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4인용 식탁 본문
최근 몇 년 사이, 어떤 공포 영화도 이 영화처럼 내게 호평을 받지 못했다. 영화에서 본 끔찍한 장면들은, 며칠이고 나를 따라다니며 문득 문득 나를 들들 볶는다. 그래서 나는 공포물을 잘 보지 않지만 어쩐지 '한번쯤 봐도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4인용 식탁]앞에 앉았다. 덕분에 그 후 며칠을 내내 어둡거나 혼자 있는 시간을 무서워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보기로 했던 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수연 감독은 굉장한 이야기꾼이다. [4인용 식탁]은 무섭기도 하지만, 치밀하게 잘 짜여진 시나리오에서 탄생했다. 많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단 한순간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 영화는 드물다. 그런데 이수연 감독은 이 영화에서 그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새로운 시선. 소름돋는 에피소드. 그 에피소드들이 치밀하게 하나로 묶여지는 동안, 나는 넋을 잃고 화면을 응시한다. 하수구에 버려진 아이의 모습이, 추락하던 여자의 미소띈 눈이, 스물스물 내 팔을 타고 기어올라 머리 끝을 죄어온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울음이 터질 만큼 이 영화가 나열하고 있는 에피소드들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사실 이 영화가 보는 이들에게 주는 것은 '공포'보다도 '고통'에 가깝다.
사람들은 감당할 수 있는 진실만 믿는다, 라고 연이 말한다.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알아야만 하는 사람 만큼 외로운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 그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4인용 식탁'이 따뜻하고 정겨운 이미지를 지녔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오래된 착각이며 오해다. 비극은 주로, 가족 안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 비극은, 가족이 아닌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진짜 비극이 되어버린다.
감독은 보는 동안 숨이 막힐 만큼, 쉴 시간을 주지 않고 이야기를 끌어 나간다. 결국 불쌍한, 여자는 죽고 남자는 혼자 남아 식탁 앞에 앉는다. 남자가 앉아있는 식탁은 따뜻한 저녁을 기대할 수 있는 식탁이 아니다. 그들의 고통에 대해, 어설픈 위로조차 한 마디 하지 않는 이 감독의 태도가 어쩐지 마음에 든다.
4인용 식탁. 공포물에 대한 내 취향에 변화가 온다면, 그것은 이 영화의 덕이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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