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주먹이 운다 본문
나는 류승완이 강박관념에 시달리지 않길 바란다. 팬이랍시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겠지만 어쩐지 요즈음의 류승완에게서는 무언가 보여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강해 보인다. 좋아한답시고, 남들보다 더 많이 아는 척 해서도 안 되는 것이겠지만 요즘의 류승완에게서는 무언가를 입증해 보이려고 하는 생각이 강해 보인다.
류승완은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다. 첫영화에 넉다운 된 이후에 줄이어 그가 내놓은 영화를, 나는 외면한 적도 없고 박수를 보내지 않은 적도 없다. 그것이 단지 류승완의 영화이기 때문이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스스로도 혹시 내가, 이 감독에게 100% 너그럽기만 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모든 영화들이 이토록 즐거운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지만 열번을 다시 솔직해져도 나는 진심으로 이 감독이 만들어냈던 모든 영화를 좋아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뿐 아니라 [다찌마와 리]도. [피도 눈물도 없이]도. [아라한 장풍 대작전]도, 진심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주먹이 운다]에 이르면,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이 영화는, 나쁘지 않다. 그래, 나쁘지 않다. 영화는 슬펐다. 나는 울기도 많이 울었다. 팽팽하게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두 명의 배우는 정말로 훌륭했다. 최민식이야 그렇다 치더래도, 류승범을 이렇게까지 빛나게 하는 것은 역시 류승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류승완은, 새로운 영화를 멋지게 관객 앞에 내놓았다. 멋지게. 많은 관객들이 호응할 수 있도록. 많은 박수를 받을 만한 영화를. 그렇지만 나로서는,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그런 영화를.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을 것이다. 칭찬보다도 비난이 많았을 것이다. 속이 상했겠지. 뭔가 보여주고 싶었겠지. 그래서 달라져야 겠다고 생각한 건 아닌지. 아니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런 말들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감동을 가지는 대신, 날것의 생물이 지니는 팔팔한 생명력은 잃었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는지.
"지금까지는 류승완이 원하는 것이 영화가 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주먹이 운다>에서 류승완의 위치는 대단치 않다. 나보다는 영화가 원하는 것을 먼저 포착하려고 노력했다."
[주먹이 운다]가 개봉한 이후, 어느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류승완이 한 말이다. [주먹이 운다]를 보고 난 이후 [주먹이 운다]를 생각할 때마다, 내 심장에 퍼지는 씁쓸함의 정체는 류승완의 대답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그저 '좋은 영화'나 '재미있는 영화', '감동적인 영화'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류승완의 영화'를 원했던 것이다. 좋은 영화, 재미있는 영화, 감동적인 영화는 다른 사람에게서도 찾을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류승완의 영화는 류승완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니까. 스스로의 목소리를 죽이고 스스로의 위치를 낮추어 영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배우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류승완은- 때문에 나를 울게는 했지만 때문에 나를 뿌듯하고 기분좋게 만들지는 못했다. 류승완의 영화를 보고 나면 늘 미친듯이 샘솟던 이 사람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 역시, 이번에는 풀이 죽고 만다.
내가 단숨에 이 감독에게 사로잡혔던 것은, 그리고 그 이후 내가 늘 이 감독에게 살짝 미쳐 있었던 것은, 그가 나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한다해도 류승완처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감독에게 매혹되었다. 날것을 잡아 올리는 그 손에는, 언제나 무모함과 당당함이 배여있어서 나는 늘 이 감독이 눈이 부셨다. 그런데 류승완은 이제, 나와 같은 몇몇 팬들의 찬사보다는 더 많은 관객의 눈물이 필요한가 보다. 평론가들의 호평과, 영화제에서의 입상. 그런 것들이 설마 류승완이 원하는 것은 아닐 거라고- 그래, 나는 이 사람의 팬이니까 아직은 믿고 있다. 최소한 이것은 과정일 뿐인 거라고. 이런 것도 할 수 있고, 또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앞으로를 향해 나아가는 가정일 뿐인 거라고 아직은 나는 이 사람을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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