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아무도 모른다 본문
아이들이 트렁크 속에 구겨지듯 갇혀서 이사를 했던 것은, 그들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혹시 이웃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게 될까봐, 그래서 어렵게 구한 집에서 쫓겨나게 될까봐, 아이들은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채 하루종일 집 안에만 숨어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섣부르고 성급한 걱정일 뿐. 정작 아이들이 부모에게 버려진 채 몇번의 계절을 그곳에서 방치되어 있는 동안에도- 아무도 그들을 몰랐다.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뼈, 가 아프다. 손가락의 마디, 가 저리다. 나는 화를 내고, 신경질을 터트리며, 인상을 찌푸리고, 눈을 가리면서 2시간 20분을 버텨냈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 화가 난다. 나를 어떻게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영화. 나를 울 수도 없게 하고, 나를 웃을 수도 없게 하는 영화.
타인의 지독한 현실이 내 코 앞에 들이밀어지면, 어떻게도 할 수 없어서 화가 난다. 어째서 인간사는 건 다 저 모양이야. 어째서 인간은 저렇게까지 잔인한 거야. 지나친 감정이입은 금지다. 그렇지만 나는, 언제 터져버릴지 모르는 소년의 눈빛을 영화 속 주인공의 것으로만 치부해버리기가 어렵다.
진짜, 와 가짜, 를 구분하는 일은 어리석고 또 좀 유치한 일이지만 이런 영화를 보면 가끔 '진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또 나를 스쳐지났던 수많은 '가짜'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57회 칸느 영화제. 그 영화제 사상 최연소의 나이로 남우주연상이라는 트로피를 거머쥔 야기라 유야. 90년생이면 업어키운 내 동생보다 어린 나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눈을 하는 걸까. 그런데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는 걸까.
소년은 배가 고픈 것도 잊고 거리를 달린다. 나는 그때 차라리 소년이 울기를 바랬지만, 소년은 내 앞에서 울어주지 않았다. 나도 소년의 앞에서는 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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