이니까요. 하지만 대전 시티즌을 좋아하고 있는 저로서는 ..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도 있죠. 즉 시작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무슨 일을 하든 가능한 한 최대한 즐겁고 행복한 시작을 맞게 되길 바라죠. 그렇기 때문에 축구팬들은 (모든 경기에서 그렇긴 하겠지만, 평소보다 좀 더 강하게) 개막전에서 승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그 시즌이 어쩐지 처음의 그 승리처럼 즐겁고 행복할 거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 축구팬입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챔피언이란 이름 같은 것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팀, 이왕이면 대전과의 전적에서 뒤지는 팀, 이왕이면 올 시즌 전력이 조금은 약해진 팀, 그런 팀이 개막전의 상대가 되길 바라죠. 또 어떠 어떠한 팀은 제 마음 속에서 절대로 개막전에서 만..
[글=김민숙]처음 내가 ‘퍼플 아레나’를 찾았을 때, 그 이름들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는 걸 기억합니다. ‘장철우’나 ‘이창엽’과 같은 이름이 처음의 나에겐 조금도 특별하지 않았다는 것을요. 내가 그 이름들에 익숙해져간 것은 아마 갓난아기가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며 걸음마에 익숙해지듯 한 경기, 한 경기를 거듭해 보며 내가 대전 시티즌에 익숙해지면서였을 것입니다. 나는 어느 순간 외지도 못했던 이름들을 기억하게 되고, 구별해내지도 못했던 얼굴들을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이루어졌죠. 난 오래전부터 그렇게 하리라 마음먹어온 사람처럼 빠르게 대전 시티즌의 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팀의 팬이 된 이후로는 그 모든 이름들이 제각각 그렇게 특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