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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리스트

dancingufo 2005. 5. 19. 14:46



그런 영화가 있다. 평가도 좋고, 인기도 있고, 주위에서 본 사람들은 다 좋다- 괜찮다- 재밌다- 얘기를 하고, 이름있는 상도 받고, 안 본 사람보다 본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보고 싶지 않은 영화. 볼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도 끝내 그 영화 대신 다른 영화들을 선택하게 되는 영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괜스레 끌리지 않고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영화. 그런 영화가 꼭 있다. 예를 들자면 나에게는 [쉰들러 리스트]같은.

손에 잡히는 대로 DVD를 사오던 어느 날, 몇 년이나 미루고 미루었던 [쉰들러 리스트]가 그 속에 있었다. 그러고도 또 몇 주. 볼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심심한데 할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저녁. 거실에서 혼자 DVD를 틀었다.

오스카 쉰들러. 만약 저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 아니었을까? 천명이 넘는 사람을 살려낸 그를 보며 혼자서 그렇게 생각을 한다. 저건 사람이 아니지, 하나님이지.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의 행동도 말도 나에게는 감동적이지가 않다. 꽤 많은 수를 살려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일인이 저지른 죄가 줄어드는 건 아니야. 재수좋게 쉰들러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해도, 죽은 쪽의 억울함이 줄어들지는 않아.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문득 불쾌해진다. 이 감독은 왜 하필 하나님같이 훌륭한 존재를 독일인에서(그것도 나치장교중에서) 찾아낸 거지? 아니, 이 감독은 어째서 유태인 얘기를 다루면서까지 이토록 따뜻하고 행복한 거야? 왜 유대인마저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그려내고 있는 거야?

약간의 짜증을 안고 오스카 쉰들러에 대해 알아본다. 만약 그가 실존인물이고, 실제로 그런 감동적인 행동을 보여줬다면 나치 장교 중에서 그런 하나님을 만들어낸 것을 불평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결과는, 오스카 쉰들러는 실존인물이지만 자기의 생존을 위해 유대인들을 희생시킨 평범한 독일장교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차라리 가상의 인물을 댈 것이지. 차라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몽땅 허구로 만들어 낼 것이지. 마치 실화라도 되는 것처럼 꾸며낸 것이 또 다른 불쾌함을 일으킨다. 내가 민감한 건가. 아, 그래. 나 왜 이렇게 이 영화에 민감하게 구는 건가.

왜 그렇게까지 이 영화에게 거부감이 느껴졌는지 알 것 같다. 좋은 영화라는 얘기, 재미있다는 얘기, 감동적이라는 얘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도 전혀 끌리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스필버그는 분명히 훌륭한 점이 있는 감독이지만, 천성적으로 나와는 맞지 않는 코드를 지닌 것이다. 나는 그가 이해하고 해석하고 바라보는 세상에 절대로 동의하지 못하는 눈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의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나를 즐겁게 하거나 감동시키지 못한다. 스필버그나 나에게나 아주 사소한 불행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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