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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도 눈물도 없이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dancingufo 2005. 12. 8. 03:16


난 엘리자베스의 지나치게 꼿꼿하게 구는 성격이 조금 밥맛이라고 생각했다. 말끝마다 따지고 드는 버릇은 일견 품위 없어 보이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당당하게 비난하는 모습에선 그녀의 경솔함을 보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인 에어'나 '테스'와 비교해볼 때 그녀가 무척 재미있고 그리하여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확실히 감당하기 쉬운 사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살아가며 지겨움을 줄 사람도 아닐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편견으로 인한 실수를 깨닫자마자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상대에게 미안해하며 그런 자신을 용서한 상대에게 고마워할 줄도 안다. 비록 이 소설의 가장 멋진 캐릭터는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다아시지만, 이 정도의 여자라면 다아시의 연인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다아시로 말하자면 잘났고, 잘났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었던 오만을 가졌고, 그렇지만 그 오만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깨닫자마자 고치려고 노력한, 만인에게 친절하거나 다정하진 않지만 그래야만 할 대상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는, 그러니까 굉장히 멋진 남자인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제대로 말하는 법도, 제대로 행동하는 법도 모르지만 그래도 다아시는 멋지다. 아직 내가 나름대로 소녀다운 탓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해도 상관없지만 난 다아시의 이런 면이 좋다. 잘났는데 유하기까지 한 남자는 완벽할 순 있어도 매력적이진 않다. 잘났으면 적당히 베베꼬여서 '나 여기가 결핍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해주는 남자가 좋은 것이다. 다아시에게선 그런 것이 보인다. 이상하게도 모성애를 불러일으키는 점이다.

오랜만에 소설 속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 주인공을 만난 탓인지도 모르겠다. 꽤 재미있게 읽어대느라 지하철 안에서도 졸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다. 가끔 이렇게 어린 시절 못 읽고 지나간 고전이나 명작을 손에 잡으면 늘 마음에 흡족한 감상을 가지게 된다. 그게 어린 시절에는 몰랐던 고전의 힘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심심한데 마땅히 읽을 책이 없다 싶으면 제목은 지겹도록 들었지만 정작 내용은 안 읽어본 옛 책들을 들춰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명작이라는 것은 아마 <데미안>, <죄와 벌>일 것이고 그 다음이 <백년 동안의 고독>일 것이다. 하지만 읽어본 명작들의 주인공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이를 꼽으라하면 역시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가 아닐까 싶다.




여담이지만, 콜린 퍼스가 다아시 역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니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많이 달라 당황스럽다. 다아시는 키도 크고 좀 더 깡마른, 깐깐한 한편 근엄한 이미지의 남자인데 콜린 퍼스는 너무 날카로운 맛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아시 역으로 적합한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해보니,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잘 생긴 동시에 카리스마를 갖춘 남자는 참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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