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6월 25일, 신델렐라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6월 25일, 신델렐라

dancingufo 2005. 6. 26. 07:32

01.

문득, 쌍동이 빌딩이라는 이름으로 여의도에 서있는 두 채의 건물이 우스워 보였다. 그런 이름으로, 그런 모습으로 서있다는 사실이 치졸하고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촌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넘어오는 길에는 항상 기분이 좋았는데 갑작스럽게 든 그 생각 때문에 그 길을 즐기지 못하고 돌아와 버렸다. 내가 가진 즐거움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것은 언제나 다름아닌 나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쩐지, 어이가 없어졌다.


02.

버스에서 내리는데 예닐곱명쯤 되어 보이는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서로 멱살을 잡고 땅에 서로를 내팽겨치며 말 그대로의 격렬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딱 그 무리 앞에서 내리게 된 사실과, 그 무리가 하필이면 내가 내려야 하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속상해하며 조심스럽게 버스에서 내려 오다가 신발 한 짝을 놓쳐버렸다. 오늘 하루만 해도 벌써 세번째 있는 일. 순간,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놀라운 순발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한쪽발은 맨발이 되어 집으로 돌아올 뻔 했다. 계속해서 신발을 잃어버릴 것 같은 위기에 처해있는 기분이었다. 동화속의, 유리 구두를 잃고 오는 신델렐라처럼 말이다.


03.

장미꽃이 달린 샌들을 사고 싶다. 새빨간 원피스가 사고 싶다. 터벅터벅 걷고 있자니 발이 아파서, 월급을 타면 무엇부터 살까- 에 생각을 집중했다. 예쁜 끈으로 발목을 묶을 수 있는 샌들을 사고 싶었다. 하늘하늘 바람에 날리는 초록색 치마가 사고 싶었다.


04.

누군가가 나에게, 직장인으로서의 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면 자꾸만 화가 났다. 나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면서 주제 넘게 나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나는 되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었다.


05.

김은중의 기본 자세. 허리손. 짝다리를 짚고 잠시 멈춰서면 S자로 휘어지는 김은중의 몸. 그리고 그 몸을 보고 있자면 김은중의 등이 말한다. 나, 지금 화났음.

신기한 노릇이다. 등으로도 말하는 재주를 가졌다는 것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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