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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에 나는, 축구장에 있었다

dancingufo 2012. 10. 29. 19:00

 

 

첫 번째 시즌이 끝난 겨울엔, 축구가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냥 지루하기만 했다. 오프 시즌의 지루함을 레알 마드리드나 아스날의 경기들로 달래보려 했지만, 그조차도 마땅치가 않았다. 도무지 허전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서 툭하면 함께 축구장을 다니던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었다. 그때 내가 보고 싶어한 것은, 지난 시즌 고작 1승을 거두며 최하위를 차지한 데다 열악한 자금 사정 때문에 결국 해체설까지 나돌던 팀이었다. 그런데도 그 팀의 축구가 그리워서 나는 그 해 겨울 내내 몸살을 앓았다.    
 
그러니 봄이 돌아왔을 땐, 당연하게 축구장으로 달려갔다. 2003, 대전 시티즌의 개막전 상대는 지난 시즌 2년 연속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 성공한 성남 일화였다. 지금이야 리그의 최강팀이라 하면, 전북 현대나 FC 서울과 같은 팀을 더 쉽게 떠올리겠지만.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성남 일화는 7시즌 동안 무렵 여섯 번이나 정규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명실상부한 리그 최강의 팀이었다.
 
그러니 당시 나는 우리가 이길 수도 있으리란 기대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다. 경기 결과는 0 3쯤으로 예상했을까? 어쩌면 한 다섯 골쯤을 쉽게 내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3월의 성남 종합 운동장은 추웠다. 그리고 너무 컸고. 그래서 경기장으로 들어섰을 땐, 그라운드까지의 아득한 거리 때문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낯선 기분 탓에 더욱 그러했겠지만, 그곳은 스산하고 황량하게 느껴졌다. 그런 곳에서, 승리에 대한 희망마저 가지기 힘든 상태로 서 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설렜다. 
 
축구팬이 된 후 처음 맞는 개막전은 그렇게 마냥 설레기만 한 것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대전은 그 설렘이 쉽게 사라지지 않게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괜찮은 경기를 보여주었다. 그때의 성남에는 김도훈이 있었고, 윤정환이 있었고, 싸빅과 데니스도 있었다. 그 무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그 선수들은 하나같이 리그를 주름잡던 선수들이었다. 그런데도 대전은 그들에게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은 채 전반전을 끝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후반이 끝나갈 무렵까지도 성남의 공격수들은 대전의 수비수들 앞에서 쩔쩔 매기만 했다. 적어도 대전팬인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물론 2003년 개막전도 결국은 패배로 끝이 났다. 후반 종료 직전, 김도훈은 내가 서 있던 관중석 바로 앞에서, 대전의 골대에 골을 집어넣고야 말았다. 골이 들어가는 순간 커다란 함성소리가 났고, 그 소리에 놀라 멍하니 서 있자니 김도훈이 기뻐하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잔인하게 느껴져서, 그 날 이후 나는, 오랫동안 김도훈을 미워해야 했다.
 
‘그렇게까지 기뻐할 건 없잖아. 고작 지난 시즌에 꼴찌한 팀을 상대로, 간신히 한 골을 넣은 것뿐이라고!’
 
나는 분한 마음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느끼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에 대한 미움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막상 경기장을 빠져 나왔을 때는 꽤 기분이 나아져 있었다. 다섯 골쯤 내주며 무너질 줄 알았던 팀이, 경기 막판에 단 한 골을 내주며 석패를 했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금세 패배에 대한 아쉬움 같은 건 털어버렸다.

 

그때는 그게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몰랐다. 그저 처음부터 강적을 만난 대전이 그럭저럭 잘 버텨주어서 꽤 기특한 생각이 들었을 뿐. 그런데 대전은 사흘 후 열린 부천과의 경기에서 1 0으로 승리하며 일찌감치 리그 첫 승을 신고했다. 그리고 광주와의 홈 개막전에서는 2 0으로 승리를 했고. 다시 사흘 후 펼쳐진 포항과의 경기에서도 2 1로 승리를 하며 연승을 이어나갔다. 
 
그것은 처음 겪어보는 승리들이었다. 지난 시즌에는 단 한 번을 이기는 것도 너무나 힘들지 않았던가. 그래서 내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에도, 대전의 승승장구는 계속되었다. 8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이기거나 비기기만을 반복하면서 대전은 개막전에서 성남에게 석패한 이후,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 무렵의 대전 시티즌은, 늘 나를 기쁘게 했다. 리그 2위라는 순위도 그러했지만, 홈경기 승률 1위라거나 관중동원율 1위라는 기록들 때문에 대전은 종종축구특별시라고 불렸다. 스포츠 뉴스에서는 연일 꼴찌들의 반란을 언급했고, 팀에 새로 부임한 최윤겸 감독의 리더십을 조명하면서 대전 돌풍의 원인을 분석하고는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은 2003년에 시작되었다. 만약 그 해가 없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대전 시티즌을 좋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2003년이 까마득한 옛 일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바로 그 시절이, 축구팬으로 지내온 시간들 중 가장 그립고 그래서 여전히 가장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특별한 시간들이다.
 
대전 시티즌의 돌풍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수비가 한층 탄탄해졌고, 측면 공격이 활발해졌지만 선수층은 여전히 두텁지 못했다. 당연히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나 체력 문제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게다가 8월말,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이던 김은중이 J리그의 베가르타 센다이로 임대되어 가면서 공격력의 약화마저 뒤따랐다.
 
결국 대전 시티즌은 리그 12개 팀 중 6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전반기 때 2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실망스런 결과였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2003년은, 아쉽거나 실패한 시즌으로 남지 않았다. 우승을 차지한 건 성남이었지만, 사실 우리는 그때 우승컵 없이도 행복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해에 나는, 언제나 축구장에 있었다. 경기가 있는 날에는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광주나 부산으로, 또다시 수원으로 경기를 보러 다녔다. 경기가 없는 휴일에도 대전으로 내려가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는 날이 많았다.
 
주중이라 대전으로 내려가지 못하는 날에도 나는 늘 대전 시티즌과 같이 있었다. 경기장에 가느라 보지 못한 중계 영상을 찾아 보았고, 그 경기들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리뷰를 썼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나중에는 경기에 출장했던 선수들의 각종 기록을 순서대로 빼곡히 정리해 놓기도 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다 대전 시티즌의 팬들이었고,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들도 대부분 축구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그 해에 나는 언제나 경기장에 있었다고 기억한다. 뒤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에게는 짙푸른 녹색 잔디나, 그 위를 달리는 선수들이나, 그들을 향해 팬들이 내지르던 함성소리 같은 것 말고는 별로 중요한 게  없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자주 축구장에 가지 않는다. 주위에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도 많이 있다. 경기를 보더라도 리뷰를 쓰기엔 너무 바쁘고, 때문에 이제는 대전 시티즌의 선수들이 어떤 기록들을 가지고 있는지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나와 대전 시티즌의 관계가 여전히 특별하고 친밀하다고 느끼는 건, 아마도 9년 전 그 해에, 그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 때문일 것이다. 가장 특별했던 '한 시즌'은 그렇게 팬과 팀의 관계를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http://news.kyobobook.co.kr/comma/openColumnView.ink?sntn_id=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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