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터키 여행기 11] 개와 고양이의 나라 본문
이스탄불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거리에 개나 고양이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이야 터키쉬들이 유난히 애완동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때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개와 고양이들이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눈에 띄는 횟수로만 보아서는, 개보다는 고양이쪽이 조금 더 많은데 그 고양이들이 하나같이 깨끗해서 도저히 주인 없는 길 고양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분명히 누군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인데, 아마도 자유롭게 풀어놓고 기르나 보다 하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 달 여간 터키에서 생활을 해본 바로는, 그 고양이들은 대부분 누군가 기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터키 사람 전체가 함께 기르고 있는 고양이들이다. 그들은 따로 주인이 없어도 굶는 것 같지 않았고(오히려 너무 잘 먹어서 전체적으로 좀 비대해 보였다.) 지저분한 경우도 별로 없었으며, 무엇보다, 사람을 너무 잘 따라서 마치 강아지처럼 보였다. 한 번도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해본 적 없는 것 같은 그들의 태도만 보아도, 터키인들이 이 고양이들을 얼마나 친절하게 키웠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고양이들은 사람이 다가가도 전혀 경계하지 않는다.
실제로 터키인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 발렌타인 데이를 연인이나 배우자보다도 자신의 애완동물과 함께 보내겠다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들이 어째서 그토록 애완동물을 어여삐 여기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여기저기 볕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이곳은 그야말로 개와 고양이의 천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동물에게 특별히 애착을 가져본 본 적이 없다. 개나 고양이뿐 아니라,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 한 마리도 내 손으로 키워보겠다고 사 들고 와본 적이 없다. 때문에 터키의 거리에서 그 어떤 예쁜 개나 고양이를 보아도 딱히 감탄사를 터트리진 않았다. 예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직접 쓰다듬어 주고 싶거나 껴안아 보고 싶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늘, 이런 마음을 변화시켜주는 단 하나의 특별한 존재가 있기 마련이니 나에겐 그 고양이가 바로 ‘미야오’이다.
내가 미야오를 처음 만난 건, 카파도키아에 도착하던 날이다. (원래 이름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고양이를 ‘미야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묵었던 펜션의 주인이 키우고 있던 미야오는, 그곳에 도착한 당일 짐을 내려놓고 괴레메 시내를 둘러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 우리 뒤를 조용히 졸졸졸 따라왔다. J는 그런 미야오를 예쁘다며 쓰다듬어주었지만 나는 저 고양이가 어째서 우리 뒤를 따라오는 걸까 하고 생각만 했다. 그러다 길을 잃으면 어떡하냐며, 어서 들어가보라고 J가 미야오를 보채는 동안에도 나는 멀뚱 멀뚱 미야오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우리가 묵었던 펜션에는 총 세 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었는데, 미야오를 제외한 나머지 두 마리는 늘 붙어 다녔고 미야오는 언제나 혼자 다녔다. 그래서 외로웠던 것인지 미야오는 유난히 사람들을 잘 따랐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고 나오면,이 고양이는 어디선가 조용히 나타나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는 했다. 때문에 언제부턴가는 방에서 나왔을 때, 미야오가 보이지 않으면 어디로 간 건가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살면서 보아온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품위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방에서 나왔는데도 미야오가 달려오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면, 우리는 ‘미야오~’하고 이름을 불렀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짠 하고 나타나 자기를 쓰다듬어 달라며 다리를 뱅뱅 맴돌곤 했다. 손을 가져다 대면 제 온 얼굴을 비비는 것이 나는 한 생명체가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탄을 했다. 미야오는 작고 조용했고, 사랑스러웠으며, 그러면서도 품위를 지킬 줄 알았다.
가끔 미야오가 다른 손님들과 놀고 있는 걸 볼 때면, 나는 괜스레 이름을 불러 이 고양이가 우리에게 오도록 만들곤 했다. 내가 미야오에게 정이 들었음을 깨달은 것은, 이렇게 질투와 소유욕이 생겨난 순간이었다. 어느 아침, 미야오를 무릎에 올려 놓고 마당 안 그네 의자에 앉아 있노라면 그 시간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때문에 내가 여행을 온 것인지 아니면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것인지 나조차도 알 수 없어지고는 했다.
그러니 카파도키아를 떠나던 날 아침, 미야오가 눈에 밟힌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우리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나가 미야오의 사진을 찍기로 했다. 그런데 한 번 무릎에 올려 놓으면, 내려가기 싫어서 발톱으로 바지를 꼭 붙잡곤 하던 녀석이 이 날은 어쩐지 우리 곁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똑똑한 녀석이라, 마지막 날이니까 정을 안 주나 보다 싶어 괜스레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사랑스러운 존재란 늘 냉정한 구석이 있는 법이다 생각을 하면서 나는 미야오를 마당 안에 두고 카파도키아를 떠나왔다.
사실 나는, 터키는 그리워도 카파도키아는 그리 그립지 않았다. 하지만 미야오만은 가끔 보고 싶어서 가만히 사진을 들여다보고는 한다. 그렇게 한 번 그리운 마음을 알고 나니, 터키의 거리에 마주치는 길 고양이들이 한 마리 한 마리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이 고양이들이 모두 누군가에게는 나름대로의 소중한 존재일 거라 생각을 하면 새삼 그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2013년, 3월. 나는 다시 이스탄불에 돌아와 있다. 여전히 거리에는 많은 개와 고양이들이 살고 있지만, 나의 소중한 고양이는 이곳에 없다. 아마도 카파도키이아의 어느 평화로운 펜션에서 자신의 젊은 주인과 그곳을 찾은 손님들의 다정한 손길을 받으며 살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미야오가 여전히 기품 있는 모습으로 잘 살고 있다고 전해주면 좋겠지만 그 또한 여의치는 않아 보인다. 그저, 혹시 카파도키아의 어느 거리에서 이토록 사랑스러운 고양이 한 마리를 마주치게 된다면 장난으로라도 모질게 굴지 말고, 다정한 손길 한 번 건네주기를 바랄 뿐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