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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의 강민호, 우린 네게 반했어

dancingufo 2012. 9. 19. 19:26

 

 

지난 9 2, 사직 구장에서는 롯데와 LG의 시즌 열일곱 번째 경기가 펼쳐졌다. 1회 말, 손아섭의 활약으로 일찌감치 승기를 잡은 롯데는 5회 말, 전준우와 홍성흔의 연이은 홈런으로 점수 차를 더 크게 벌렸다. 그리고 6 0으로 앞서가던 7회 말, 갑자기 사직 구장의 관중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들뜬 그 분위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운동장을 바라보면, 그 날 컨디션 문제로 선발 출전하지 않았던 강민호가 타석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강민호라 하면 시즌 내내 체력 소모가 커서 팀에서도, 팬들 입장에서도 가장 걱정을 많이 하는 선수였다. 그런 선수를 기껏 한 경기 쉬게 해주었다가, 6 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대타자로 투입한다는 것은 팬 서비스 차원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양승호 감독의 그러한 뜻은 정확하게 들어맞아서, 강민호가 타석으로 들어서자 그렇지 않아도 뜨겁던 사직 구장의 열기가 한층 더 달아올랐다. 그리고 이내 곧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소리가 들리면, 그것은 바로롯데의 강민호, 롯데의 강민호를 외치는 흥겨운 응원가의 소리였다.
 
생각해 보면 이 응원가만큼, 강민호를 향한 롯데 팬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도 드문 듯했다. 지금 팬들이 강민호에게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언제까지나롯데의 강민호로 남아달라는 것일 테니 말이다.
 
강민호는 현재 롯데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선수이다. 같은 팀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팬들마다 저마다의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건만. 이 선수에 대해서는 모두 다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미 부산을 넘어서 전국구 스타가 되어 버린 강민호이니 롯데 팬이 아니라도 그를 좋아하는 야구 팬들은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 선수를 떠올릴 때 느끼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은 분명히 롯데 팬들만의 것이다.
 
강민호가 롯데에 입단한 것은 2004년의 일이다. 그 때 강민호는 고작 열아홉 살이었다. 포수라는 자리는 그 어떤 포지션보다 경험과 노련함을 중요시하니 이 선수가 꾸준히 경기에 나서는 걸 보려면 몇 년쯤 더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2006, 당시 롯데의 주전 포수였던 현 롯데 최기문 코치가 부상을 당하면서 강민호는 스물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롯데 자이언츠의 안방을 책임지게 되었다.
 
노련하고 안정감 있는 베테랑 포수에 익숙해 있던 때, 갑자기 주전 자리를 꿰차게 된 새파랗게 어린 포수가 눈에 찰 리 없었다. 타석에 서면 공은 제법 치지만 블로킹 못해, 도루 저지도 못해, 볼 배합도 영 마뜩잖게 느껴져, 보고 있노라면 매일매일의 경기가 마냥 불안하기만 했다. 그런 강민호를 극성스럽기로 소문난 롯데 팬들이 어떻게 대했을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강민호만큼 자신의 팀 팬들에게 많은 비판을 들은 선수는 롯데 역사상 없었다.
 
신기한 것은 그런데도 강민호가 무럭무럭 자랐다는 것이다. 자신을 향한 팬들의 평가를 전혀 몰랐을 리 없으니 마음이 상하거나 주눅이 들 법도 한데. 강민호는 웃는 얼굴도, 당당한 태도도 끝까지 제 것으로 잘 지켜 나갔다. 몇 가지 부족한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강민호가 꽤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그런 모습 때문이었다. 어디를 가나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고 다니는 그 얼굴 안에, 어쩌면 제법 철이 든, 웬만해서는 결코 무너지거나 좌절하지 않는, 아주 단단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 들어 앉아있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강민호를 만나기 전까지는 포수라는 자리를 그렇게 유심히 쳐다보지 않았다. 한 경기를 온전하게 책임질 수 있는 선수는 오로지 투수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늘 타자들을 윽박지르며 힘있게 경기를 이끌어 나가는 파워풀한 투수들에 매혹되고는 했다. 그런데 불안한 마음 때문에, 잔뜩 인상을 구긴 채로 강민호를 쳐다보다가, 문득 엄청난 무게의 장비를 주렁주렁 매단 채 한 경기에 수백 번씩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포수의 고단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 때 처음으로 일주일에 엿새, 하루에 세 시간씩을 그런 식으로 보낸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일일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스포츠 선수란 기본적으로 육체의 고단함을 이겨내야 하는 이들이지만, 야구 선수들 중 포수만큼 많은 체력을 소모하는 선수는 없다. 게다가 경기 내내 포수의 육체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가끔은 투수가 던진 공이 강민호의 정강이나 허벅지를 맞혔다. 또 가끔은 타자의 방망이에 맞은 공이 강민호의 손목이나 가슴팍을 맞혔다. 시퍼렇게 멍이 들었을 게 뻔한 몸으로 다시 홈 플레이트에 쪼그려 앉아 있노라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홈으로 들어오기 위하여 재빠르게 달려오는 상대팀 타자들과 부딪치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강민호는 8개 구단 포수들 중 가장 많은 경기에 출장해냈고, 부상을 입었을 때도 예상보다 더 빨리 그라운드로 돌아오고는 했다. 공수가 바뀌어 타석에 들어설 때면, 가장 절실한 순간에 결승 홈런을 날릴 수도 있는 선수였다. 처음엔 부족한 것 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강민호는 결코 없어서는 안 될 명실상부한 롯데의 주축 선수가 되어 있었다.
 
강민호는 팀 내 투수들이 가장 큰 신뢰를 보내는 포수였고, 부족함 없이 중심 타선의 역할을 해내는 타자였으며, 노장 선수들과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내는 분위기 메이커였고, 팀에서 가장 많은 유니폼을 팔아 치우는 인기 스타였다.
 
그러니까 이제 강민호가 없는 롯데는 상상할 수가 없다. 2011, 롯데가 정규 리그 2위를 차지하기까지 팬들을 가장 조마조마하게 만든 것도 강민호를 대체할 선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시즌 내내, 혹시나 강민호가 아플까 봐, 또 때로는 강민호가 이 강행군을 버텨내지 못할까 봐 걱정을 해야 했다. 그런데도 정작 강민호는 그런 걱정이 무색할 만큼 웬만해서는 힘들다는 내색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런 강민호를 보고 있노라면, 6년 전 전국에서 가장 드센 야구 팬들의 온갖 잔소리를 꿋꿋하게 이겨냈던 스물한 살의 선수가 떠오르고는 한다. 그때는 그로부터 6년 후에 강민호가 우리에게 이토록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나 둘 정든 선수들을 다른 팀으로 떠나 보내면서, 영원한 것은 팀뿐이며, 선수란 언제든 팀을 떠날 수 있는 존재이므로 너무 많이 마음을 내주지는 말자고 다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강민호는 롯데 자이언츠 만큼이나 소중한 이름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강민호가 이렇게까지 특별한 존재가 되었을까, 생각을 하며 그라운드 안을 바라보면 오늘도 강민호는 무거운 장비를 가득 짊어진 채로 홈 플레이트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그러고 보니 강민호가 그 자리를 지킨 것도 아주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그토록 고단한 자세로, 그토록 꿋꿋하게, 그 힘든 자리를 지켜준 것이 고맙다. 그러니 앞으로도 언제까지고 그 자리가 강민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이기를 바라며, 이야기해주고 싶다. 부산에서 나거나 자란 사람들은 다정한 애정 표현 같은 것이 어색해서 마음처럼 살갑게 대하지 못하고 늘 무덤덤하게 굴지만.
 
실은 모두 다 비슷한 마음으로 강민호를 좋아하고 있다. 강민호가 그라운드에 등장할 때면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그 노래들처럼. 롯데의 강민호. 우리는 지금 모두 다 그 이름에 반해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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