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범죄의 재구성 본문
2004년. 씨네21에서 집계한, 네티즌이 뽑은 최고의 영화. 평론가들이 감동 다큐멘터리 [송환]과, 국위선양하고 돌아온 김기덕의 [빈 집]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인 것에 반해 네티즌들은 좀 더 다양한 영화들을 '최고의 영화'로 거론했고 그 열띤 경쟁속에서도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한 영화가 바로 [범죄의 재구성]이었다.
최동훈, 이라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난데없이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영화를 내놓아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분명히 처음 듣는 이름이니까 분명하게 신인일 것으로 보이는데 대체 이 영화에서는 신인감독의 맛이 느껴지지 않아서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영화는 무척 재미있다. 물론 스토리 전개에 억지와 모순이 눈에 띄는 건 사실이지만 그 정도는 기꺼이 눈 딱 감고 속아주고 싶어진다. 이 만큼 재미있는 영화로 우리를 수술(영화 속에서 사기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하겠다고 덤비면, 큰 손해 없는 한 수술 당해주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게다가 백윤식과 박신양의 연기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천연덕스럽고, 염정아가 연기한 허점투성이의 팜프파탈(초반에 팜므파탈일 것이라 예상하게 만들 뿐 그런 역할을 해내지는 않지만)은 귀엽다 못해 사랑스럽다. 대사는 재치있고 발랄하며, 이야기의 허점을 지나치게 만드는 속도감도 좋다. 고작 영화 한 편을 선보인 감독치고 꽤나 굉장한 솜씨를 보여준 것이다.
최동훈은 충분히 미래가 기대되는 반짝이는 재능이다. 최근 눈에 띄는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 없었던 걸 생각하면 최동훈은 일종의 '발견'일 것이다. 또한 나에게 있어서 이 영화가 준 또 하나의 발견은 새삼스럽게도 박신양이라는 배우. 싫어할 이유야 없었지만 단 한번도, 1%의 관심이나 호감도 가져보지 않았던 배우였는데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이 배우에게 집중하고 놀라고 감탄한다. 굳이 얘기하자면 박신양의 재발견.
감독의 힘과 배우들의 힘이 이 정도 적절한 호흡으로 어우러진다면 결과가 좋은 것은 당연한 결론인지도 모르겠다. 골치 아프게 영화의 미학을 따지고 철학을 파고드는 것은 못해도 이 영화가 재밌기 때문에 박수치고 지지해주는 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관객. 그래도 1위라니 조금 놀라운 결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자격이 없느니 어쩌고 저쩌고 하기 보단 나에게만 재밌었던 게 아닌가보군- 피식 웃음을 짓고 만다.
장담하건대 보고 후회하는 사람, 없을 거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