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닉 혼비, 피버 피치 본문
01.
오프시즌을 견디다 못해 <피버 피치>를 다시 읽었다. 농담처럼 이것은 우리의 '성경'이라 했지만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그냥 재미있다거나 공감이 간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나 책을 반복해서 다시 보는 이유는 두번째의 느낌이 처음의 그것과는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고, 나에게는 이 책 역시 그러했으니 두번째 본 <피버 피치>는 처음 보았을 때의 재미나 공감을 훨씬 뛰어넘은- 굉장하고 확실한 무언가를 나에게 남겼다.
다른 땅의, 나이와 성이 다른 축구팬이 자신의 팀에게 가지는 감정이 이토록 나의 마음과 닮아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내가 남에게 이해시키지 못하는 것을 차치하고 내가 나에게조차 이해시키지 못했던 축구에 대한, 아니 대전 시티즌에 대한 내 마음이 이 책을 읽으면서 차곡차곡 이해가 되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리라.
02.
[나는 적어도 축구에 있어서 충성심이라는 것은, 용기나 친절 같은 도덕적 선택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사마귀나 혹처럼 일단 생겨나면 떼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결혼도 그 정도로 융통성 없는 관계는 아니다. 바람을 피듯이 잠깐 동안 토튼햄을 기웃거리는 아스날 팬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축구팬에게 이혼이 가능하기는 하지만(사태가 너무 심해지면 경기장에 가는 것을 그만둘 수는 있다.) 재혼은 불가능하다. 지난 23년 동안 아스날로부터 도망칠 궁리를 했던 적도 많았지만, 그럴 방법은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사마귀나 혹이었던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어째서 그렇게 괴로워하면서도 대전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사마귀나 혹이니까. 떼어낼 수 없는 거니까, 라고 대답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태 그 대답을 찾지 못해서 매번 바보처럼 얼버무리거나 그냥 웃거나 인상을 찡그리거나 나도 모르겠다고 말해왔던 모양이다. 사마귀나 혹이었다. 그런 것이 내 등에, 팔에, 또는 허리에 하나 돋아나 있다. 이것을 칼로 베어내려면 아마도 나는 많이 아플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전으로부터 도망칠 수가 없다.
[물론 나도 아스날이 지루하다는 사실이 싫었다. 물론 나 역시 그들이 수억 개의 골을 넣고, 조지 베스트 열한 명을 모아놓은 것처럼 기백과 긴장감이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특히 가까운 장래에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전 시티즌이, 조금 더 화려하고 신나는 축구를 보여주었다면 그들을 좋아하는 동안 나는 조금 덜 괴로웠을까? 그들이 매경기 세 골씩을 집어넣고 박지성이나 이천수를, 히칼도나 마토를, 모따나 박주영을 데리고 있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때때로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대전이 성남처럼, 수원처럼 우승컵을 안고 외국의 유명팀들과 승부를 겨루는 그런 꿈. 하지만 그런 꿈을 꾸는 동안에도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란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현되지 않는 그 꿈 때문에 슬퍼할 수가 없다.
03.
[졸음이 쏟아지는 잿빛의 뱅크 홀리데이 월요일, 지루한 0-0 무승부였던 노팅엄 포레스트전은 브래이디가 마지막으로 하이버리에서 뛴 경기였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이국 땅 이탈리아에서 펼치기로 결정했고, 몇 년 동안 잉글랜드를 떠났다. 나는 하이버리에서 그를 배웅했고, 그는 동료들과 함께 천천히, 아쉬운 마음으로 경기장을 돌며 인사를 했다. 나는 그 순간까지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가 마음을 바꾸거나, 구단에서 그를 떠나보내면 얼마나 큰 피해를 입게 될지 깨닫고 그를 붙잡으리라는 바람을 버리지 못했다. 오로지 돈 때문에 가는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스날이 돈을 더 많이 썼으면 그가 남았을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그런 소리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를 부른 것은 이탈리아 축구의 가능성, 그 문화와 스타일이며, 그가 허트포드셔나 에섹스 같은 좁은 지역에서 느끼는 즐거움에 실존적 권태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가 우리를 버리고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으며, 갈등했다고 믿었고, 우리가 그를 사랑한 만큼 그도 우리를 사랑했으며, 언젠가 돌아올 것을 확신했다.]
대전을 좋아하는 동안, 숱하게 많은 선수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떠나보내는 것으로 하여 울지 않게 되었고 화내거나 서운해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때때로 나를 슬프게 하는 이는, 너무나 나를 쓸쓸하게 했던 이는,
돈 때문에 떠나는 거라는 비난을, 배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우리와 헤어졌다. 사람들은 그에게 쉬지 않고 손가락질을 했고, 그를 다시 만날 때마다 야유를 퍼부었지만 나는 그런 소리들을 믿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우리가 짐작할 수 없었던 고민이 있었으리라 생각했고 우리가 그를 사랑한 만큼 그도 우리를 사랑했으리라 믿었으며 지금도- 언젠가는 그가 우리에게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깊이 고개 숙여 안녕을 고했던 날을 잊지 못하고, 그 날의 짙푸렀던 잔디도 기억하며, 그 잔디 위에 언젠가는 그가 다시 우리와 같은 편이 되어서 서있어 줄 거라고 믿는다.
04.
[우리들이 원하는 것이 반드시 무슨 컵이나 리그 우승이 아닌 것처럼, 훌륭한 경기 내용도 아니다. 우리 가운데 이성적으로 응원할 팀을 선택한 사람은 거의 없다. 어쩌다 보니 그 팀을 응원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팀이 2부 리그에서 3부 리그로 강등되거나, 가장 우수한 선수들을 팔아치우거나, 뻔히 경기할 줄 모르는 선수들을 사들이거나, 꺽다리 최전방 공격수에게 공을 제대로 패스 못하는 일이 700번이나 반복되어도, 그저 우리는 욕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 2주 동안 전전긍긍하다가 다시 축구장으로 돌아와서 또 그 곤욕을 치르는 것이다.]
[결국 나는 축구를 보며 살아온 나날 중에서 다른 어떤 때보다도 바로 그 기간에, 상황이 나쁜 것은 나에게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경기 결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자기 지역 팀을 동네 레스토랑처럼 여기고, 그들이 식중독을 일으키는 쓰레기 음식을 내놓으면 발길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불행하게도 나 같은 팬들이 아주 많다. (축구가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도 수습하지 않고 버티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는 소비가 전부이다. 제품의 품질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이성적으로 이 팀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는 것. 상황이 나쁜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것. 대전은 만년 최하위 팀이었고 그보다 상황이 좀 더 나아졌을 때조차 리그 중하위권 팀이었다. 좀 잘한다 싶은 선수가 있으면 그 선수는 무조건 팔아치웠고, 매해 새로 영입하는 외국인 선수의 95%는 실패작이었으며, 기대주라는 어린 선수가 경기에 나서는 걸 보려면 2~3년씩 기다려야 했다. 수많은 골찬스를 놓치고 경기 종료 직전 허무하게 한 골을 내주며 0-1로 지는 경우가 허다했고, 골이나 매한가지인 pk도 툭하면 실축했으며, 선제골을 넣어두고도 너무 쉽게 동점골을 내주며 승점 3점을 추가하지 못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렇지만 대전이 아무리 그런 일들을 반복해도 나는 그저 화를 내고 허탈해하며 비관론에 사로잡힐 뿐, 대전으로부터 등을 돌릴 수는 없었다. 나는 다음주면 또 다시 퍼플 아레나를 찾아가 내 앞에서 똑같은 일들을 보여주는 대전을 또 다시 바라봐야 했고, 나는 그 일을 벌써 6년째 반복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품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대전이라는 그 제품, 그 자체였다.
05.
[축구를 통해 맺게 되는 관계 가운데 가장 격렬한 것은 물론 팬과 팀 사이의 관계이다. 그러나 팬과 감독 사이의 관계도 그만큼 강력한 것이 될 수 있다. 선수들은 팀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놓는 경우가 드물지만, 새 감독이 임명될 때마다 우리는 그전 감독 때보다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조지...... 조지는 내 아버지, 진짜 아버지보다는 단순하지만 훨씬 더 두려운 존재이다.]
대전과 함께 하는 동안 가장 견딜 수 없었던 헤어짐을 꼽으라면, 우리 감독님과의 헤어짐일 것이다. 우리 감독님, 대전 시티즌의 세 번째 감독님, 우리들의 최윤겸 감독님 말이다. 어떤 선수도 내 팀을 통째로 새롭게 만들어 놓지 못했지만 우리 감독님은 그렇게 하셨고, 그 분 아래서 만년 최하위 팀인 데다 골칫덩어리였던 대전 시티즌은 리그에 새 바람을 불어 넣은, 그 어느 팀도 만만하게 볼 수만은 없는 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 분의 대전도 14개 팀 중 9위나 10위 밖에 못하는 팀이었지만, 그래도 리그의 많은 선수들은 그분의 지도를 받아보고 싶다고 입을 모아 말했고, 불미스러운 일로 그분의 스포츠신문 1면을 차지하는 동안에도 팬들과 선수들은 변치 않고 그분을 지지했다.
하지만 2007년 6월. 그분과 만난 지 4년하고 6개월만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분과 헤어졌고, 그 헤어짐은 팀의 어떤 간판 선수와의 헤어짐보다도 마음 아팠으며, 치명적이었고, 견뎌내기 힘들었다. 하여 이제 더는 그분은 우리의 감독님이 아니라고들 말하지만, 그럼에도 그분은 내게 우리 감독님이시고, 숱한 많은 감독들 중 단 한 분밖에 없을 우리의 아버지셨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06.
[팬이 된다는 것에 대해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 한 가지는 이것이다. 겉보기와는 반대로, 팬이 된다는 것은 대리 만족이 아니며, 구경을 하느니 직접 축구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축구를 보는 것은 결코 수동적인 활동인 아니며, 실제로 뛰는 것과 마찬가지다. 승리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그라운드의 선수들로부터 뿜어져 나와서 창백하고 지친 표정으로 응원석 구석에 서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희석되어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은 선수들이 느끼는 기쁨에서 뭔가 함량이 빠진 것이 아니다. 이럴 때 우리가 느끼는 기쁨은 남의 행운을 축하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운을 자축하는 것이다. 재난에 가까운 패배를 겪고 났을 때 우리를 집어삼키는 슬픔은 실은 자기 연민이며, 축구가 소비되는 방식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팀이 나의 일부이듯이 나도 팀의 일부이다.]
감독님께서 말씀하셨듯,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이다. 팬이나 감독 없이도 경기는 가능하지만 선수가 없다면 경기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그럼에도 감히 이야기하자면 나는 선수들 만큼 중요한 팀의 일부이다. 나는 선수들 만큼 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선수들 만큼 간절하게 팀의 승리를 원하며, 선수들 만큼 팀의 패배를 마음 아파하고, 그리고 장담컨대 어떤 선수들보다는 더욱 더 깊이 팀을 사랑하고 있다. 나와 팀의 관계는 부차적이거나 희미한 것이 아니다. 나는 선수들을 통해 팀을 바라보거나, 선수들을 통해 팀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온 마음으로, 팀을 대하고 있고 이 팀은 이제 나를 이루고 있는 일부이며 또한 나도 팀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일부인 것이다. 이 주제 넘는 마음을 닉 혼비는 알고 있었고, 어쩌면 닉 혼비가 말해줌으로해서 이제는 우리 모두들 이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07.
[이런 경기를 보러 하이버리에 와있노라면, 온 세상이 그 움직임을 멈추고 문밖에 모여서 최종 스코어를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지. 세상에 나와, 대전 시티즌만이 존재하는 듯했던 많은 착각들.
08.
[이제 리그 우승이란 신의 존재처럼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09.
이 이야기들이, 구구절절한 닉 혼비의 많은 이야기들 중에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말들이다. 물론 몇십년째 아스날의 싸이코 노릇을 하고 있는 닉 혼비를 나의 경우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나는 고작해야 6시즌째 대전의 경기를 보고 있고 그나마도 그 중에 1년 반은 다른 땅에서 살아가느라 전혀 대전의 경기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다분히, 또는 충분히 닉 혼비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느낀다. 종종 대전이 내게 주는 폭력과도 같은 고통. 대전이 내게 주는 극한의 즐거움. 그런 것들이 닉 혼비의 마음 안에도 있다는 걸 눈치챈다.
나는 승리나 우승컵 때문에 대전을 좋아하게 되지도 않았고, 그런 것들에 대한 기대 때문에 대전을 계속 좋아하고 있지도 않다. 그들의 품질에 절대로 만족하지 못하고 분명히 더 나은 품질을 바라고 있으면서도 다른 제품을 기웃거리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 이런 나를 비웃지 않을 작가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어쩐지 기쁜 일이다. 때로는 이 특정한 대상에 대해 무모하고 대책없으며 광적으로 집착하는 나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랴. 나처럼, 또는 나보다 훨씬 더 한심한 이 이의 글을 읽으며- 결국 나는 한 가지 생각을 한 것이다. 어서 빨리 시즌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시즌이 쉬고 있는 이 시간들 때문에, 나는 그렇게 좋아했던 겨울과 한여름을 180% 지겨워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