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12년 2월 29일, 이제는 나꼼수가 슬프다 본문
나는 이들이, 부디 영웅이나 아이돌이 되지 말고, 올해도 그저 골방에 모여 히히덕거리는 중년 아저씨들로 남아주길 바랐다. 너무 심각하지도, 너무 진지하지도, 너무 열정적이지도 않게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 이야기들이 개그나 폭로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너무 진지해지고 싶진 않았다. 그냥 웃으면서 듣고 싶었다. 너무 열을 내거나 너무 깊이 생각하거나 너무 안타까워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결국, 나는 이 사람들이 슬퍼졌다. 그것이 김어준의 목소리가 흔들렸기 때문인지, 주진우가 불쌍했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아니면, 진보 매체들마저 보수 언론들과 별 다를 바 없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해대는 속에서 정말로 고립무원이 되어버린 이 사람들 자체가 안쓰러워진 건지도 모르겠다. 개인으로서, 특별히 뭔가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할 말이 좀 있어서,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하고 싶어서, 그 말을 못하는 게 억울하고 답답해서 모인 이 남자들한테, 세상이 너무 각박하고 너무 폭력적으로 굴어서 슬퍼진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장자연씨 사건을 이야기할 때, 분노하던 주진우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 처음으로, 주진우는 좋은 사람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와락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스치듯이 '우리 함께 살아요'라고 말하던 주진우의 목소리도 기억한다.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가치관 같은 것을 생각했다.
힘센 사람들을 이야기할 땐 늘 얄밉게 비아냥거리면서도 약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땐 분노와 연민을 감추지 못하는 주진우. 그런 주진우가 애교있는 목소리로 정봉주와 투닥거릴 때면 나는 이 남자들이 귀엽고 즐거워서 자주 웃었다. 하지만 이제는.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감옥에 갇히는 것밖에 없으면서, 자기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말한 주진우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도무지 예전처럼은 웃을 수가 없다.
우리는 주진우를 지켜낼 수 있을까.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김어준과 김용민을 지켜낼 수 있을까. 우리가 과연 정봉주를 꺼낼 수 있을까. 우리한테 과연 힘이 있을까?
나는 김어준을 좋아한다기보다도 믿었다. 그의 말이 진실, 이라고 믿는 것보다도 김어준은 현명하고 강할 것이라고 믿었다. 나꼼수에 대한 이런저런 비난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늘 김어준이 내놓은 해답을 보면 통쾌했다. 그리고 이 남자는 방법을 알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김어준이, 늘 모든 것의 해답을 알고 있을 것 같던 김어준이, 처음으로 믿을 건 시민의 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말 때문에 나는 마음이 뜨끔했다. 나는 그냥 이들이 내는 책이나 재미있게 읽고, 매주 수요일쯤 되면 다음 회가 올라오지 않았나 궁금해하고, 그러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면 히히덕대기나 하면서 재미있게 이들을 즐기고 싶었는데.
하지만 이제는, 나꼼수가 슬퍼졌다. 이건 더이상 나꼼수가 재미있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여전히 나는 꼼수다는 정말 재미있다. 정봉주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김용민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제, 이들이 모든 걸 다 걸었다는데. 주진우는 목숨을 걸고 거기에 있겠다는데.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저 심심풀이용으로 나꼼수를 들을 수 있겠는가. 여전히, 웃으면서 싸우자는 김어준의 말을 지지하지만. 그래도 이제부터는 늘 나꼼수가 슬플 것이다.
뭐라고 했지? 주진우는 부서지더라도 파도 앞에 그냥 서 있겠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그 파도가 부디 이들을 집어삼키지 못하게끔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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