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바람의 그림자 본문
소설을 읽다보면 그 소설을 쓴 이가 천상 이야기꾼이라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물론 그 느낌은 그 소설이 내게 감동적이었는가, 마음에 들었는가 하는 문제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어쨌든 그런 느낌을 가지게 하는 사람이 쓴 글은 대체로 재미있다. 다른 모든 능력을 차치하고서라도, 이야기꾼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분명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이 작가도 그런 느낌을 가지게 만드는 이들 중 한 명이다. 이 책은 만만치 않은 분량인데도 지루하다거나 맥이 끊긴다거나 긴장감이 풀린다는 느낌이 없다. 나 역시 단숨에 읽어치우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읽는 동안에는 이 책속에 꽤 빠져있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이렇게 뛰어난 이야기꾼이 만들어낸 소설이 내 취향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난 이 작가를 폄하할 생각도, 이 소설의 가치를 끌어내릴 생각도 없다. 다만 나는 운명적인 사랑이라든가, 얽히고 설킨 혈연관계라든가, 절대적인 사랑의 비극적인 결말, 그 사랑을 겉도는 원한 같은 것, 배신이나 복수, 완벽한 우정, 이상적인 부성애나 전형적인 악인, 죽음도 불사할 만큼 매혹적인 여인 같은 것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다니엘도, 훌리안도, 미켈도, 푸메르까지도 나름대로 정은 가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살고 행동했는지 썩 납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취향이 있고, 나는 내가 꽤 편협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살수록 느끼는 것은, 나는 분명 낭만주의자이고 이성보다 감성에 의지해 살고 있으며 분명히 운명론자에 속하지만- 우습게도 이런 성질을 지닌 외부의 것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냉소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사실이다. 제목부터 낭만적인 이 책을 재미는 있을 망정 그다지 좋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은, 나의 그런 오래되고 모순된 태도에서 기인함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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