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6월 6일, 위로 본문
01.
타인이 타인을 위로할 수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어떤 타인도, 다른 타인을 완전하게 위로해줄 순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 냉정하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들조차 사실은 타인에게서 진정한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지하고 진실되게 생각하자. 정말로 타인은 나의 삶을 위로할 수 있을까? 정말로 나는 타인의 삶을 위로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구원해낼 수 있다는 건 오랜 시간 거슬러 내려온 환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는 아픔으로 외로워하는 나의 특별한 사람을 지켜보는 일이란- 분명히 쓸쓸하고 외로운 것이 된다.
02.
특별하다는 것, 이상의 말은 찾기 어렵다. 나는 내 감정이 진실에 다다르면 그 진실을 애둘러 말하진 않는다.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진심이다. 물론 타인은 종종 내 진심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너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너무 외로워하지 말라- 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혼자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너에게는, 결국 너 혼자 겪어내고 치루어내야 할 몫이 있고 나는 그 몫을 조금도 덜어줄 순 없지만-
내가 대부분의 시간 동안, 대부분의 일에 한해서, 너의 편이라는 건 사실이다. 비록 다정하지도 친절하지도 따뜻하지도 정겹지도 못하지만, 네가 슬프지 않길 바라고 네가 너무 외롭지 않길 바라고 그래서 네가 삶을 홀로 떨어진 섬처럼 보내지 않길 바라는 것은 진심이다. 비록 이 진심이 너에게 별다른 위로가 되지 못한다해도, 그래도 나는 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로 살아남아 네가 우는 시간을 하루에 5분씩만 줄어들게 했으면 좋겠다.
03.
신촌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63빌딩과 쌍동이 빌딩과 국회 의사당을 지나친다. 어릴 적 지독하게 내가 원했던 서울이란 도시를 바라보다 울컥 눈물이 난다. 노을빛이 비치는 한강을 바라보다가 또 다시 울컥 눈물이 난다. 짐 자무시의 칸 영화제 수상 소식. 다르덴 형제의 수상 소감. 뭔가를 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던 강혜정의 멘트. 손에 든 잡지 한 권을 읽다가도 자꾸 눈물이 난다. 한계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드는 탓이다. 내가, 바라보는 내가 너무 위태로워서 결국 내가, 나를 안쓰럽고 불쌍하게 여기는 탓이다. 어릴 적 나는- 이 도시에 입성하는 순간 모든 꿈이 이루어질 거란 즐거운 환상 속에 살았다. 그 시절의 내가 어리석었다 하더라도 얼마나 눈부셨는지, 그 눈부셨던 내가 어떻게 이렇게 모나고 비틀려진 사람이 되어버린 건지, 여의도의 방송국들을 지나치다가 생각을 한다. 반드시 무언가가 되고 말 줄 알았던 나의 미래는, 이렇게 동서남북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하는 현재가 되었다고. 나는 이 자리에 선 채로 한발자국도 꼼짝을 못한 채 다른 이의 손길만 기다리고 있는 거라고. 엄마가 아무리 나를 자립적으로 키워냈어도 나는 어쩔 수 없는 천성처럼 어리광을 피워대던 막내였다. 엄마의 무릎을 벗어난 지 7년이 지났어도 나는 여전히 그 무릎의 온기만을 기억하며 이렇게 갓난아기처럼 칭얼대고 있다.
04.
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새옷을 입고, 커피를 끓여서 옆에 놓고, 일기를 쓰자고 생각한다. 하루에 우는 시간을 5분씩만 줄여서 그 시간에 일기를 쓰자고 생각을 한다. 아직도 창피해서 나는 그런 식으로밖에는 말을 못한다. 그것은 언제나 일기, 라고 불리워지고 낙서, 라거나 수다, 가 되거나 또는 그냥 잡담, 으로 남는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엇이라도 좋다. 우는 것- 보다는 나으리라. 외로워하거나, 괴로워하는 일, 고통- 에 대해 말하거나 허무나 허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그런 것보다는 차라리 일기를 쓰고 낙서를 하고 수다나 잡담을 나누는 일이 훨씬 더 나으리라. 우리는 조금만 덜 울 필요가 있다. 눈물은 내게도 타인에게도 성가시고 귀찮은 것 이상이 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05.
내가 타인에게 바라는 것은 단순한 의사소통이나 감정의 교류이다. 나에게 왜 우냐거나 울지 말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이 조금 더 내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대단한 것을 함께 할 순 없다 해도, 간단한 대화나 감정을 주고 받을 순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로 하여 내가 하루에 5분씩 덜 울 수 있다면, 당신이 내 곁으로 조금 더 가까이 오는 일이 그렇게 어렵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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