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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http://news.kyobobook.co.kr/comma/openColumnView.ink?sntn_id=6179 2004년부터 3년 동안 전후기리그로 나누어 진행되던 K리그가 2007년에 접어들며 다시 단일 리그로 통합되었다. 더불어 4강 플레이오프로 진행되던 포스트 시즌이 6강 플레이오프로 확대되기도 했다. 당시 축구팬들은 적응 좀 하려고 하면 어느새 바뀌어 버리는 대회 방식에 이런저런 불만이 많았다. 플레이오프에 대해서도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아서 축구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늘 이에 대한 논쟁이 붙고는 했다. 하지만 대전팬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대회가 치러지느냐 하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단일 리그가 되든, 전후기 리그가 되든, 또는 플레이오프가 도입되든 말든 어차피 대전은 정규 리그만으로..
2004년, 나는 중국에 있었다. 이전 해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축구장을 누볐으니까. 그때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K리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경기 결과를 확인하며 축구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결국 그 바람 때문에 살짝 심각한 향수병에 걸려 있을 무렵,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이 중국을 찾아왔다. 그 해, 중국에서는 열세 번째 아시안 컵이 열렸다. 그 대회를 보기 위해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중국의 낯선 도시까지 혼자서 버스를 타고 찾아가야 했다.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은 8강전까지의 경기를 산동성의 성도인 지난에서 치르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김은중이나 이동국의, 박지성이나 김남..
산티아고 베르나베우[i]에 처음 간 것은 2007년의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초겨울의 추위가 시작되었지만 스페인에는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있던 그 해 11월에, 나는 레알 마드리드의 홈 경기장에 축구를 보러 갔다. 2002년, 처음 이 팀을 좋아하게 된 이후 꼭 5년 동안 주말마다 밤을 새가며 지켜본 팀이었다. 그 팀에서 뛰고 있던 슈퍼 스타들이 바로 내 눈 앞에서 달리고 있는 모습을 나는 경이로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 경기에선 레알 마드리드가 4대 3의 승리를 거두었다. 무려 일곱 골이나 터진 경기였고, 그래서 내 마음도 한껏 들뜬 채였다. 레알 마드리드의 응원가를 흥얼거리며 경기장을 나서자, 이미 어두워진 도심 한 가운데 푸른 빛을 내면서 서 있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가 보였다. 한 도시가, 커다란 ..
두어 달 전, 롯데가 한창 정규리그에서 2위를 달리고 있던 때이다. 내친 김에 1위까지 넘보며 하루하루 승차 계산에 바쁜 나를 보고, 이제 갓 야구를 보기 시작한 열세 살짜리 조카가 말했다. “우승하려면 2위로 올라가는 게 더 유리하대. 3위나 4위로 올라가면 경기를 너무 많이 해서 지치고, 1위로 올라가면 너무 오래 쉬어서 경기감이 떨어진다던데? ” 이론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어도 좋았을 테지만. 그러기엔 지난해의 기억이 너무 또렷해서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우린 지난해에 2위로 올라갔지만, 한국시리즈 못 갔잖아.” 그리고 그런 건 다 못 믿을 거라는 듯 대답하자, 조카는 잠시 당황하는 듯했다. 자신이 옳다고 믿은 것을 그렇게 단숨에 일축해버릴 줄은 예상 못한 모양..
첫 번째 시즌이 끝난 겨울엔, 축구가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냥 지루하기만 했다. 오프 시즌의 지루함을 레알 마드리드나 아스날의 경기들로 달래보려 했지만, 그조차도 마땅치가 않았다. 도무지 허전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서 툭하면 함께 축구장을 다니던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었다. 그때 내가 보고 싶어한 것은, 지난 시즌 고작 1승을 거두며 최하위를 차지한 데다 열악한 자금 사정 때문에 결국 해체설까지 나돌던 팀이었다. 그런데도 그 팀의 축구가 그리워서 나는 그 해 겨울 내내 몸살을 앓았다. 그러니 봄이 돌아왔을 땐, 당연하게 축구장으로 달려갔다. 2003년, 대전 시티즌의 개막전 상대는 지난 시즌 2년 연속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 성공한 성남 일화였다. 지금이야 리그의 최강팀이라 하면, 전북 현대나 FC..
http://news.kyobobook.co.kr/comma/openColumnView.ink?sntn_id=5890 어릴 땐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았다. 집에는 남자 형제도 없었다. 정확하게는 남자 형제가 있긴 하지만 열 살이나 어린 남동생이기 때문에 학창 시절의 나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결국 여자만 다섯인 집에서 자라면서 어떻게 축구를 좋아하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처음에는 축구가 무척 재미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으로나마 처음 축구를 본 것은 할머니 집에 갔다가 삼촌에게 TV 채널권을 빼앗긴 이유였다. 삼촌 곁에 앉아서, 한참을 뛰어도 고작해야 두세 골 밖에 들어가지 않는 걸 무슨 재미로 보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그 경기를 끝까지 지켜본 것은 시골에 있는 ..
지난 9월 2일, 사직 구장에서는 롯데와 LG의 시즌 열일곱 번째 경기가 펼쳐졌다. 1회 말, 손아섭의 활약으로 일찌감치 승기를 잡은 롯데는 5회 말, 전준우와 홍성흔의 연이은 홈런으로 점수 차를 더 크게 벌렸다. 그리고 6대 0으로 앞서가던 7회 말, 갑자기 사직 구장의 관중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들뜬 그 분위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운동장을 바라보면, 그 날 컨디션 문제로 선발 출전하지 않았던 강민호가 타석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강민호라 하면 시즌 내내 체력 소모가 커서 팀에서도, 팬들 입장에서도 가장 걱정을 많이 하는 선수였다. 그런 선수를 기껏 한 경기 쉬게 해주었다가, 6대 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대타자로 투입한다는 것은 팬 서비스 차원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양승호 감독의 그러..
장현규라는 선수가 있었다. 2004년 봄, 갓 대학을 졸업한 후 대전 시티즌에 입단한 선수였다. 처음에는 누구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데뷔 후 채 반 년이 지나기도 전에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 선수였다. 언제나 가난하여 쉬이 좋은 신인선수를 가지지 못했던 우리는 갑자기 나타난, 젊고 튼튼하고 부지런한 이 선수의 플레이에 자주 감탄했다. 그때 장현규는 우리들에게 희망찬 미래를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다른 팀의 팬들은 장현규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우리가 아무리 입을 모아 이 선수를 칭찬해도,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고, 그래 봤자 꼴찌 팀의 수비수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반응들을 마주쳐도 서운하거나 억울하진 않았다. 그때는 장현규가 우리 팀에 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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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시즌이 시작되었다. 내가 대전 시티즌을 좋아하게 된 이후, 열두 번째 맞는 시즌이다. 어떤 시즌에는 홈경기 100%의 출석률을 보이며 부지런히 경기를 보러 다녔고, 또 어떤 시즌에는 내 바쁜 일상에 치여 한 달에 한두 번 축구장을 찾은 것이 전부였지만. 어쨌든 그 모든 시즌의 개막전은 늘 나를 설레게 했다. 새로운 시즌의 일정이 발표되면 그 중에서 내가 갈 수 있는 경기를 하나하나 체크해 다이어리에 적어두고는 했다. 그렇게 적어둔 날에 갑작스레 지인의 결혼식이라든가 가족 행사라든가 하는 다른 일이 잡히면 어떻게든 그 일에서 빠져나와 축구장으로 달려가기 위해 고민하며 살았다. 열두 번의 시즌을 지내는 동안, 나에게 주말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축구를 보러 가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 많은 주말 중에서 ..
01. 축구장에 가야겠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밤에는, 개인적인 일이 있어 밤을 꼬박 새야 했다. 아침 6시가 넘어서야 잠이 든 나는, 8시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오후 4시가 넘어 퇴근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회사를 나서는데 갑자기 비가 마구 쏟아져, 강변으로 가서 춘천행 버스를 타려던 나는 잠깐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졸리고 피곤했다. 비도 왔고, 같이 춘천으로 갈 사람도 없었다. 춘천은 처음 가보는 곳이었고, 종합 운동장이니 시야가 좋을 리도 없었다. 그러니 그냥 집에 갈까? 집에 가서 편하게 씻고 앉아 문자 중계나 볼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축구란 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이렇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춘천까지 가야 하나 싶기도 했다. 나는 더 이상 축구 때..
김은중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해, 잔뜩 비에 젖어서 고개를 숙인 모습. 어째서 그런 것들이 이렇게까지 마음 깊이 아플까. 내가 축구를 볼 때 감정 이입을 조금 덜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몇 만의 관중 속에서도 나만이 김은중을 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 그리고 이러한 감정이입 때문에 축구가 조금 괴롭다. 패배하는 김은중을 보는 것이 괴로워. 그럴 때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것조차도 너무나 힘이 들지. 축구가 그냥 축구이기만 하면 좋았을 거야. 그렇다면 패배 같은 것도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김은중의 축구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어. 김은중은 내가 아는 축구의 전부지. 때로는 잊어버리고 외면하고 의심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겼어. 더 훌륭한 것, 더 위대한 것을 생각..
01. 킥오프를 하고 1~2분쯤 시간이 지났을 때, 전북의 첫 번째 제대로 된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그 공격을 제주가 여유롭게 막아내지 못했을 때,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제주가 오늘 좀 이상한데?’ 02. 그러니까, 그런 예감이 있다. 축구를 볼 줄은 모르지만, 그래도 승리나 패배를 감지하는 그런 예감은 있다. 매 경기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경기에서는 어느 순간 이 경기는 이기겠구나-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이 경기는 좀 힘들겠는데? 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제주는 강한 팀이다. 수비가 탄탄하고, 선수들 간에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며, 모든 선수들이 많이 뛴다. 전술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서 경기 중에 박경훈 감독이 전술을 바꾸면 그게 바로바로 먹히는 게 보이는 팀이다. 때..
01. 대전 경기를 보기 위해 탄천에 가고 있다는 내 말에, 언니는 ‘넌 대체 왜 그러는 건데?’라고 물어왔다. 그 말에 대답할 말이 없어 그냥 웃어버린 건, 나 역시 내가 왜 이러는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전이 울산에 다섯 골이나 내주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희망 같은 건 찾을 수 없는 경기를 한 것이 2주 전의 일. 그 경기를 보고 나오며 ‘이젠 정말 지겨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겹다는 것과 그래서 끝이라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나는 이제 정말이지 지긋지긋하고 대전 시티즌이라고 하면 조금도 설레거나 즐겁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대전 시티즌의 경기를 보러 간다. 02. 탄천은 춥다. 그리고 사람이 별로 없다. 사실 남의 팀 관중 적은 건 나하고 별로 상관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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