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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dancingufo 2005. 5. 23. 02:49



스토리와 대사. 그리고 배우. 여기에 굳이 한 가지를 더하자면 흘러 나오는 음악. 이 네가지를 제외하고 내가 영화를 감상하는 데 영향을 주는 것은 없다. 나는 빼어난 풍경이라거나, 뛰어난 촬영 기법, 신기한 특수효과, 정성들인 스타일 같은 것들에 무심하고 무감하다. 내가 김지운의 '장점'을 나름대로 파악하면서도 그게 '장점'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것은 그러한 이유다. 김지운은 스타일리스트다. 그의 영화에도 이야기가, 또는 대사나 음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가끔 지나치게 폼잡는' 김지운의 버릇 때문에 나는 그의 영화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



김지운은 '판타지'의 소유자다. 내가 남자가 아니므로 장담할 순 없지만,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가지기 쉬울 듯한 그런 '판타지' 말이다. 그는 멋있어지고 싶다. 그리고 소녀를 동경한다. 하얀 얼굴과 매끈한 종아리. 길고 까만 생머리의 소녀가 클로즈업 될 때면, 어쩐지 나는 웃음이 난다. 아- 저건 남자들의 판타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남자인, 저 감독의 판타지.

그런 의미에서 이병헌은 (키만 한 10cm 더 컸더라면) 남자들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선우'는 이병헌을 위해 태어난 존재다. 그는 차갑고, 그는 냉정하고, 그는 미치고, 그는 순수하고,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는 소년같다. 새삼 깨닫는 일이지만 우리 나라에는 연기 잘하는 남재배우- 정말 많다.



뒤로 갈수록 스토리가 진부해지는 것은 이 영화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도 나는 진부한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에 마음이 아프다. 그 꿈은 달콤한 꿈이다.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달콤한 꿈. 그리고 나는 안다.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면, 정말로 눈물이 난다는 것을.



그렇지만 이 영화의 압권은 무엇보다도 마지막, 유리에 자신을 비춰보며 펀치를 날리던 이병헌의 웃음이다. 십몇년을 봐오는 동안, 단 한순간도 멋지다고 생각해본 적 없던 배우의 웃음이- 까만 영화관에서 빛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 웃음은 소년의 웃음. 그 웃음은, 남자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웃음. 나는 그 웃음 때문에 슬퍼서 그 자리에 오래 앉아있는다. 자막이 올라가고,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나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그 웃음을 생각한다.

이야기와 대사. 배우와 음악. 중요한 것은 이 네가지. 그리고 나를 감동시키는 것도 이 네가지 중 하나다. 김지운이 아무리 스타일에 공을 들여도, 나는 이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도 결국 배우와 대사와 음악 때문에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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