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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본문

피도 눈물도 없이

온다 리쿠,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dancingufo 2008. 4. 24. 01:51


온다 리쿠의 팬 사이트에서 '온다 리쿠의 작품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설문 조사가 이루어졌던 모양인데 그 결과 1위를 차지한 작품이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은 열매>라고 한다. 만약 내가 그 조사에 참여했다면 당연히 1위는 <밤의 피크닉>에게로 돌아갔을 것이고, 2위는 <흑과 다의 환상>, 그리고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은 열매>는 3위쯤을 차지했을 것이다.

이 설문 조사가 이루어졌을 당시 '온다 리쿠가 만들어낸 캐릭터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에 관한 조사도 같이 이루어진 모양인데 그 결과 1위를 차지한 것이 요한, 2위가 레이지, 3위가 리세로 1~3위를 모두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은 열매의 주인공들이 차지했다고 한다. (레이지나 리세가 뽑힌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요한이 왜 1위에 오른 건지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러니까 이 작품은 온다 리쿠의 팬들에게서 아주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는 작품인 셈이다. 여기저기서 온다 리쿠의 작품에 관한 리뷰를 읽어보아도 이 작품이 재미있었다는 의견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이 소설은 매우 재미가 있긴 하지만 온다 리쿠의 숨은 실력이 아낌없이 발휘된 작품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온다 리쿠는 미스테리 소설을 쓰는 작가이고 그런 점에서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은 열매>가 그의 대표작쯤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의 진상을 풀어나가는 데 매진하느라 때때로 그냥 묻혀버리는 온다 리쿠의 능력.

그러니까 등장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제각각 설득력 있게, 마음에 와닿게 풀어나가는 능력. 그래서 '아- 그랬구나. 그랬겠구나. 안됐네. 쯧쯧쯧.' 생각하면서 그 모두를 이해할 수 있게, 그래서 결국 모든 등장 인물을 사랑스럽고 애잔하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온다 리쿠의 능력이 이 작품에서는 별다른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나는, 아주 평온한 일상에서 평범한 듯한 소재를 끌어내 따뜻하고 쓸쓸하며 동시에 흐뭇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온다 리쿠의 능력이 좋다. 하지만 온다 리쿠가 주된 무대는 그러한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알았고, 그래서 이 작품이 꽤나 재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여담으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지금까지 만났던 온다 리쿠의 등장 인물들 중 <흑과 다의 환상>에 등장했던 '아키히코'를 가장 좋아한다. 다음으로는 '레이지', 그리고 마지막이 아마도 '다카코'가 아닐까 싶다.

내 타입이 아니라는 둥, 나는 장르 문학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둥 이래저래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사실은 온다 리쿠의 책을 몇 권 더 읽어볼 생각이다. 그러는 동안 온다 리쿠가 한 번쯤은 더, <밤의 피크닉>과 같은 작품을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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