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7월 21일, 비타민 본문
Y의 말은, 최근에 내가 이유는 알 수 없고 별다른 표현도 하지 않지만 우울한 상태에 접어든 것만은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벌써 4년째 한 자리에서 나처럼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사람들을 대하고 있으니, 역시 Y의 눈치는 꽤 빠른 편이다. 기분을 좀 풀어줄까 해서 술을 사주기도 하고 밥을 사주기도 했지만, 그런 방법이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걸 깨닫고 Y가 마지막으로 생각해낸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지난 봄에 디카를 처음 산 날 시험 삼아 찍었다가 하드 안에 넣어놓고는 그대로 썩혀두고 있었다는 승룡이의 사진.
그렇다. 사진 속의 이 아이는 바로 승룡이다. Y가 생각해낸 이 마지막 방법은 그 순간 엄청난 효력을 발휘하여, 금세 내 기분을 업업업 시켜줬다. 승룡이를 보지 못한 건 벌써 2주째이고, 이대로 2주가 더 가면 얼굴을 잊어버리고도 남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니 이 사진은 나에게 너무나도 반가운 것일 수밖에. 그리하여 나는 Y에게 Thank you so much를 한 세번쯤 외쳐주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에 도착해서 이 사진을 사진 폴더 안에 넣기 위해 다시 열어봤다가 깨닫는다. 이 아이는 내가 알고 있는 승룡이와 참 다르게 생겼다. 우선, 난 긴 머리카락의 승룡이를 딱 한번 본 것 밖에 기억하지 못해서 삐죽삐죽 날이 선 스포츠 머리의 승룡이가 그립다. 두번째는, 내가 만날 때마다 승룡이는 아주 크게 웃거나 시끄럽게 떠들거나 화가 나서 마구 소리를 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무표정한 승룡이는 낯설다. 그리고 세번째는, 승룡이를 그렇게 보고 이뻐하는 동안에 몰랐던 것인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자니 이 녀석- 사랑하는 우리 조카와 닮은 구석이 있다. 그 중에서 무엇보다도 내가 짱구볼, 심술보, 라고 부르던 우리 조카의 볼. 그 볼이 바로 승룡이에게도 있다. 그래서 이 사진을 보고 있자면 이 녀석은 승룡이를 떠올리게 하는 대신 우리 조카를 떠올리게 만든다.
게다가 기억이 오류를 일으킨 것인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승룡이는 이것보다 좀 더 예쁘게 생겼다.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들은 말이지만 사진은 사람의 살아있는 표정을 죽여버리기 때문에 실물보다 예쁘기가 힘이 들다. 그러니까 나를 기분 좋게 했던 것은, 까르르르- 소리를 내며 웃고 있는 승룡이의 얼굴이라든가 반짝 반짝 빛을 내며 말을 하는 승룡이의 눈빛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표정이 죽어버린 얼굴을 보고 있자니, 별로 이쁜 줄도 그다지 좋은 줄도 모르겠다. 그러니 결국, Y의 마지막 방법도 장기적인 관점에선 효과가 없었던 셈.
사실 요 며칠 내가 얼마나 우울했는지는 나도 잊어버렸다. 이 우울한 기분을 다시 조증 상태로 돌려놓는 방법도 모르고 있다. 얼핏 기억나는 것은, 처음 우울해지기 시작했을 땐 이 상태가 이렇게 오래 지속될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두번인가, 싶었고 익숙해질 때도 되었다, 싶었고 그러니 곧 괜찮아지겠지,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상태는 오래 지속되어서 이제는 내 웃음이, 내 열정이, 이대로 사그라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같아선 더위에 엿가락처럼 녹아서 흐물흐물해져버리는 기분이다. 확실히, 비타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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