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6년 7월 23일, 안녕 안녕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6.01 ~ 2006.12

2006년 7월 23일, 안녕 안녕

dancingufo 2006. 7. 24. 02:34

01.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면, 웃고 떠들 수 있으니까 우울한 것도 잊을 수 있다. 화는 나지만 최소한 우울하진 않은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모두 헤어진 후 혼자 남게 되면, 그 때부터 잊었던 우울함이 살아난다. 스물스물 심장으로부터 기어나와 손가락끝, 발가락끝까지 점령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그런 우울함에 점령당해 기력을 잃었다.

기력을 잃었기 때문에 앉아있을 힘도 없어, 무작정 침대에 누웠다. 전날 저녁에 긴 잠을 잤기 때문에 쉬이 잠이 오지 않는데도 계속 뒤척뒤척거리며 누워있기만 했다. 여러가지 자세를 취해보았지만 어떤 자세를 취해도 불편했다.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고도 생각했지만,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생각 따위 꺼져버려! 라고 소리치고 싶었던 것이다. 생각이란 것 해봤자 머리만 아프다. 그냥 다시 웃고 떠드는 게 훨씬 나을 듯 했다.


02.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아서 대체 뭘 해야 바보같은 상태가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다행히 진이 떠올라서 dream boy를 한 세시간 보고 났더니 머리 속이 텅 빈 것과 비슷해졌다. 바보가 되어야 해, 라고 계속해서 생각했기에 책도 읽을 수 없었고 영어공부도 할 수 없었다. 웹써핑도 하기 싫고 사람들의 전화도 받기 싫고 도착하는 문자도 다 귀찮았다. 제발 날 내버려두라고. 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마구마구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고 싶어졌다. 아니, 사실은 그냥 나 바보가 되고 싶었다.

뇌의 어느 부위에 금이 가면 10분 전의 일도 기억하기 힘들어진다고 요코가 스바루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아아, 스바루. 잠깐만 그 뇌를 나에게 빌려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나도 잊어버리고 싶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따위는 다 잊어버리고 싶다.  


03.

밤에 자지도 않고 버텼더니 낮이 되자 졸렸다. 그래서 침대에 누워서 편하게 잤다. 자다가 꿈을 꿨는데 꿈 속에서 내가 계속 피를 흘렸다. 어디에 피가 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계속 피가 났다. 새빨간 피가, 온 몸을 흘러내려 나중엔 발목까지 뚝뚝 떨어졌다. 무섭고 창피했다. 잠에서 깼을 땐 꿈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04.

하루종일 200ml짜리 커피 우유 하나, 흰 우유 하나를 마셨을 뿐인데 배가 고프지 않았다. 라면을 먹을까, 하다가 이상하게 속이 거북해서 그것도 관뒀다. 집에 혼자 두면 먹는 것조차 안 하는 이 게으름이 내 삶의 질을 최저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런 불규칙적인 식습관은 다이어트에도 굉장히 나쁠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챙겨먹을 수가 없다. 나의 이 두 손은, 그런 걸 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는 듯이 28년째 도도하게 굴고 있다. 나도 나의 이 도도한 두 손에 동조한다. 그러니 혼자 살면 굶어죽지 않게, 먹을 거 많이 파는 곳에서 살아야겠다.


05.

대전의 지하철을 타고, 대전 거리에서 쇼핑을 하고, 대전의 회전 초밥집에서 초밥을 먹고, 대전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는 동안 조금 괜찮았다. 망각만이 힘이 된다.


06.

하지만 내일은 좀 더 힘을 내야겠다. 한주의 마지막 사흘이 끔찍하게 흘러갔다. 난 사람들에게 화내고 나에게 화를 냈다. 이상하게 모두가 싫고 나도 너무 싫었다. 그렇지만 내일부터는 그만해야겠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다시 힘을 내는 일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내일은 책도 좀 읽고, 공부도 하고, 새일자리도 찾아봐야지.


07.

그렇지만 나, 이관우를 꽤 많이 좋아했던가보다. 괜스레 김은중까지 덩달아 미워진 걸 보니. 이제는 어떤 선수에게도 그런 마음 따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선수는 떠난다. 떠나는 존재다. 잊어버리지 말고 있어야지. 배기종도, 장현규도 다 떠날 것이고 남는 건 나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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