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8월 24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8월 24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dancingufo 2005. 8. 27. 04:28


하드리아누스는 소년 마르쿠스를 좋아했다. 그리스 철학에 흠뻑 빠져있던 소년 마르쿠스에게, 마르쿠스의 성(姓)인 '베루스(진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를 이용하여 '베리시무스('베루스의 최상급으로 가장 진실한- 이라는 뜻)'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도 하드리아누스이다. 하드리아누스는 자신이 재구축하고 그리하여 어느 시대보다 튼튼하고 건강한 상태에 있는 로마를 소년 마르쿠스에게 넘겨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마르쿠스는 너무 어렸다. 하여, 하드리아누스는 마르쿠스가 자라날 때까지 로마를 온전히 보존했다가 다시 마르쿠스의 손에 그 로마를 넘겨줄 중개인으로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선택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시대는, 후대의 역사가가 역사를 쓸 꺼리가 없다고 한탄할 만큼 평온한 시대였다.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죽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제위에 올랐을 때도, 모든 로마인은 그 평온한 시대가 계속될 줄 알았을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역대 그 어떤 황제보다도 온건하고 평화로우며 전쟁과는 거리가 먼 황제였다. 철학과 사색을 즐기고,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며, 천성적으로 몸이 약했던 황제의 시대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으로만 점철되었던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마르쿠스는 전쟁을 효과적으로 처리해나갈 능력은 없는 황제였지만, 그래도 아픈 몸을 하고도 죽을 때까지 병사들이 있는 전장을 떠나지 않은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준 황제이기는 했다. 그 시대의 병사들이 마르쿠스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이 악정을 펼칠 때까지도 마르쿠스와 한 약속을 어기지 않은것은 바로 마르쿠스가 보여주었던 그 '최선'에 대한 보답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본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어쩐지 슬픈 생각이 들게 하는 황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